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에 태어나
칠십년을 살고 돌아가신
우리엄마
일제 치하 핍박과 가난을 견디며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우리엄마
결혼하고 십일년을 애 못낳는 여자라서
첩년과 한 방에서 살기도 했다는
우리엄마
육이오 때는 빨갱이 남편을 둔 죄로
온갖 수모를 겪었다는
우리엄마
뒤늦게 얻은 자식들 뒷바라지 위해
채소광주리 이고 장터로 나갔다는
우리엄마
무거운 채소광주리 머리에 이고
시오리 길을 걸어 버스차비 5원을 아꼈다는
우리엄마
장터에 앉아 칠팔월 아스팔트 열기를 들이쉬고 내쉬고
갈증을 참아가며 냉차 값 1원까지 아꼈다는
우리엄마
허름한 옷 거친 음식으로 평생을 살다
마지막 가는 길엔 병원비도 아낀
우리엄마
당신의 희생과 헌신이 너무 커서
고마운 게 아니고 미안하게 만드는
엄마, 우리엄마
미안함과 고마움을 눈물에 버무려
가끔씩 당신을 목놓아 불러봅니다.
엄마...
엄마...
우리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