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203

25년 후 8 - 거울 속에 그


BY CALM 2016-02-02

역사의 터널을 지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 뿐 만 아니라 동.식물. 자연의 변화도 그 시대의 터널 안에서 안녕과 위험을 겪다가 저 세상으로 가며 터널을 벗어난다. 같은 터널 안에서 살아 났어도  참 다양하게 그 속의 풍경을 기억한다    .- " 아 그때/ 데모하는 얘들 무지 많았어도 나는 캠퍼스 커풀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 바빴어 그때 최류탄 무지 매웠지 아마 백김치를 해서 공중에서 흔들어서 먹으면 전라도 매운 김치 저리 가라 였을 걸 하하" 웃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감옥을 가고 고문을 당하고 살아 남아서 복학을 하고 국회 의원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때 일을 무용담으로 반복하다 소주의 안주거리 조차 되지 않는 시대의 흐름을 한탄하며 화석이 되어가는 기억을 자신들의 주름 속에 묻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일을 당하였든 과거를 거세하고 살려는데 / 왜 TV 드라마에서는 그리도 쉬운 기억 상실증이 찾아 오지 않는지 정말로 로고 테라피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 다 살아남은 사람들 이야기다. -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상처 속에서 지워짐을 당하고 잊혀져야 하건만 세월은 거울 속에 비친 그의 얼굴에 짙은 안개를 덧붙이기는 해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 거울은 어디에나 있었다.  Dr. Flu는 내게 거울 속의 그와 이야기 하라고 했다. 그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거울 속의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슬프게 나를 바라 보았다.< 총알이 관자노리를 뚫고 뇌를 휘젓고 목덜미 뒤로 나갔어도 '자살' 이라는 메모 하나로 처리 되었던 시대>의 터널 안에서 여전히 나도, '그를 살릴 수 있는 정보' 라고 내게 쪽지를 건네 주었던 ' 문 지성' 도 살아 남아 또 다른 터널 안에서 만나고  있다.   이 사람은 무엇을 믿고 내일 귀국 할  비행기까지 취소하고 나를 따라 나선 것일까? 

'사'자가 붙을 아이들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아이구!  예비 판. 검사님, 의사님들!'은 '현실이 아무리 비루해도 장차 자신의 파워를 기약하며 참는다'고 생각한다. 참다 보면 현실이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이 너무 경거망동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난한 집 학생이 사법 고시에 붙으면 ,가난도 긍정적 힘으로    대서특필 되지만 운동권 학생이 잡히면 가난을 비관한 삐뚫어 질 수 밖에 없는 집안 사정이 되어 보도 되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전자를 택했다. 실직을 당한 고모부는, 한 팔로라도 고모부의 허리를 두루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얇아져서 요양이 필요했기에 고모는 안국동 집을 팔며 내가 20년을 보냈던 방 한 칸은 하숙으로 계약을 하시고 시골로 내려 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두고 가신 돈을 학자금으로 충당하며  더이상 고모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이곳 저곳에 의학 상식을 기고하며 용돈을 벌었다. '여드름과 콩장' '치질과 좌욕' '잠 안 오는 약과 집중력' 같은 내용을  보내고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우체통을 열어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울역 광장의 가두 시위에 섞여 있었다. 교수님들의 시 낭송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제자들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도 시인 교수님들의 감수성은 사그라들 줄 몰라 '주머니 속의 행복'을 읊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축하 꽃을 배달하고 받은 돈으로 고모부께 새 허리 띠를 사 드릴 계획이었다. 내가 탄 버스는 시위대와 전경과 경찰과 백골단에 막혀 더이상 나 갈 수가  없었고 닫힌 문 안으로 들어오는 최류탄은 산 채로 질식사를 부르고 있었기에  차에서 내려 시위 학생들과 함께 뒤엉켜 달아나다 서울역 매표소의 줄에 숨어 들게 되었다. 같이 쫓아 들어 온 백골단들은 학생인 듯한 운동화를 신은 사람은 하나 하나 골라내어 무조건 머리채를 휘어 잡고 끌고 가  전투 경찰에 인계하였고 그들은 곤봉으로 온 몸을 두들기며  닭장 안에  학생들을 구겨 넣고 있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고모나 고모부가 TV에서 내가 질질 끌려 가는데  '북의 세력에 동조하는 철없는 학생들에게 언제까지 관용을 보일 수 없다'는 자막을  보시고, 기절하는 불상사는 막아야겠다는 일념에 내 앞 줄에 서있는 군인의 팔짱을 무작정 끼었다. 그가 흠짓 놀라며  나를 내려다 보고 이미 만신창이된 내 운동화를  보았다. 그리고 말 없이 그의  군용 가방을 내게 건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