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시선을 천정으로 옮긴다. 그곳에도 단추가 여러 개가 있다. 그 중에 하나에서 불빛이 깜빡이고 있다. 그는 손을 뻗어 불이 켜진 단추에 갖다 대고 살며시 누른다. 그랬더니 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뫼! 나야, 들! 내 목소리 들려?”
단추를 누르자마자 한껏 들뜬 들의 목소리가 와르르 쏟아진다. 그 소리에 몸이 순간 움찔한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알아차린다.
“응, 들. 어떻게 찾아냈어?”
그의 목소리도 한껏 들뜬다.
“집 안에 있는 단추마다 눌러서 기능을 확인하다가.”
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뜸으로 그득하다.
“한데 어떤 단추를 눌렀어?”
“넌? 넌 어떤 단추를 눌렀어?”
들이 뫼의 물음을 제쳐 두고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되묻는다.
“천정에서 소리가 나기에 올려다봤더니 빨간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단추가 보였어. 그걸 눌렀더니 니 목소리가 들렸어. 두 번째에 있는 단추야.”
뫼는 따지거나 투덜거리지 않고 들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한다. 그런 거 따위는 아랑곳도 없다. 그저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냈다는 기쁨에 흠뻑 젖어있다.
“그래? 그럼 그게 신호를 받아들이는 단추야. 신호를 보낼 때는 첫 번째 단추를 눌러. 이번엔 니가 해볼래?”
“알았어.”
들이 신호를 차단했는지 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는다. 신기하다. 그는 멍하니 천정을 바라본다. 그러다 손을 뻗어 첫 번째 단추를 누른다. 뭔가 신호를 보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더니 이내 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뫼, 나야. 이제 우린 건너가지 않아도 같이 있을 때처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어. 이런 것도 있었어. 2013년에도 있었겠지?”
“당연히 그랬겠지?”
“나머지 애들한테도 알려주자. 신기하지 않아?”
“그래. 내가 이든과 누리한테 연결해서 알려줄게.”
“그래. 난 버들과 아미에게 알려줄게.”
이든과 누리, 버들과 아미도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을 맘껏 드러낸다. 여러 번 단추를 눌러 말길을 트고 닫고를 되풀이한다. 그래도 지칠 줄을 모른다.
“들! 대단한 발견이야. 앞으로 헛걸음할 일은 없을 거 같아. 다 니 덕이야. 내일은 열매를 두 배는 따다 줄게.”
누리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맘껏 뱉어낸다. 누리의 말에 들도 환하게 웃는다. 그의 말이 뿌듯함을 부추긴다. 한껏 부풀어 오른 흐뭇함이 마냥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다.
누리는 약속대로 열매를 잔뜩 따가지고 온다. 뫼와 이든도 한 아름씩 열매를 안고 들어온다.
“들! 내가 어제 말했지? 두 배로 따다 주겠다고. 자, 받아!”
누리가 들에게 열매를 건네준다.
“ㅎㅎ. 좋다. 누리, 고마워! ㅎㅎ.”
들이 두 손 가득 열매를 받아들고 호들갑을 떤다.
“ㅋㅋ. 나도 좋다. 고맙긴? ㅋㅋ.”
누리가 장난스럽게 들의 말을 받는다.
들은 호들갑을 멈추고 누리가 건네준 열매를 입 안 가득 넣고 오물거린다.
“한데 언제까지 이 안에서만 있을 거야? 밖에 나가면 볼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안에서 보이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야?”
누리는 안에서 나오지 않는 들과 아미, 버들이 안타깝다. 물론 매일 열매를 따다 주는 게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달랑 여섯이다. 여섯뿐인데 따로따로 움직이는 게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알아. 나도 뫼와 함께 여러 번 나가봤어. 갖가지 빛깔을 한 꽃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여기선 보이지도 않는 열매가 주렁주렁 가지에 달려있는 것도 봤어. 하지만 싫어. 또 뱀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 뫼도 놀랐지만 난 얼어붙는 줄 알았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들이 몸을 부들부들 떤다. 얼굴빛도 뱀을 봤을 때의 질린 표정을 하고 있다.
이든과 뫼, 누리는 시무룩해진다. 누리가 바람 잡는 틈을 타 뫼도 이든도 거들고 나설 마음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들의 말에 시들해지고 만다. 뫼는 생각에 잠긴다.
