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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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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BY 새로미 2017-02-18

우리 동네 앞에 개울이 있다.

개울을 따라 복정을 지나 한강이나 탄천까지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계절을 알리는 꽃이 핀다.

들꽃도 천지에 피어 산책할 때 심심하지 않다.

꽃들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므로.

 

개울에는 몇 군데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건너에 있는 마을로 갈 수도 있다.

네모진 넓적한 돌이 가지런한 징검다리다.

가끔 그 징검다리를 한 번씩 건너보기도 하는데,

물 아래로는 송사리 떼 노니는 것이 훤히 보인다.

 

내 고향 마을에도 징검다리가 있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우리는 작은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거기에 놓인 징검다리였다.

비가 좀 많이 내렸다하면 영락없이 다 떠내려가,

등하굣길 우리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했던 징검다리였다.

누런 흙탕물이 넘실대며 흘러가는 물속으로,

위의 학년 오빠나 언니들이 책보를 먼저 개울 저편에 갖다 두고,

아래 학년 동생들의 손을 잡고 건너 주던 개울이었다.

 

장마철에는 아침 일찍 논의 물꼬를 보고 온 동네 어른들이

등굣길의 우리를 업어서 건너다 주었다.

아저씨들 두서넛이 개울 앞에 서서

우리 동네로부터 윗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업어서 건너 주었다.

그 중에 우리 삼촌이 가장 키가 크고 든든해서

나는 괜스레 우쭐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윗동네 정희에게 우리 삼촌이다 하면서 자랑도 했을 정도로.

 

하굣길에도 개울에 도착해보면,

아저씨들 몇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애 남의 애 할 것 없이 모두 업어서 건너다 주는 어른들,

그때 나는 어른들은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놀다가 동네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더라도,

그게 서운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어른들에게 당연히 혼나는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를 보호하고 보살펴주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개울에 시멘트 다리가 놓인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우리는 회다리라고 불리던 그 난간에 앉아

별을 보고 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이 모여 처음 소주와 콜라를 섞어 맛을 본 것도 거기에서였다.

회다리 한쪽으로 넓고 편편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이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여름밤이면 거기 앉아 풀벌레 소리 들으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다 본 징검다리는 옛날 우리 마을의 징검다리와 너무 달랐다.

튼튼하고 돌을 고르게 자르고 다듬어 가지런했다.

그런데 왜 비만 오면 떠내려가던 징검다리가 그리울까.

우리를 업어 건너 주던 아저씨들의 넓은 등,

선배 언니 오빠들의 조금 큰 손과 힘,

회다리 위 난간 옆 넓적한 우리들의 아지트,

눈만 감으면 어제 일인 듯 고스란히 떠오른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해서 편리하고 좋은 것도 분명히 많지만

그것 이상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도 사라졌다.

오늘 나는 그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