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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14

당신을 사랑합니다.


BY 푸른가을엔 2009-09-28

 

여름휴가때 친정가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변변한 결혼사진이 없어서

결혼20주년을 맞이하여

리마인드웨딩촬영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와 남편은
남편이 막 사우디로 떠나기 일주일 전에 만났지요.
5형제의 장남이였고 가난한 살림에
친구와 동업을 하다가 홀라당 전 재산을
말아먹고 말았죠.

남편 나이 26살..
뭐든지 피가 끓을 나이에 그렇게 훌쩍 사우디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자는 단 하나의 이유때문이였습니다.
사우디로 떠나기 일주일전 바람쐬러 부산에 갔다가
나를 만나서 숱한 세월 팬팔로 이어온 사랑입니다.
잠깐 스친 인연이 지금의 부부의 연이 될줄
그당시는 아무도 몰랐었죠.

사우디로 가면 돈을 많이 벌수있다는 말에 모든것을
정리하고 사우디로 가기전에
부산으로 여행을 가는길에 고속버스 차 안에서
나를 만났습니다.
당시 나는 고속버스 안내양을 하고 있었고
부산과 서울을 왕복 운행하고 있을때였습니다.
남편말에 의하면
낭낭한 목소리에 (1980년초반에는 고속버스에 안내양들이
있어서 휴게소나 불편한 사황들을 일일이 방송해주고
안전을 보살펴 주었지요)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생기고 수줍음이 많아보였다하네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길에 만나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 또 만나게
된것입니다. 분명 이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메모지에 회사주소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머뭇머뭇 거리는 나는 당시 초보라 승객이 부탁하는것을
안해주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회사주소를 적어줬지요.
명찰에서 이름을 알아내고 회사주소를 안 다음
사우디로 날아갔습니다.
편지왕래도 힘들었던 시절이라 한달에 한통이 가면 잘 가고
물론 나는 답장도 안해줬지요.
편지라는것이 중독성이 강합니다.
만날수없었고 볼수없었기에 더 애틋하더군요.
편지를 읽을때마다 뭔가모르는 야릇한 감정과
현실속에 사람이 아니라 상상속에 존재하는 사람같고
왠지 멋진 왕자가 되어서 나타날것 같았거든요.

남들처럼 특별한날이 되면 차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좋은곳도
구경가지만 우리는 하얀편지지를 까맣게 채우는 그리움으로
달래야했지요.
데이트한 기억이 없으니 같이 거닐던 오솔길도 없다는것이
가슴아픕니다.
먼 이국땅에서 한달에 한두번이라도 오고가는 편지가
전부였던지라 내 삶은 편지 한통에 울고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전화통화도 할수없었던지라
유일한 통신수단이 바로 편지였지요.

3년의 시간을 사우디에서 보내고
198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우리부부는 서울 변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올해로 결혼한지 2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숱한 좌절과 고민끝에
퇴직후 작은가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년을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한 회사에 마지막 출근하는날
그날은 남편 인생에서 슬픈날중의 한 날이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뭐라고 말도 하지못한체 6개월을 정상 출근을 하다시피 방황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락의 끝에서 우연히 시작하게된 세탁소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세탁소만 차리면 그냥 돈을 벌수있는줄 알았습니다.
몇 년을 적자속에서 발바닥에 피멍이 맺힐 만큼 악착같이 수선을 배우고 세탁의 전반적인 기술을 배우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까지 인생을 배우게 된것같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상가엔 세탁소가 무려 3개나 있습니다.
천원 이천원짜리 수선으로 현상유지도 힘든데 무려 3개나 생겼으니 정말  불경기의 여파가 어딘들 비껴가지 않는군요.
그래도 남편과 열심히 세탁을 하면서 희망을 잃지않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사시사철 산에 오르면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막힌 가슴도 탁 트이고 무엇보다도 다음날 일을 할때
피곤이 한층 덜 하다는 이유때문에 등산을 시작했던 당신입니다.
힘들게 올라가서 내려올것을 왜 산에 오르려고 하는지 이해못했던 나도 당신등살에 떠밀려 한두번 다니다보니 당신을 이해할수있게 되었고 몸도 좋아지는것 같아서 산에 오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천번 수만번의 다림질과 쉴새없이 재봉틀 밟는 당신은
오랫동안 앓아오던 알러지와 관절염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오늘도 작은 세탁소 가게안에는 기계가 돌아가고 먼지 폴폴날리는 실밥을 일일이 손으로 뜯어내느라 구슬땀이 범벅이 되네요.
미세한 옷 먼지들이 당신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속상하지만 합니다.

