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그친 여름날이면
뒷산 작은재에 무지개가 섰습니다
금새 달려가면 무지개 끝이라도 잡을 것
같아 검정고무신을 양손에 쥐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습니다
별이 총총한 밤에는
가장골 야산에 수박서리를 갔습니다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바짝 엎드려
수박 덩굴을 더듬다 보면
등에 쐐기가 쏘이는 줄도 몰랐습니다
추수가 채 끝나지 않은 가을에는
빼곡이 늘어선 밤나무 밑에서 토실한 알밤을
줍느라 주인이 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주머니를 가득 채웠던 알밤을 모두 빼앗기고
허탈하게 산을 내려올 때면 두 눈에서
알밤 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는 겨울에는
비료포대 썰매를 타다 물에 젖은 나이론 양말을
모닥불에 태워먹고 눈썹마저도 태워
저녁이 되도록 집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유년의 추억들이 삽화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일상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잠시 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리구슬처럼 순수한
유년의 기억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잊고 산다면 삶의 공허함을
메우기는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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