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
다음 날 예정된 딸 아이의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점심식사 준비도 아침 출근길에 바쁠가봐 미리 해놓고 아이들과 야인시대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울린 전화 벨소리
수화기 너머로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
지금 음주로 경찰서에 가고 있어
너무나 놀랐지만 한편으로 믿지 않았다.
18년의 운전경력동안 단 한번도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자기 관리는 직장경력 십수년에 접어든 나도 선배로 여기고 배울 만큼 반듯했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가며 핸드폰을 하니 무조건 오지 말란다.
겨우 경찰서에 도착하니 풀죽은 모습의 남편 얼굴
눈물이 쏟아지려 했지만 진정하고 경찰관과 이야기도 나누어보니 사고다발 지역에서 많은 술을 먹고 10분 이내에 검문에 걸렸다니.
차라리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만약에 사고라도 났다면 우리 때문에 한 가정이 파괴되고 우리 가정도 엉망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 감사합니다.....
농도도 상당했기에 당연히 면허 취소가 되고 상당한 벌금도 감수해야했다.
나에게도 경찰관이 직업 나이를 물으니 남편은 죄는 자신이 지었는데 왜 내 마누라에게 그러느냐고 역정이다.
진정시키고 마침 아시는 경찰관도 같이 나와 다음 수습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같이 왔다.
그날 회사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에 본인의 명예가 실추당했다 느끼고 부하 직원들과 술을 많이 마셨단다.
대리 운전비용은 회사가 부담하는데도 굳이 왠 객기로 핸들을 잡았는지 본인도 뭐가 씌여졌다며 현실이 이해가 안되는듯했다.
다음날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하루 휴가를 내고 남편과 다시 경찰서도 방문하고 여러 가지를 알아보러 같이 다녔다.
계속 남편의 어깨를 두드리며 차라리 다행이니 절대 걱정하지 말라. 진심으로 남편을 위로하고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날은 딸이 전교 회장으로 선서도 하고 릴레이 대표로 뛴다고 했는데 점심도 못주고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의 일이 더 중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낮에 전화가 와서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선생님께 외출을 얻어 동생에게 가서 밥도 사 먹이고 사진도 찍어주고 부모의 노릇을 다 해주었다.
아들은 참 어른스러운데가 있었는데 그날은 가슴이 찡했다.
가족간의 사랑이 이런거구나 싶어 참 고마웠다.
남편은 며칠 진정이 안되는듯 혼자서 우드커니 아파트 앞에 나가 안피우는 담배도 피우고 혼자 있었다. 나중에 가만히 나가서 어깨를 살며시 감싸주었다.
피식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는 남편
그동안 회사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찾느라 밤낮 없이 일하고 아이들 커가는 것도 제대로 못 느끼고 언제나 바빴던 남편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나이들어 가정으로 아내의 곁으로 힘없이 돌아오는 남편인 것같다.
눈빛만 보아도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마음은 어떤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같다.
연애기간까지 합치니 이젠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남편과 같이 한 것같다.
그동안 참 많은 일도 같이 겪고 행복도 같이 만들어 온 사람
이제는 시부모님들께도 그의 부모님이니까 더 잘해드리고 싶고 형제들에게도 그의 형제이니까 더 살갑게 해주고 싶다.
작은 것에는 연연해 하지 않고 이렇게 같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 내 남편이고 같이 걸어나가는 인생이 고맙기만 하다.
남편은 당장 임시 면허가 끝나는 11월 초부터 출근길에 같이 못 데려다줘서 미안해 한다.
여보 걱정마
나도 경력 십년의 베테랑 이라구
이제 내가 당신 한잔 먹으면 데려다줄께
그리고 출근할 때 같이 지하철 타면 되지 뭐.
나느 직장이 가깝고 남편과 같은 코스라 항상 남편이 나를 내려주고 자기 직장으로 갔는데 나 혼자 차를 몰면 남편만 따로 가야한다.
이제는 남편과 같이 버스나 전철을 일년간 사용하고 집안 일은 내가 보기로 했다.
부부간에 힘든일은 서로 나누고 어느새 아이들도 훌쩍 자라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이 작은 시련이 우리 부부의 사랑을 더 굳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항상 길을 걸어도...
맛있는 음식을 하나 만들어도 남편의 선한 눈매가 떠오르고 남편 닮은 아들과 나 닮은 딸이 있어 너무도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맺어진 이 소중한 인연들을 참 곱게 엮어가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