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추억을 먹고
출근을 하는 대문 앞에 아주 빨간 단풍잎이 일곱 손가락을 힘껏 벌리고 누워 있다. 순간. 큰아들이 군에 입대해서 보냈던 빨간 단풍잎 생각이 난다. 영내에 단풍나무가 있는데 잎이 너무 고와서 엄마 생각이 나서 보낸다고 했던 아이. 군 생활이 힘이 들어서 엄마 생각을 했냐고 편지를 했더니 그건 아니라는 답장을 받았던 그 아이의 고운 마음을 추억한다.
단풍잎을 주워 책갈피에 넣고 열어보고 또 열어 본다. 그런데 왜 내 눈가가 촉촉해질까?
그 아들 어느 덧 마흔 넷.
주말 토요일이면 내 집에 들리던 큰아들 네 식구가 지난 주일엔 아들이 감기를 앓아서 못 온다고 했었다. 감기는 좀 어떤지. 궁금도 하고 옛날 생각도 나서 문자를 띄웠다.
“네가 군영에서 보냈던 단풍잎 생각이 나서.”
“이쁘네요^^”
“잠깐쉬는여유도좀가지라고.엄마는아직도유아틱하다고좀웃어도보고. ”
“ㅎㅎㅎ.”
엄마가 원하니까 웃는다는 식으로 문자를 보내고는 잠잠하다.
잠깐 그 아이를 생각한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엄지척을 해 보이던 아이. 어미의 만학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내 큰아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농활도 다니며 젊음을 즐기더니 유학 중에 IMF를 맞아 어려워진 집안사정을 감지하고는 아르바이트로 공부를 끝내고 돌아왔던 가슴이 넓은 아이. 내 나이가 칠순을 넘기니 그도 사십을 훌쩍 넘겼다.
사회에 무사히 안착을 하고는 서른여섯의 늦은 나이에 가정을 꾸렸다. 항상 호기롭고 여유롭던 그 아이는 가정을 가지면서 힘들어 했다. 남들보다 적게 버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낭비를 하는 아이도 아닌데 어미가 원하는 만큼 생활이 여유롭지를 못 했다. 어미의 욕심이 너무 컸던 것일까. 장남노릇이 버거울라 싶어서 딴 살림을 냈다.
퇴근은 늘 12시경이고 어느 때는 자정을 훨씬 넘어서기도 하는 듯하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구멍가게도 아닌데 주말의 출근은 보통이고 몸이 아파야나 주말을 찾아 쓰는 듯하다. 그렇다고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라 하지 않는가. 내 아들의 역량이 부족한가 싶어서 제 누이에게 물으니 요즘 회사원들이 옛날 같지 않다고 혀를 찬다.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그렇다고.
“요새 젊은 사람들 다 힘들게 살아요. 12시 퇴근은 보통이예요. 그거 못 버티면 실업자 되는 거지요.” 하지만, 내 아들만은 좀 여유롭기를 매일 기도한다.
“옛날 젊은이들 같지 않아요. 그래서 실업자청년들이 많은 거예요. 엄마 아들 주말마다 엄마 뵈러가는 거 쉬운 일 아녜요. 엄마는 복 받은 양반이세요.”
그렇다 하니 행복하자.
“참. 잊었네. 네 감기는 좀 어때?”다시 문자를 넣자 답이 온다.
“바빠서아플시간도없네요.”
“ㅉㅉㅉ.”
혀를 차는 내 문자는 아직도 읽은 흔적이 없다. 바쁘니까 그만 하자는 무언의 협박 같다.
세상 젊은이들이 그렇다 해도 내 아들만은 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 주말이면 내 곁에서 옛날처럼은 아니어도 저희들 사는 이야기도 좀 들려주고, 엄마의 사는 이야기도 좀 들어 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그리도 어려운고? ‘마음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하지 않던가. 마음이 모자라는 게지. 자꾸만 섭섭한 마음이 든다.
저녁에 아들이 퇴근하는 중이라며 현관을 밀고 들어선다.
“우리 엄마 막내딸 미국 보내고 심심하신가 보네요. 너무 바빠서 짬을 내기가 어려워요.”
“그러게 왜 오누. 누가 뭐랬다고.”
“저녁 먹자.”며 같이 저녁을 먹고 싶어서 부지런을 떤다.
“에미 밥해 놓고 기다릴 거예요.”
‘밥은 해 놓았겠지. 기다리기는 하겠지.’
낮에 버무려놓은 무채를 들려 배웅을 하며 스산한 밤공기에 어깨를 모아본다. 뒤에 섰던 내 키다리아저씨가 어깨를 안아 돌려세우고 씨~ㄱ 웃는다. ‘내가 있잖아~’라는 듯.
보림아~!
어떤 때는 네 애비가 ‘딴집사람’같어야~.
그려도 할미 아들인 거 맞제?
이때가 좋았는디...영감도 나도 아직 마음은 신혼여행중이네요 ㅎ~.
50년 전...에구구. 촌시러버라 ㅋ~.
웃고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