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80

기억하기로는


BY moklyun 2004-06-30

기억하기로는

 

글.  최순옥

기억하기로는
어스름한 저녁이 오면
대 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는
바깥마당에 쪼그려 앉아, 골목 안 인기척에 귀를 모았다
귀에 익은 발걸음 소리와
습관처럼 카-악 뱉어 내는 헛기침 소리를
몰려오는 어둠의 공포를 밀어내며 기다렸는데
귀가 길에
정해진 의식을 치루 듯 목롯집에 들렸다가
불콰한 얼굴로 돌아 오는 아비는
아마도 메아리가 되 줄 마주할 산이
어느 곳에도 없었기 때문 이였으리라

 

모를 것은 계집아이 소갈머리라
그립던 아비의 무거운 기척을 느끼면
반갑게 그 품을 파고들지 아니하고
방으로 달려가 눈 꼭 감고 잠 든 척을 하니
동그랗게 말고 누워 있는 계집아이의
팥 주머니만한 몸뚱이가 애처롭기만 한 아비는
번쩍 들어 안고 꽃잎 같은 볼만 비빈다
계집아이 또한 얼얼하게 볼을 찌르는
까칠한 아비의 수염같이 따가운 사랑이라도
절실히 필요 하였는지,
그 알량한 짖을 앙큼하게도 해 냈나 보다

 

영원히 품어 줄 것 같은 태산 닮은 아비
연등 환하게 밝히던 날
메아리 되어 줄 산 찾아 떠난 뒤,
무너지고 무너져 한 줌 흙 되 였으리라,
이제, 죽은 어미 나이의 두 배쯤 된 계집아이는
사월 초 이렛날 밤
골목도 사라져 없건만
이슥토록, 귀 세워 헛기침 소리를 기다린다.

2004.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