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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처럼 여울지다


BY 오틸리아 2022-08-18

그날은 오전 내 울적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박혀있었다. 
세 시간의 강의를 빼먹어가면서 점심도 굶은 채 윤희에게 긴 답장을 쓰고 
또 오후 강의를 듣고 다시 도서관으로 그렇게 다람쥐처럼 오가면서도 
내 주변의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마지막 시간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왔을 땐 오전의 격한 감정들은 어느 정도 추스러져 있었다. 
윤희로부터 전염된 슬럼프를 마음 한켠에 접어두고 습관처럼 창가로 손을 뻗어 책 한권을 집었다. 
공부에 진력이 나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면 무작정 펼친 쪽의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 읽는 것이 이 도서관에 자리 잡은 후로 생겨난 버릇이었다. 
 
니나는 여기에서 거의 1년을 보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서......
나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사실은 ‘生’이 자기에게 과하는 온갖 과제를 자기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유형지에서 니나는 불행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한 난관을 극복했을 때 우리는 불행한 것일까?

 
 한 난관을 극복했을 때 우리는 불행한 것일까? 마치 선승(禪僧)이 내던져 준 화두(話頭)처럼 난해한 이 문구를 나는 한참 동안 곱씹어 읽었다.
 
나에게도 어쩌면 이곳이 유형지일 수도 있는데, 과연 나도 니나처럼 生이 나에게 부여한 온갖 과제를 수행해 낼 수 있다는 의지를 스스로 품고는 있는 건지. 
 
나는 펼쳐진 한쪽을 거의 다 외워갈 즈음에야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는 한권 한권 책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넘게 누워만 있는 책들을 이번에는 세로로 세워서 수험교재와 대학교재, 그 외 읽을거리 순으로 창 난간에 정렬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수험교재들 사이에 못 보던 책이 몇 권 있었다. 
서울의 이름 있는 학원 교재들이었다. 
손때가 살짝 묻어있는 겉표지에 검정 매직으로 K.Y.G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아 교련복의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그가 언제 다녀갔던 걸까. 
그러고 보니 체육대회 날부터 며칠 동안 공부에 손을 놓고 있었다.
 
제가 보던 건데 도움이 될는지 몰라서 두고 갑니다. 필승!
 
여자 필체처럼 또박또박 볼펜을 눌러 쓴 메모를 보면서 문득 그의 갈색 눈동자가 떠올랐다
순조로운 항해였다. 
페이지마다에 그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교련복이 두고 간 교재들로 인해 다시금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파란색 밑줄이나 빨간색 참고 표시, 그리고 중요한 대목에 자세한 부연설명까지 덧붙여 놓은 꼼꼼함에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가끔씩 접하게 되는 여백의 낙서들이 단조로운 내 일상에 하나의 흥밋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낙서들을 읽으면서 낙서를 쓰던 당시의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 또한 미묘한 재미가 있었다. 
 
 
그즈음 나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스포츠가 열게 해준 내 울타리 안으로 객들이 찾아들었다. 
순길을 비롯한 여학생들이 나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네들은 독거생활중인 나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어느 날은 라면을 사오고 또 어떤 날은 부침개 재료를 잔뜩 가져와서 온 집안에 기름냄새를 풍겨가며 왁자지껄 떠들고 놀다 가곤 했다.
 
 
마당 가운데 우뚝 선 목련나무의 꽃이 누렇게 시들어 떨어져도 나는 더 이상 혼자 우두커니 그 모양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다. 
목련과의 아쉬운 작별에 뒤이어 붉은색 넝쿨장미 봉오리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어주었다.
 
 
넝쿨장미 봉오리가 빨갛다 못해 검붉은 색을 띄며 활짝 꽃으로 피어나던 즈음이었다. 
학교를 가려고 대문을 나서던 나는 골목어귀에서 어딘지 낯익은 뒷모습을 보았다. 
길쭉한 키에 살짝 휘움한 등어리, 웨이브 진 장발을 본 순간 璡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른 아침에 璡이 왜 이 동네에 있는지 의아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췄고 璡도 막 내 쪽을 향해 등을 돌려 멈춰 섰다. 
 
璡의 하얀 덧니가 싱긋 웃었다. 나도 얼결에 어색하게 웃었다. 
 
- 놀랬죠?
- 네. 조금.
- 나 지난 주말에 박선배 집으로 이사 왔어요.
 
놀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그렇잖아도 그동안 받은 편지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워 마주치기 싫었는데 
璡이 이웃이 되었다는 것은 앞날이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라는 예감이 불쑥 들었다.
 
학교까지 어쩔 수 없는 동행을 하면서 앞으로 매일 이렇게 함께 등교를 해야 한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옆에서 싱글싱글 웃으며 걷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璡은 이 모든 것을 이미 계산한 것 같았다. 
혹시 골목에서 마주친 것도 이미 璡이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건가? 우연을 가장해서?
 
갑자기 박선배가 원망스러웠다. 
한번쯤 귀띔이라도 해줄 것이지. 
그랬더라면 이사를 극구 반대라도 하든지 아님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터인데.
璡의 속셈을 빤히 알면서 세를 내어준 것이 못내 서운하고 불쾌했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璡은 마치 연인에게 인사를 하듯 다정한 어투로 ‘혜주씨 잘 가’ 하며 손짓을 해보이고는 경상 대학 쪽으로 걸어갔다. 
그나마 학부라도 다른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누가 볼세라 빠른 걸음으로 본관을 가로질러 강의실로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강의실을 들어가면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이방인처럼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가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강의실로 옮겨가거나 도서관으로 달음질치곤 했는데 이제는 이름들도 다 외우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거나 농담을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 어서와, 윤다무르!
 
누군가 강의실로 막 들어서는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강의실 입구에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 윤다무르, 네 별명이야. 혜주 니가 항상 입을 꾹 다물고 사니까 우리 과 남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이란다. 
 
양볼에 주근깨가 촘촘히 박힌 현숙의 설명을 듣고서야 상황판단이 되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별명을 부른다는 건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을 제거하고 한층 친밀한 단계로 업그레이드 되어간다는 의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