‘들이 무섭다고 하는 게 뭘까? 단지 무서움 때문일까?’
그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무섭기로 따진다면 자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무서움을 이긴다. 그래 무서움을 밀쳐내고 나선다. 배고프기에 그걸 채우기 위해서도 나선다.
“들! 도대체 뭐가 무서워?”
뫼가 생각 끝에 묻는다.
“뭐는? 저 꽉 우거진 풀숲도 무섭고, 숲에 산다는 사나운 짐승도 무섭고. 그리고······.”
들이 무서운 것들을 줄줄이 읊어댄다. 뫼와 이든, 누리는 한숨을 푹푹 내쉰다. 답답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들과 아미, 버들을 밖으로 나가게 만들 방법은 없는 거라고 포기하려 한다. 한데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든! 누리! 저 풀을 베어내자! 그럼 들이나 버들, 아미도 무섭지 않을 거 아냐?”
이든과 누리도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셋은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입구부터 조금씩 손으로 풀을 쥐어뜯는다. 풀이 잘려나간 자리가 아주 조금씩 넓어진다. 얼마 안 돼 팔과 다리가 뻐근해온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들과 아미, 버들에게 줄 터였다. 그 터를 닦는다 생각하니 뿌듯하기까지 하다.
들과 아미, 버들은 안에서 셋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풀이 잘려나간 자리를 보자 왠지 마음이 흐뭇하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이제 나가줘 볼까? 저렇게 힘들게 일해서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터를 만들고 있는데 안 나가주면 좀 섭섭하지 않을까?”
들이 선심 쓰듯 말한다. 아미와 버들도 기꺼이 응한다. 셋은 힘차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뫼와 이든, 누리가 허리를 펴고 미소를 지으며 셋을 바라본다.
“맘에 들어?”
뫼가 묻는다.
“응. 머리 위의 하늘이 제대로 보여. 밤엔 창밖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겠지? 달도 맘껏 볼을 있을 게고. 이젠 뱀이 나타나도 피할 수 있을 거 같아.”
들이 흐뭇함을 흘리며 말한다.
“때려잡고 싶지는 않고?”
누리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응? 뭐라고?”
들의 눈이 놀라 점점 커지더니 이내 험악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손은 어깨 위로 올라가 있다. 금방이라도 누리를 향해 힘껏 내리칠 기세다.
“아 아냐?”
누리가 얼결에 말을 더듬으며 일어나 달아난다. 이든과 뫼는 흐흐 웃는다. 버들과 아미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이든! 뫼! 니들도 누리와 같은 생각이야?”
이번엔 엉뚱하게 이든과 뫼에게 화살이 날아간다.
“같은 생각이긴?”
둘이 엉겁결에 한 목소리를 낸다.
“아니면 왜 웃고 있는데? 섬뜩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데 니들 표정이 그게 아니잖아?”
버들이 따지듯 들이민다. 이든과 뫼가 얼결에 꽁무니를 뺀다. 이번엔 누리가 비실비실 웃는다.
“누리! 뭐라고 말 좀 해봐! 말은 니가 꺼내 놓고 왜 우리가 당해야 하는데?”
이든이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누리는 거들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실실 웃음만 흘려댄다.
“너 때문이야. 한데 너는 쏙 빠지겠다고?”
“쏙 빠지긴? 나도 이미 들에게 한 방 먹었잖아? 그리고 나 때문은? 버들 말이 니들이 웃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잖아. 그러니 니들 탓이다? 내 탓이 아니야. 알았어?”
누리가 말 못을 쾅쾅 박는다. 이든과 뫼가 꼬리를 내리고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걷어낸다.
“풀이나 잘라내자!”
뫼와 이든, 누리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풀을 뜯어낸다. 그래서인지 저녁을 먹자마자 셋은 잠에 곯아떨어진다. 들과 아미, 버들은 낮에 뫼와 이든, 누리가 풀을 잘라낸 텅 빈 터에서 달빛을 받으며 맘껏 바깥공기를 쐬고 있다. 갑갑했던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하늘에 별들이 어쩜 저렇게 많을까? 2013년에도 하늘에 별들이 저리 가득했을까? 그때도 우린 저 별들을 봤을까?”
버들이 감상에 젖어 말한다. 들과 아미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