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연기 타고 오는 계절*
깊어진 물색 안에
눈부신 하늘 품어 안은 금강 변을 따라 서쪽으로 나섰다
누렇게 벗어진 채 갈증으로 누운 논둑을 따라서
동면을 마친 늙은 농부가 풍년을 꿈꾸며 놓은 들불
새빨간 불길이 후루룩 미끄러져 달려나가며
이른봄에 내몰린 겨울의 흔적들을 까맣게 다 비하다
굳은 돌 층처럼 박혀 누운 혹독한 계절의 기억들을
살 가운 바람이 맑은 허공으로 신기하게 흩어내고 있다
마른 검불의 영혼들이 너울너울 떼지어 하늘로 오르는데
푸른 연기의 어지러운 행렬에서 조금 멀리
머리에 수건 두른 아낙이 싸리 대 한 묶음 쥐고 흔들며
공연한 바람을 일으키며 혼자 분주하다.
푸릇한 잔디가 간간이 눈에 박히는 놀라움에 심호흡하고
차지 않은 바람이 옷깃을 뒤집어 마음 자락까지 제치는 오늘.
느리지만 기어이 연두 빛 날들이 밀려들어 숨가쁘고
아직은 벗어버린 몸 찢고 새 순 오를 그때는 아니지만
선잠깨어 엉거주춤 뻗어있는 마른 가지위로
황금색 이른봄이 부드럽게 얹히어 얼마나 좋은지.
******2002-3-13-금강변의 나들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