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마중나가러 가는 길.
봄치고는 쌀쌀한 기운에 몸을 움추리기는 했지만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두 아이를 뒷바라지 하느라 양말 한 켤레도 제대로 사 신지 못한 남편, 지난해 초, 갑자기 회사를 퇴직한 남편은 한동안 전전긍긍하더니 봄이 시작될 무렵부터 새로운 일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물론 정년퇴직이라는 게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은 겪는, 당연한 일로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보다 빨리, 뜻하지 않는 이유로 그만두게 되다보니 무척 당황했었답니다.
손에 쥔 것은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남편, 아이들에게는 자상하다 못해 속이 빈 것처럼 무엇이든 해주는,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여유가 없어 언젠가부터는 남편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집니다.
가끔 남편은 집에 올 때쯤이면 전철역에서 걸어오곤 해요. 말로는 운동도 될 겸 걷는다고 하지만 실은 교통비를 아끼려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이 아릿해지곤 한답니다.
나는 남편이 역에 내릴 시간쯤이면 통화를 하고 마중을 간답니다. 혼자 걸어오는 길을 함께 걸으며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데 정작 남편은 내가 너무 많이 걷지 않도록 혼자서 한참을 걸은 후에야 나오라는 말을 합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설렘이나 기다림을 품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되고 다독여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일에 대한 희망도 갖게 되고.
지난 주에는 길가에 서 있는 벚꽃나무들이 가로수 불빛에 환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어 괜히 기분이 좋아졋어요.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길 저쪽 앞에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제가 손을 흔들었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서운해 하지 않는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남편은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 웃었을 거예요. 벚꽃처럼 한한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