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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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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후 15- 'Walking, Walking'


BY CALM 2016-03-07

  앞이 깜깜해지면  안에서는 애벌레들이 줄지어 내려오다 쌓이면 나방이 되어 날아 다니기 시작한다. 이왕이면 나비가 아니고 나방인가 싶어 와중에도 나방을 나비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 했었다. 하지만 야행성인 나방만이 부드러운 고치를 깨고  시력 상실 안에서 펄럭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눈이 멀면 그저 조용히 누워,  어둠 속에 빛을 찾아 다니다 맞아 죽기 일쑤인 이들의 퍼덕거림을  지켜보며 나의 '가시성 시력장애' 받아 들였다.

   '의준'씨의 장례 예배에 검은색 윗옷으로 ,'정자' 아줌마가 대학 입학 선물로 년을 고생하며  짜준 코트를  '지성' 오빠가 직접 입혀주며 " 정말 맞는다. 내가 기장이며 소매며 항상  사이즈를 엄마한테 말해 주었는데. 양장점에서 맞춘 보다 고급스럽다" 했던 것을 걸치며, '오는 길에 어디다 버릴까'생각했다.

'오래전처럼 실패함이 없이......' 국민학교 5학년 , 고모의 극성과 담당 아나운서가 고모의 동창이라는 입김으로 방송국의 '어린 천사들'이라는 어린이 합창단에 빨강 빵떡 모자에 빨강 망또, 하얀 스타킹에 빨간색 구두를 신고 지나 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방송국에 다녀야 했다. 노래도 잘 못 부르고, 친구들과 달라 보이는 것도 싫어 '안 하겠다' 나를 붙들고 '흑백 TV지만, TV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의상들을 차려 입은 아이들이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이국의 동요들을  탬버린을 흔들며 부르는 것은 ' 김 일' 박치기에  환호하였던 시청자들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것이라' 음악 선생님의 설득과 민스럽다는  표정이  자랑스러운 표정을  감추어 내지 못 하고 있는 고모가 선생님의 말씀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학교의 명예이기도 하다' 대목에 가서 한숨을 '' 쉬는 통에  할 수 없이 다녔지만, 나는 싫었다. 빨강 황금 박쥐로 보이는 것도 싫었고,무엇보다 쉬는 시간이 되면 '어린 천사들' 엄마들은, 천국의 중앙에 자기 아이들을 세우기 위해 튀기는 끌어 당김들을 했는데 '오늘 표정이 좋아 보여요, 뒤로 보내야 해요. 저 애는 단추가 간당간당해요 옆으로 비켜 주세요.  애는 입을 붕어 만큼만 벌려요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가지 가지 이유들이 주렁주렁 달려 천사들이  이리 저리 우왕좌왕하게 될수록 고모 친구, 아니운서 이모 가방에서 바나나, 미제 통조림, 일제 기린 맥주, 피에르 가르탱 손수건, 오드리 햅번이 쓰고 다닌다는 양산들이 우리 대청 마루에 펼쳐져 자랑거리로 뒹굴면 고모도 안방으로 들어가 이것 저것 뒤져보며 한숨을 쉬게 만드는 것도 이상했다. 방송국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정자 아줌마의 역할이었는데, 아나운서 이모의 가방이 터져 나오던 그날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육교 위를 올라 오다가 소복히 눈만 쌓여 있는 동냥 그릇 옆에  업드려 있는 아이도 눈덩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망또를 위에 덮어 주고 와서 '옷을 잃어버려 더이상 방송국에 다닐 없다' 고모에게 말하였다. 고모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 보더니 한숨을 쉬며,'그렇게 싫으면 없지만 옷은 방송국에서 대여해 것이니 돌려 주어야 한다' 하셨다. 때마침 과외 선생으로 '지성' 오빠가 나가더니  " 그 거지 애가 주제를 알아, 입고 있지는 않고, 자리 밑에 깔고 있는 것을 잡아 기니 뒤로 발랑 넘어지더라"  새된 소리로 말하며 빨강 망또를 앞에 들이밀었었다. '오늘 검정 털실 코트는 의지대로 버려질 있을 것이다'생각하며  코트를 걸쳐 입는 나를 흐믓하게 바라보는 ' 지성' 눈길을 하였다. 장례 예배가 끝나고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그의 어머니에 의해서 아들의 '자살' 선명해 질수록  우리의 구호도 선명해졌다. <살인 정권 타도> 나도 한참을 정신없이 외치며, 최류탄, 곤봉, 방패, 몽둥이 사이를 넘나들다  백골단의 곤봉이 앞에서번쩍 하더니. 이마 위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코트 앞자락의 코사지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물 가물 바라보며 '이제 옷은  제대로 버리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곳 저 곳에 상처 딱지들을 붙이고  며칠 만에 찾아 있었던 하숙방 앞에는  날의 코트가  실버 잠자리를 달고 기다리고 있었다.   코트를 뒤뜰에 나가 태우며 얇은  잠자리 날개로 상처 딱지들을  긁어 같이  태웠다.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다시 흐르는 피가, 섬세하게  세공된 날개 사이로 스며든 잠자리 브로치는 '의준'씨가 '까치호' 밑에 매달아 놓았다.                                       '언젠가는  수장되리라...  지금 칼날을 시퍼렇게 세우고, 떨어지는 눈물도 쳐 낼 있다고 생각하는 무인들(일본에서  잠자리의 상징)의 과대 망상들... '   그날 나는 국민학교 사회 참고서 뚜껑 속에  아빠가 끼워 놓고 간 카세트 테입에 들어있는 칠레의 저항 가수  Victor Jara   목이 부러지고 몸에 구멍이 발견되고도  년 세월을 넘어 우리나라에서 다시 살아나 부르는 것 같은 <Caminando Caminando-Walking, Walking> (*URL -Youtube) 들으며 밤새도록 살 타는 냄새에 잠을 못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