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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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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예뻐해요


BY 선물 2016-10-05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이웃 엄마와 함께 학부모 모임에 갔다.

밥 한 끼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보니 금세 친해진 모양새다.

십여 명 남짓 엄마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했고 저마다 이야기를 들었다. 목소리가 좀 더 크고 좀 더 많은 말을 했던 엄마의 아이는 일단 성적이 좋은 아이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아이들 성적에 따라 엄마들 서열도 정해지는 분위기다. 나 또한 적당히 떠들었고 적당히 경청했다.


돌아오는 길, 이웃 엄마는 앞으로 학부모 모임에 가질 않겠다는 말을 했다.워낙 얌전하고 낯가림이 있는 분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예쁘기만 하던 내 아이가 이런 모임에만 다녀오면 갑자기 미워져요. 남들하고 비교하게 되고 못난 것들만 보이고 해서 나는 이런 모임이 싫어요. 그냥 예뻐해 주기만 할래요.


그제야 나도 그 자리에서 내내 불편했던 마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이 분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꺼내고 싶은 이야기와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주로 자랑거리일 것이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는 부끄럽거나 초라한 사실들 일거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던가, 자랑하는 사람에게 더한 칭찬을 함으로써 내 체면을 세우고 사이사이 내 몫의 자랑도 해가며 서로 어우러졌지만 돌아선 다음 느껴진 피로감은 분명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별 것도 아닌 것을 자랑이라고 떠벌렸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감당해야만 했다.


내세울 것보다 초라한 일들이 많아져가면서 나도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었다. 겸손해지고 싶은 의지와 상관없이 절로 작아져갔다.


그러나 지금은 편안하다. 내세울 것 없어도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다면 결코 작아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끔은 입이 근질거릴 때도 있다. 바닥에서 한 계단씩 올라설 때마다 사람이 만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마디 한다. 아서라. 무덤을 파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