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으면 당신이 예뻐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다. 아니 참 좋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좋다. 그래서 나만의 키다디아저씨도 곱다. 세돌이(우리집 푸들)도 귀엽고, 이제는 제 몫을 다 한 마당정원의 화분도 운치가 있어 좋다. 세돌이가 찢어놓은 광고지의 너절한 조각까지도 볼품 있는 분위기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날엔 까불고 싶어진다. 케케케. 칠순 할미의 까부는 모양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래도 까불고 싶다. 이럴 때 내 <헬스방> 문에 코사지를 만들어 걸어? 어느 역술가가 말했다. 집안에 조화가 자리하는 건 좋지 않다고. 그렇다고 생화 코사지를 방문에? 매일의 수고는 싫다. 스티카는 어떨까. 보림이가 놀던 엘샤도 있고 울라프도 있는데….
에구~. 내 기분은 아직인데 전화벨이 운다.
“엄마. 나, 11월 1일엔 출국하게 되겠어요.”
“오잉?!”
주재원 남편을 따라 어바인으로 떠나는 막내 딸아이의 전화다. 내 좋았던 기분은 요기까지다.
나풀거리며 팔딱거리며 드나들던 막내 딸아이가 멀리 가고 나면 나는 어쩐다? 오매불랑 하고 싶었던 <소묘>를 시작해? 도자기공예를? 아니면 하다 만 서예를 다시 시작해? 아무리 하고 싶었던 소묘라 해도 이제 그걸 시작해서 무엇에 쓰려고? 도자기공예를 시작하면 아마 내 직성상 나만의 가마터를 만들고 싶지 않으려나. 그건 아서라.
친구들과 모임에 나갔더니 이것저것 다시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이 나이엔 그저 건강이 최고이니 헬스장엘 나가란다. 내 집의 운동기구가 헬스장 버금 갈만큼의 이어도 가치 있게 잘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나? 그래?! 머신은 걷거나 뛰면 되고 다리찢기는 찢으면 되고 반신욕은 반신욕을 하면 되고 덜덜이는 털어주면 되고 탈탈이는 올라서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까불고 싶었던 마음은 다시 숙연해지고 풀 죽은 세돌이처럼 다시 멍청해진다. 뭘 하나? 50년 몸 담았던 의상실의 일은 취미활동으로 계속하기엔 벅차다. 시력도 시원찮고 손도 굼뜨고. 늙으면 의도치 않은 일인데 왜 요렇게 변하는지 요새로 많이 의기가 소침해지는 부분이다. 젠~장. 손을 많이 써야한다데 그게 어려우니.
그래서 취미활동을 하는 데에도 제약이 많다. 무리는 하지 말고 적당히 움직이라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말이지. 하다보면 욕심이 생겨셔 무리도 가고 도를 넘기도 하기가 십상이지. 제길헐~. 조물주 하나님이 야속하다. 눈 감는 날까지 건강하게 놔두면 어때서 말이야. 아마 나도 결국은 드러눕고 몸부림을 치다가 가겠지.
그런데 그건 만석이가 아니다. 남들은 만석이가 부자가 되고 싶은 그 만석인 줄로 알지만, 누차 얘기 하건데 그건 아니다. 萬石이가 아니라 晩石이라는 말씀이야. 그러니 드러누었다가 가는 한이 있더라도 미리 그리 예견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지. 가는 날까지 나는 부자 萬石이도 아니고 드러눕는 만석이도 아니라, 영감의 뜻대로 돌 같이 변함없는 晩石이로 존재할 것이다. 음하하 이게 晩石이지.
하하하. 나는 참 묘하고도 기특한 구석이 있다.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이라면 룰룰랄랄 노래도 나가겠다. 내 키다리아저씨가 세돌이를 데리고 내려왔다. 산책을 나가는 길이란다.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도 기분이 썩 좋아 보인다. 오늘 사흘째 잉어탕을 고아 줬더니 기운이 났나? 내가 좋으면 그도 좋아보인다. 오늘은 요렇게 쭉~ 지낼 것 같은 예감.
보림아~!
할아버지한티 아이디를 지어달라 했더마, 만석(晩石)이라 지어 줬잖은감?! 그때 할미는 만학(晩學)으루다가 대학교 합격하고 입학을 대기 중이었걸랑. 그려서 혹시 할미가 공부하기 힘들다고 중도하차할까봐 끝까지 의지를 꺽지 말라는 의미로 그리 지어주셨잖여. 이 할미의 저력을 모르셨던 거여. 그려서 내가 기를 쓰고 열공했는지도 모르제. 사실은 할아버지가 고맙긴 한디 가끔 할미 말을 안 들어서 미운 적도 있제. 할아버지가 고마버서 이쁘지는 않은 아이디치만 걍 쓰는 것이여. 아님 이쁜 아이디도 많은디. 코스모스니 백합이니 장미처럼.
백악관 앞에서(기분이 좋을 땐 요렇게 다정하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