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을 누른다. 들과 아미, 버들, 이든, 누리를 부른다. 인터폰을 받자마자 다들 건너온다. 꼭 말이 오간 것처럼 들어서면서 왜냐는 말부터 묻는다. 뫼가 그런 그들을 앉히고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말한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누리가 성을 낸다.
“어쩌긴? 니들 생각을 말해달라는 거지.”
“난 반대야. 그동안 놈에게 당한 게 어딘데?”
“누리 말이 맞아. 그뿐이 아니잖아. 놈이 잘못 되면 우리에게 좋은 일 아냐? 애니 쪽만 상대하면 되잖아.”
아미가 누리의 말을 두둔하며 따지고 든다.
“니들 말이 맞아. 한데 그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아.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아줌마에겐 도와 달라고 해봤어?”
“아직. 니들 말을 들어보고 하려고.”
“우린 다 반대야. 아줌만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줌마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니들 생각을 물어보는 게 먼저야. 어차피 도움을 청할 곳은 아줌마뿐이잖아.”
“우린 반대야.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까진 못해. 뾰족한 다른 수도 없고. 아줌마라면 우리와는 다를 거야. 우리보다 그쪽을 더 잘 아시잖아.”
“주무시고 계실 텐데?”
뫼가 망설인다.
“그럼 어때? 딱 한 번인데.”
“들. 알았어!”
뫼가 이선을 깨운다. 이선이 허겁지겁 컴퓨터로 달려온다.
“왜?”
“이균이 갇혔어요. 죽어가고 있어요. 살려 달래요.”
“그래서?”
“어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요.”
“죽어가고 있다고?”
“예. 애처롭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요.”
이선이 선뜻 대꾸를 못하고 뜸을 들인다.
“무시해! 어떤 놈인데?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 그동안 우리가 바랐던 바 아니야?”
누리가 뫼의 말에 어깃장을 놓는다.
“어떻게 내버려 둬? 죽을 텐데.”
“그래도 안 돼! 놈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누리가 눈을 치켜뜨고 노려본다.
“그래서? 죽어가는 거 알면서 그냥 두겠다고?”
뫼도 물러나지 않는다.
“놈이 죽든 말든 우리와 무슨 상관인데? 오히려 좋은 일 아냐? 잘 됐잖아. 우리 손으로 죽이지 않아도 되는데, 왜?”
아미도 기를 쓰고 반대한다.
“며칠을 아무 것도 못 먹었대요.”
뫼가 이균의 눈빛을 떨쳐내지 못하고 말한다. 그도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데 이해 같은 걸 따질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알았어. 내가 가볼게. 서둘러야겠다.”
티격태격 하는 걸 듣다 못한 이선이 나선다.
“물하고 먹을 걸 좀 가져오래요.”
“아줌마 잘못 되면 어쩌려고?”
이든이 가만히 지켜보다 대든다. 퍼뜩 정신이 든다. 인터폰을 마구 눌러본다. 하지만 이선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봐야겠어.”
“어딜?”
“이균의 방. 아줌마 혼자는 위험해.”
“그럼 다 같이 가. 니가 밀어내면 되잖아.”
아미가 불퉁거리며 말한다.
“그래. 아미 말대로 해. 혼자보다는 함께 있는 게 낫잖아.”
들이 뫼를 누그러뜨린다.
“알았어. 그렇게 해.”
뫼가 몸을 떤다. 들이 가만히 감싼다.
“떨려 죽겠어. 왜 이러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뱉어봐! 우리가 함께 있으니까 걱정 말고.”
들이 뫼의 등을 토닥인다. 누리와 이든, 아미와 버들이 둘을 낯설게 뒤에서 바라본다. 들은 뒤통수가 따갑다. 그래도 참아낸다.
“가자! 아줌마 도착하겠다.”
뫼가 마지막에 선다. 뫼가 빨려 들어가는 힘에 모두가 밀려간다. 이선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균은 힘없이 바닥에 누워있다. 뫼가 얼른 다가가 그 옆에 쪼그려 앉는다.
“아줌마가 오고 있어요. 물하고 먹을 것도 가져온다고 했고요.”
“고마워! 벽에 기대서 눈이라도 붙여. 오는데 시간이 걸릴 거야.”
말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기어들어간다. 겨우 말을 하고 눈을 감는다.
“니들 눈 좀 붙여.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나도 니 옆에 있을게.”
들이 옆으로 와서 바닥에 앉는다. 이균이 희미하게 웃는다. 뫼는 왜냐고 묻고 싶은 걸 참는다.
동이 터올 무렵이 되어서야 이선이 나타난다. 다들 이선에게 다가가 에워싼다.
“아줌마예요?”
버들이 와락 품에 뛰어든다. 이선이 어정쩡하게 들을 품에 안는다.
“저도요?”
버들이 떨어져 나오자 이번엔 아미가 기어든다.
“엄마 품이 그리웠구나?”
“물하고 먹을 것은요?”
“여기.”
뫼가 이선의 손에서 종이가방을 받아든다.
“우선 먹이자!”
이선이 아미를 안았던 팔을 풀고 컵에 물을 따라 조금씩 흘려 넣어준다. 이균이 눈물을 흘리며 받아먹는다.
“댁이 생명공학자요?”
이선이 칼칼한 목소리로 묻는다. 이균이 눈시울을 적신다.
“우선 목을 축이고 허기만 달래요. 간만에 따슨 게 들어가서 창자가 놀라겠네.”
다들 이선이 하는 것을 지켜본다. 이균의 몸이 서서히 살아난다. 기운이 도는지 일어나 죽을 허겁지겁 몰아넣는다.
“왜 그랬어요?”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랬어요. 이제 가세요. 놈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니들도 가!”
이균이 불안한지 서두른다.
“그래. 오늘은 이만 가는 게 좋겠다. 날이 밝았어. 미적거려서 좋을 거 없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자!”
“아줌마!”
버들이 다시 이선의 품에 안긴다. 이선이 버들의 얼굴을 감싸고 어루만져준다. 다들 버들과 이선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냥 놔두고 싶다. 하지만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누리가 버들을 잡아 끈다.
“물과 먹을 거 넉넉히 사왔어요. 며칠은 걱정 없을 거요.”
이선도 돌아선다. 뫼가 아쉬운 듯 뒤돌아본다. 이선과 눈이 마주친다. 이선도 선뜻 돌아서지 못한다. 눈길에 애잔함이 묻어난다. 뫼는 고개를 이균에게로 돌린다.
이균이 가라고 손짓한다. 그러더니 일어나 컴퓨터로 가서 뫼 대신 마우스를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