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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보이는 의자


BY 개망초꽃 2003-10-25



그 곳엔 호수가 하나.
검은 개 두마리
다리 짧은 얼룩 개 한마리 살고 있더래요.

호수를 바라보는 집 안에는
닭을 키우는 부부와
아들내외와 손주와
깔끔한 거실이 있었어요.
호수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네모난 작은 탁자 하나.
방석이 놓인 의자 두개.
성경책이 탁자위에 단정하게 놓여 있더래요.

호수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저녁이 오고 계절이 들낙거리는 창 밖을 보았어요.
물가 가장자리엔 길이 있어
그 길로 봄이 가고 가을이 걸어 왔겠지요.
길엔 버드나무 두 그루
호수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었고
은빛머리카락 갈대는 바람 부는 쪽으로 날리고
호수 표면에는 청둥오리가 동동동 떠 있었지요.
주인 할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하셔서
호수가 있는 이 집을 장만하셨다네요.
할머니는 손주를 업고 두유를 내오시고
나는 창가 자리를 맡아
한손으로 턱을 괴고
호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읽기로 했어요.

청둥오리가 호수길로 올라 왔어요.
검정개와 다리 짧은 개가
청둥오리에게 뛰어가요.
오리는 높이 날았다가 호수에 내려
얼음위에서 썰매를 타듯 수영을 해요.
아무일도 없어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같은 동작만이 반복되었지요.

가진 게 없어요.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사랑은 있어요.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고집만 있어요.

새가 떠나지 않는 호수는 내거예요.
호수가 비치는 하늘도 내거예요.
가을을 뒤집어 쓴 갈대도 내거예요.
나무 몇 그루도, 빈 논도, 멀리 산도,
들풀도, 호수가에 모래마당도,
이 시간만은 다 내거예요.

어둠이 올 때서야 거실 바닥으로 내려왔어요.
도시로 돌아 갈 시간이 된거래요.
다리 짧은 개가 내 앞을 막고 눈을 마주치자 하네요.
콧등부터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었더니 따라 오네요.
우리집에 갈까 물었더니
대답이 없네요.
하긴 도시는 감옥이지.
"너처럼 여기서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