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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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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처럼 여울지다


BY 오틸리아 2022-08-11

그 날 이후로 며칠 째 교련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의 갈등을 접고 이제는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얼결에 내 자리가 되어버린 창가의 아지트에 나도 남들처럼 성을 쌓기 시작했다.
국, 영, 수, 국사,,,등의 교재들과 머리 식힐 때 읽을 만한 소설책 몇 권을
창문 난간에 세로로 쌓아 나만의 영역표시를 해두었다.
다행이도 구석자리이다 보니 바로 옆에 창문 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좁은 책상에 답답하게 책 더미를 쌓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위에 수건을 하나 덮어 놓으니 완벽하게 은폐가 되고 누가봐도 주인이 있는 자리처럼 보였다.
이제는 교련복이 오더라도 내가 입주자임을 주장할 자신이 생겼다.

가고 싶었던 여대에 보기 좋게 낙방을 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시 그 끔찍한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었고 그렇다고 성에 차지 않는 학교를 마지못해 다닌다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서 이 학교에 등 떠민 것이 여섯 살 위인 언니였다.
딸은 엄마의 운명을 닮아가고 자매는 서로 또 운명을 닮아간다더니 나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갓 대학 신입생이던 언니가 자살을 시도했었다.
한 줌의 약을 들이 삼키고 신음 중인 언니를 처음 발견한 것이 나였다.
그땐 단지 복통을 호소하는 줄만 알고 동네 약국으로 내달음쳤는데 언니의 좌절이 지금에 와서야 이해가 되었다.
주사 바늘도 무서워하는 겁 많던 언니가 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은
딱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 때문이었던것 같다.
운명처럼 우리 자매는 같은 여대를 동경하고 같은 과에 지망을 했다가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 언니는 언니가 못다 이룬 꿈을 내가 이루어 주기를 바랐고
나는 나대로 항상 간직해오던 나만의 이상향에 도전한 것이었다.

우리 자매가 똑같이 한곳을 바라보게 된 것은
어느 날인가 우연히 언니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책 한권, 바로 그 한권의 책 때문 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묘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 제목과 나와 같은 '혜'자가 들어가는 전혜린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잡아 당겼다.
불꽃처럼 살다가 서른둘 나이에 자살을 했다는 독일 유학파 천재 작가 어쩌고 하는
부연설명이 표지 안쪽에 적혀있는 그 책을 밤을 꼬박 새면서 읽었었다.
그렇게 전혜린은 언니와 나의 우상이 되어있었고 한없이 눈만 높아져갔다.
그리고 불꽃을 채 붙이기도 전에 좌절을 맛보고 만 것이었다.
언니는 내가 자신처럼 무모한 짓을 벌일까봐 노심초사 나를 지키고 보살폈다.
행여 내가 좌절하고 포기하지나 않을까 싶어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것이
재수를 하더라도 일단은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지방 후기대학이지만 다니다 보면 정붙일 친구도 사귈 수 있고
혹시 모를 재 실패에 대비한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한 결정이었다.

도서관 안이 술렁술렁한 것이 강의 시간이 끝난 모양이었다.
자리를 뜨는 학생들과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학생들로 실내가 부산스러웠다.
나도 얼른 가방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저만치 중앙통로를 걸어 들어오는 교련복이 보였다. 그는 두리번거림도 없이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시야가 아득해지면서 일체의 사물들이 암전 상태로 숨어버린 듯 했다.
넓은 도서관 안에 오직 교련복과 나 단 둘 뿐이었다.
가지런히 열을 맞춰 배치된 책상들도, 어지럽게 널려있던 책들
그리고 앉았거나 오가는 학생들도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뭐 어차피 학교 도서관 자리가 세를 주고받는 것도 아니고 따로 주인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마치 주인 몰래 빵이라도 훔쳐 먹다 들킨 느낌이랄까.
어엿한 입주자임을 주장하겠다던 좀전의 자신감은 어디로 가버린건지...
아무튼 무언가 뒤가 켕기는 그런 느낌이었다.

교련복이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자신의 자리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주춤거렸다. 나는 얼른 자리를 벗어나려고 좁은 통로를 막고 서있는 교련복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지나갈수 있도록 몸을 비켜준다는 것이 자꾸만 서로 같은 방향으로 비켜서는 바람에
결국 우리는 서로를 마주본 채로 멈춰서고 말았다.
교련복의 가슴께에 붙은 하얀 명찰에 김영규라는 이름 석 자가 바로 내 코앞에 보였다.
나는 그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게처럼 옆걸음질 쳐서 통로를 빠져 나와 도망치다시피
도서관을 나왔다.
얼마나 황망히 걸었는지 처음으로 도서관 계단 수를 세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 내려왔다.

강의실로 향하면서 생각해보니 내 행동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깟 자리 내어주면 그만인 것을.
아니 뭐 자기가 세를 낸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며칠씩 나타나지도 않았으면서 자기 자리라고 주장할 권리도 없는 거잖아.

혼자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서자 여학생 서넛이 모여 앉아
주말에 있을 미팅이야기로 한참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끔은 그 친구들의 밝은 모습이 좋아보였다.
어떤 갈등이나 고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현실에 만족하는 듯한
그네들의 영역에 나는 감히 낄 생각조차 못했다.
까르르 혹은 킬킬대는 웃음마저도 평화로워보였다.
하지만 부러움은 내가 느끼는 감정의 0.몇 퍼센트일 뿐 나는 너희들 따위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건방진 자만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던 탓에 그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 난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어울리는 것뿐이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세계는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입시와 고된 씨름을 하며 보낸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는지
틈만 나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캠퍼스의 사냥꾼처럼 사냥감을 노리고 다니는 모습들이
내게는 참 생경해보였다.

다음 수업은 내 지도교수님의 교육사 강의시간이었다. 작달막한 키에 거무스름한 피부,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결순(缺脣)증을 지닌 때문인지 강의 내내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
침 세례를 날려주는 혀 짧은 소리의 교수님 강의가 그날따라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