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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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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수채화


BY 조정숙 2000-08-18




***



장마끝 하늘가엔 몇무더기의 구름이
성급히 가을 흉내를 내고
말복을 앞둔 더위의 환상적인 몸부림이
숨통을 조일때면
낮은 담장 너머로 몇포기의 해바라기가 졸고 있다.



다닥다닥 걸려있는 다락논 마다엔
하나 둘 벼가 패기 시작하고
삽작문 열고 내다 보이는 텃밭엔
엄지 손가락만한 고추들이 주렁 주렁 익어가고 있다.



상추몇잎 뜯어다가 샘물 퍼내 씻어서
점심상에 올리면
들에서 돌아오신 내 아버지는
신발 탁탁 털어 댓돌위에 올리시고
대청마루 위에서 참 맛있게 드시곤 하셨다.



동네 어귀 원두막의 참외도 끝물인듯
지지 해진 덩쿨 사이로 듬성듬성 몇개가 뒹굴고 있을뿐이다.


어린시절, 원두막은 내겐 유일한 놀이터 였다.
그곳엔 어른들의 간섭이나 잔소리가 없었고
손만 내밀면 언제든 먹을것 천지였다.
벌러덩 누워 보면
숭숭 구멍난 서까래 사이로
눈이 무를정도의 푸른 하늘이 걸려 있고
갑자기 소나기 라도 내릴라 치면
토란잎 하나씩 따서 머리에 얹고
집으로 내 달리곤 했다.



적당히 심심해지면 아이들은 슬슬 행동을 개시한다.
서리에 나서는 것이다.
참외 수박 사과 복숭아 고구마...등등
언제나 밭머리에서 망을 보는 담당은 나였고
한번은 과수원집 할아버지 한테 들켜서
혼쭐이 난적도 있었다.
그토록 오금 저리는 장난이 그땐 왜그리 신났던지....



더위가 이슥해질 무렵이면
다리목 께에서의 자맥질로 시간 가는줄 몰랐고
돌아올때쯤이면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논 신발 한짝이
물장구에 놀라 떠내려가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돌아와야 했다.



이집저집 모기불 연기에 옥수수 한자루씩 손에들고
개똥벌레 쫓으며 모여들던
그 골목 어귀에서 만나던 어린날의 친구들...



가끔 찾는 고향에서 난 어린시절의 추억을 돼새겨 보지만
얕아진 개울물, 무성해진 산등성이 사이로
그 시절의 웃음은 묻혀져 갔고
내 유년의 추억들은
희미한 기억속에 한장의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
남아있을뿐이다.



지금 어디선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을
그 시절의 내친구들
이젠 그들의 얼굴에도 하나둘 주름살 지고
삶의 고단함에 젖어 있겠지...
오늘 처럼 장마비가 지리한 날이면 그들이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