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는 건 다 한다
우리 가게에 50년을 단골로 다니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이제는 옷을 맞추러 온다기보다, 늦은 나이에 시간을 때우느라 들르는 시간이 더 많다. 자그마한 몸집에 귀염성 있는 얼굴. 나는 그를 ‘호호할머니’라고 부른다. 추운 날 모자를 얹은 그는 천상 호호할머니다. 이제 여든넷. 고운 피부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가 상쾌하기까지 했는데.
“이젠 검버섯이 다 생기네.”
“그 연세에 검버섯이 무슨 대수라고요.”
“이젠 눈물을 질질 흘리는데도 눈물 약을 넣으라네.”
“눈물 나는 거랑 안구건조증은 달라요.” 그녀와의 일상은 주로 이런 대화다.
“귀에서 윙윙 소기가 난다니까.”
“집이는 안 그런가?”
“이제 곧 저도 그렇게 되겠지요.”
“양장점은 더는 늙지 마시게.”
말처럼 쉬운가. 어느 날 고개 들어보면 점이 생기고 어느 날 들여다보면 얼룩이 져 있다. 무릎이 시리다던 그를 따라 무릎이 시린 지 오래다. 다음엔 등이 시리다 했으니 곧 내 등도 시릴 것이다. 그 다음엔 가슴이 시리다 했지? 뭐 좋은 거라고 따라 하느냐는 말이지. 모르는 척 지나치기도 하고 잊은 척 돌아서기도 하면 좀 좋으냐구.
아침이면 출근 전에 약보따리를 챙기는 게 일과의 시작이다. 식전에 먹는 약은 출근 전에 챙겨먹지만 식후 30분이라는 건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챙겨 가지고 출근을 한다. 그러니까 작업 전에 약을 먹는 일부터 시작이 된다. 대부분의 약은 식후 30분에 먹으라니, 두 번을 챙겨먹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급해서 일을 먼저 시작하면 약 먹는 건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저녁 식사 뒤에도 두 가지. 제길 헐.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 먹지않으면 불안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나누어 복용하는 약이 자그만치 일곱 알. ‘영양제’와 ‘보조제’는 딸들이 챙겨주었으니 성의가 괴씸해서(?), 이왕에 있는 것이니 안 먹을 수도 없고. 있는 것만 먹고 더는 먹지 않으려하지만, 약함을 들여다보고 떨어지기 전에 번번히 들여미니. 허긴. 것도 복이라지.
막내 딸아이가 가까이에 없으니 이젠 약을 좀 줄여보자. 당뇨가 위험군의 경계에 있다 하여 기를 쓰고 식이요법 중이다. 정기검진을 할 때마다 약은 먹지 않기를 기대하며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그러나 치매가 겁이 나고 혈관질환이 걱정이고 ‘십중 구’라는 안질환도 손을 놓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냥 잘 넘어가고 한꺼번에 병이 와서 조용히 가면 어떻겠는가.
예방을 하고 막아내고 하니 평균수명이 길어질 수밖에. 한국여성의 기대수명이 85세라 하니 그만큼만 살아도 아직 10년은 더 살겠구먼. 그 사이에 머리 다 큰 외손녀들은 결혼을 할 것이고 나는 증손주를 볼 것이고 보림이는 여고생이 될 것이다. 이쯤이고 보면 보림이 결혼식도 보고 싶은 건 사실인데 과욕이려나?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질 않은가.
의사형부가 말했지.
“부모 외모를 닮아 태어나면 속도 닮기 마련이예요. 처제는 장모님 닮았으니 장수 할거야.”
96세를 살고 가신 어머니를 닮은 나를 두고 늘 하던 말이다. 그럼 20년은 더 산다구? 큰아들은 환갑을 넘길 것이니 우리 며느님 까무라칠 일이로고. 그래도 죽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욕심이라고 욕을 먹어도 보림이가 시집가는 건 보고 싶다. 하이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얼마나 예쁠고. 내 키다리아저씨에게 그리 말을 하니 소리없이 맘껏 입을 벌려 허리를 젖히고 웃는다. 정말 안 될까? 과욕일까? 그러니 약의 가지 수가 자꾸만 늘어날 수밖에.
휴~,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래는 살고 싶은데….
보림아~!
할미가 보림이 시집가는 거는 꼭 보고자프다.
니만 알고 있어라이. 니 엄마가 들으믄 욕할겨.
요렇게 이쁜걸...애교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