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촉촉하고 보소소한 열여섯에
열여덟로 보인다면 공연히 우쭐했었고
피어오르는 스물셋을
스물다섯으로 읽어줄 때만 해도
성숙한 척 시침을 떼었었지
잘익은 스물여섯에
스물여덟인가로 보면
뒷통수를 길게 눈흘겨주다
그러잖아도 심난한 스물아홉을
서른으로 물어오는 사람에겐
목소리가 앙칼진 채 높아졌었지
그리고 서른다섯, 마흔을 넘어가며
더해서 보는 사람 아직 없지만
마흔을 서른일곱으로
예순에 쉰다섯으로 보여지는것이
꼭 그렇게 위안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더해서 보아줄 때의 으슥함보다
줄여 말해줄 때 흐뭇함이 큰것이
내 스스로 별 수 없음이 확인되어
서글픔이 슬그머니 고여오는구나
시집 < 며칠 더 사랑하리 : 집사재 > 중 에서
저자의 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잔주름도, 흰머리도 생겨나지 않을것 같은
희망사항의 막연한 착각속에서 살아왔었다.
어느날, 눈밑의 잔주름을 발견했을땐 < 요즘 내가 피부에 신경을 안써서 . . . > 하며 억지로 위안을 했다가 다시 어느날, 앞이마에 돋아난 흰머리를 발견하고 충격과 함께 나도 별수없이 늙어가고 있음을 확인했을 때 그 마음은 같이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어떤 언어로도 설명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