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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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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두 모습


BY 한이안 2015-07-03

뫼가 창을 띄우고 속창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간다. 날씨와 관련된 뉴스가 화면에 뜬다.

20131월은 폭설이 많이 내렸단다. 날씨도 평균기온을 밑돌았단다. 지구 남반부에선 산불로 수많은 나무들이 타버렸고, 여름이 되면서는 폭염과 폭우로 지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게 다 환경오염 탓이란다. 온실가스로 평균기온이 2도 정도 올라갔으며, 오존층도 엷어지거나 파괴돼 자외선은 점점 더 강해지고, 북극의 빙하는 녹아내리고. 난리법석이란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무슨 말인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환경오염이란 게 뭔지도 아리송하다. 그래도 좋은 게 아니라는 것만은 다들 내용으로 감을 잡는다.

화면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아. 여자의 글에도 이 사실이 쓰여 있었어. 이게 여자의 글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들은 영 알 수가 없다. 상상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7987년을 건너 뛴 만 년을 그린다면 현실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한데 여자의 글 속엔 화면에 나타난 2013년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잔 환경문제를 걱정하고 있었어. 폭설이 내린 걸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에 나타나는 이상기온엔 가슴 아파했어.”

이든이 들의 말을 뒷받침하고 나선다. 하지만 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게 뭔지 헤아려보려 머리를 쥐어짜낸다. 하지만 튕겨져 나오는 건 없다. 환경오염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자신들을 만 년으로 보냈다는 걸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쨌건 2013년은 지구가 많이 아팠다는 건 확실해. 한데, 환경이 오염됐다는데 도대체 어떤 환경을 말하는 거지? 우리가 보는 2013년은 환상 그 자체이기만 한데.”

이든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화면에서 본 걸로는 상상을 해낼 수가 없다.

더 읽어보자!”

뫼가 화면을 위로 올린다. 새로운 내용이 화면에 뜬다.

전부가 오염됐어. 대기도 오염되고, 바다도, 하천도, 토양도 오염되지 않은 게 없어. 홍수로 산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고·····.”

뫼가 화면에 뜬 내용을 간추려 말한다.

좀 전에 본 2013년과는 너무도 딴 판이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알 수가 없어. 헌데 오염 됐다는 게 무슨 뜻이지?”

버들도 짜 맞추는 게 쉽지 않다. 화면을 도배하고 있던 2013년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만 년에서 보면 신기루 같은 세상이기도 하다. 아픈 곳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데 화면에 뜬 글에는 지구가 온전한 곳이 없는 것처럼 쓰여 있다.

아프다는 뜻일까?”

더러워졌다는 뜻 같아.”

버들의 말을 뫼가 바로잡는다.

겨우 그걸 가지고 떠들어대는 거야.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롭다고? 씻어내면 될 걸.”

물이 더러워졌다면 먹을 수 없을 테니까.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을 테니까. 공기가 더러워졌다면 숨을 쉴 때마다 더러운 게 몸속으로 들어가 쌓이게 될 테니까.”

뫼가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런 거야? 내 생각이 짧았던 거네.”

하지만 다들 깨끗했지 않아? 보기도 좋고, 먹음직스럽고, 활기도 있고. 한데 그게 더럽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 듯해. 지구를 멍들게 한 게 겉으로 드러나는 정갈하고 깔끔한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아마도 그 이면이 아닐까 해. 사람들의 욕심이 화려함과 환상을 좇아갔고, 그 결과 지구 전체가 더러워진 거야. 씻어낼 수가 없을 만큼. 그래서 지구가 화가 난 것일 수도 있어. 사람들은 그걸 무시했을 테고. 그랬을 거 같아.”

뫼가 나름대로 추리한 것을 말한다.

이게 시작이었을까?”

이든이 무겁게 말한다.

뭐가?”

멈추지 않고 이대로 가다간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수밖에 없어. 인류는 멸망할 게 빤하다고. 지금 봐! 우리 외엔 아무도 없잖아. 다들 깊은 병이 든 지구에서 살아내지 못하고 멸망한 거라고?”

맞아. 인류는 멸망했어. 우리 여섯만이 살아남은 거야. 우리 쪽에서 보면 그래. 2013년의 사람들에게는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자연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가 지금 우리라는 거지? 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 물론 몇몇 사람들은 2013년에 이미 자연의 보복을 말하고 있긴 했어. 하지만 그걸로 우리의 현실을 엮기엔 턱없이 모자라.”