비가 오는날은 당신이나 나나 너무 싫어하지요.
세탁물이 줄어들면 우리의 수입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죠
요즘은 토요일을 쉬는 회사들이 많아서 더더욱 양복세탁이 줄어서 걱정이예요.
한 상가에 3개씩이나 있는 세탁소도 큰 문제이구요.
다들 어렵다고 자영업을 택한다는것이 중복되는것이 많아서 어려운 형편이 더더욱 힘들게 되어버렸지요.
사랑하는 당신이 처음 세탁소를 차린다고 했을때 많이 두려웠어요.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당신을 1년내내
지켜보는 나도 아들들도 힘이 들었어요.
큰애 작은애가 쑥쑥 키가 자라고 초등학교를 다니고있었고 곧  중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들어갈 돈은 태산이고 뚜렷한 수입이 없어서 많이 안타까워하는중 세탁소를 차릴 것을 권유 받고는 며칠 밤새 고민하던 당신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세탁쟁이라는 말을 듣는것이 너무 싫었지요.
뭐..직업의 귀천이 없다지만 하얀와이셔츠를 입고
정기적인 월급이 나오는 회사에 10년이상 근무했던 당신이
하루아침에 옆집 세탁소아저씨가 되어버리다니....
지금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말이지만 잘 나가는 당신이 IMF로 생계까지 위헙을 받게되다니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지요.


회사를 고만두고 한달내내 양복입고 출근한 남편의 뒷주머니에게 우연히 발견한 일간지의 일자리 메모를 보고선 당신이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퇴직금을 털어넣고 대출을 받아서 작은 세탁소를 차렸을때 당신과 나는 세탁에 대해서 아는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지상태였잖아요.
초창기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세탁물 다루기가 힘들다는 당신입니다.
남들 눈에는 큰 세탁통에 기계로 돌리면 문제될것이 없다고 할지몰라도 막상 세탁소를 운영하다보니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더군요.
같은 상가에 다른 세탁소는 장사가 잘되는데 새기계와 새로운 재봉틀인 우리세탁소는 겨우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도였지요.
20년된 노하우를 가진 기존의 세탁소주인을 따라가기엔 우린 너무
신참이였던것같아요.
하루종일 쉴틈없이 일을 했는데도 매달 적자라니..
이왕 시작한거 제대로 해보자며 정신상태부터 바뀌어야한다고 했던 당신은 지금 7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면 피눈물나는 고생의 연속이였던것 같아요.

결혼하고 집에서 당신이 벌어다주는 돈으로만 살다가 막상 당신과 함께 돈을 벌어보니 천원짜리 한장이 왜그리 귀중하고 소중한지 정말 피와 땀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였습니다.
와이셔츠하나 세탁한 값 2천원.양복한벌4천원.바짓단수선2천5백원. 이렇게 우리는 천원짜리 장사로 인생을 살아가는 부부이지요.

고마운 당신...

우리세탁소가 아직 정상화가 될려면 몇년이 걸릴지모르지만
당신과 나는 하루종일 같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어깨결림으로 고생하는 날 살며시 주물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나 나나 마흔고개를 훌쩍 넘어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네요.
경제적인 면은 부족하지만 매사에 여유를 가져 보자고 한 말 기억하세요?
쉰이 되도록 악착같이 살았는데 반듯한 우리집도 없지만 아프지않고 열심히 공부해주는 두 아들이 있고 눈만 뜨면 당신이 내곁에 함께 일을 할수있다는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당신은 친구들 만날시간도 없어서 절친한 친구도 가끔 전화로 아쉬움을 달래며 세탁일에만 매달려온 당신이지요.
당신을 보면 고맙기도 하지만 너무 미안하고 안스러울때가 많아요.
구구절절 표현을 잘 하지는 않지만 등산할때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당신이 수만가지의 말을 대신하고 있지요.

우리의 꿈은 몇평으로 이사를 가고 멋진 차를 사는것이 아니라
세탁을 맡긴 사람들이 우리가 세탁해준 옷들을 깨끗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입어 주는것이지요.
비단 옷뿐아니라 탁하고 우울한 마음까지 깨끗하게 세탁이 되는것입니다.
1천원의 기적을 당신과 나는 언제든지 믿고있지요.
여보.그러고 보니 우리아들 둘도 철이 참 일찍 든것같아요.
남자둘이라서 집안이 엉망이고 밥도 제대로 차려먹기 힘들텐데
큰애는 밥담당이고 둘째놈은 글쎄 설겆이를 한대요.
7년전 초등학생이였던 두 녀석이 밤늦도록 엄마아빠가 오길 대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이 드는 경우도 있었고
가스렌지에 라면불을 올려놓았다가 냄비물이 쏫아져 화상을
입었던 상처도 고스란히 남아 있네요.
떼 쓰지 않고 잘 참아준 두 아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기특해요.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가면서 웃음을 잃지않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요.
험한 길이 우리앞에 있어도 당신과 두아들은 내 생명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당신의 흰머리도 새치수준을 넘어서 염색으로도 커버가 안 되네요.
나이 들어가는 중후한 멋이 풍기는 당신이 오히려 더 좋은걸요.

우리 세탁소도 가을을 닮아서 높고 청명한 맑은날이 되고 우리가정도 구름없는 쾌청한 날이 되도록 우리가족 모두가 노력하기로 해요.

오랜만에 컴퓨터에 앉어서 당신에게 편지 띄워봅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은 구만리인데 워드속도는 굼뱅이라 횡설수설하기만 하네요.  휴~
눈이 침침하여 오타가 섞였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은 한치의
오타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