들도 인류의 멸망을 밀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2013년에 닥친 일이 아니다. 멸망에 대해선 그녀도 2013년의 사람들 생각과 다르지 않다.

“2013년을 기준으로 보면 턱 없이 모자라다는 거, 맞아. 한데 그때 이미 몇몇 사람들은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이미 받아들인 거라고. 이렇듯 한쪽에선 오염거리를 줄이자고, 지구를 살려내자고 외쳐댔지만 외침으로 그쳤던 거야. 다들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에 중독이 돼버려서 멈출 수가 없었어. 그러니 그걸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던 거야. 그러니 인류가 멸망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어. ! 글의 대부분이 그런 얘기들이잖아.”

뫼의 표정이 읽어갈수록 무거워진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다들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혀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그래서 여자가 우리 여섯을 이 만 년으로 보낸 건가? 인류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미리 앞당겨서?”

이든이 생각 끝에 떠오른 물음을 뱉어낸다. 인류의 멸망이라는 말이 2013년의 화려함과는 영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화면에서 읽은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말밖에는 달리 할 게 없다.

설마? 여자가 어떻게?”

아미가 미덥지 않다는 투로 이든의 말을 받는다.

어떻게는? 상상 속에 가두는 것으로지. 뫼 말이 우리가 여자의 상상에 갇혀서 이곳으로 왔을 거라 했잖아.”

이든도 지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말한다.

그건 아직 확실한 게 아니잖아. 그냥 뫼의 생각일 뿐이잖아.”

아미도 지지 않고 대꾸한다.

아냐. 이든의 말이 일리가 있어.”

들이 둘이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끼어든다.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여자가 인류의 멸망을 느끼고 그걸 걱정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도 그래.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 다는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을 테니까.”

뫼도 인류의 멸망을 내려놓지 못한다. 입에 올리기에 아직은 영 낯설고 어색하지만 달리 생각할 게 없다.

그러기에는 2013년이 너무나 화려해.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가 않아. 멸망을 앞에 둔 사람들의 얼굴빛이 조금도 느껴지지가 않아. 잔뜩 움츠리고 주눅이 들어 있었어야 할 사람들이 신 들린 것처럼 흔들어대고 있어.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웃음기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게 거짓처럼 보이지는 않잖아.”

아미가 거세게 밀어낸다. 머릿속에서는 2013년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함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그건 멸망을 코앞에 둔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두 세계가 어울리지 않고 겉돌고 있다. 그래서 이든이나 들, 뫼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직은 멸망이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일이니까. 경고나 예언은 있어도 인류가 멸망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어. 그게 그 증거일 거야.”

뫼도 물러서지 않는다. 화면에서 읽은 자료를 바탕으로 아미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미도 만만치 않다.

그래. 멸망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2013년의 화려함이 원인일 거라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지진이나 해일, 태풍 그런 것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많다고 쓰여 있어. 그건?”

그건 그 이전부터 있었어. 2013년 그 즈음에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야. 여기를 봐! 2013년 훨씬 이전에도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잖아.”

뫼가 화면에서 지진 기록이 담긴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미가 뫼를 살짝 밀쳐내고 화면으로 바짝 다가간다.

그건 니 말이 맞아. 내가 말 하려는 것은 그런 것들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거야. 2013년 즈음에 갑자기 생겼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야. 여길 봐!”

이번엔 아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어 보인다.

그래서야. 그 이전보다 자연재해가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몇몇 사람들이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거야. 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가다간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거지. 그래서 멈추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거고. 그들 눈엔 화려함이 지구와 인간을 멍들게 하는 그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들도 알아. 멸망이 멀었다는 것을. 당장 멸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 곳에 있는 멸망을 미리 앞당겨 생각하면서 죽을상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

뫼가 글을 바탕으로 끌어낸 생각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그러니까 인류의 멸망 때문에 우릴 이곳으로 보냈을 거라는 거네.”

아미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투로 혼자 중얼거린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그게 제일 믿음이 가니까. 다른 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으니까. 그렇다고 니 말을 아주 밀어내겠다는 건 아니야. 나도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다만 글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끌어내다 보니까 니 생각을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야. 그건 정말 아니야. 우린 어느 것도 똑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어. 지금은 1만 년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건 수 천 년 전에 벌어진 일들이니까.”

뫼가 차근차근 설명을 보탠다. 아미도 더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