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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동백섬의 추억~~


BY 날개내린 백조 2014-11-01

부모님의 고향은 따뜻한 남쪽 작은 섬마을이다.

동백이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해 주민들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드나드는 섬마을에서

아버지는 고기를 낚고 음식솜씨가 좋고 손끝이 야무진 엄마는 바닷가 끝머리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셨다.

두 분은 섬에서도 금슬 좋은 부부로 유명했다.


그런 두 분의 금슬을 삼신할머니도 시샘을 하셨는지 결혼한지 8년 만에야 소영을 보내 주셨단다.
힘들게 얻은 딸이라 두 분은 땅에 놓으면 꺼질세라 바람불면 날아갈세라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 주셨고 소영은 그 사랑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식당이 쉬는 날이면 단란한 세 식구는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

바닷가에 나가 물장구도 치고 조개도 줍고 신나게 놀다가
바다 끝으로 시뻘건 해님이 숨바꼭질을 시작하면 아버지는 어린 소영을 무등 태우고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클레멘타인을 선창하면, 옆에 나란히 걷던 엄마도

조용한 목소리로 클레멘타인을 따라 불렀다.

무등 위의 어린 소영은 그 노래소리가 어찌나 기분 좋던지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노을과 함께 퍼져가는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그때의 클레멘타인은 행복에 겨운 노래였는데…….


소영은 행복의 섬에서 듬직하고 자상한 울타리 같은 아버지와

예쁘고 참한, 미소가 아름다운 엄마와 언제까지 사랑 가득한 삶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행복의 끈을 너무 빨리 잘라버렸다.

 

소영이 일곱 살 되던 해 어느 봄날이었다.

빨간 동백이 섬을 뒤덮을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고

알록달록 꽃 단장한 상춘객들의 즐거운 수다로 마을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이 그렇듯 일하는 삼촌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가시고

 엄마는 잰 몸짓으로 관광객을 맞이 할 준비를 하시며 클레멘타인을 기분 좋은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계셨다.

소영은 그런 엄마가 눈부시게 예쁘다고 생각하며 엄마의 동작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관광객을 맞이 할 준비를 하시며 중간중간 내 눈을 마주치며

따뜻한 미소를 보내 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부셔져라 식당 문을 열고 시뻘건 얼굴을 한 삼촌이 헐레벌떡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아짐, 아짐 일나부렀어라. 아제가, 아제가……. 언능 가보랑께요."


삼촌은 거의 사색이 되어 말도 끝내지 못하고 엄마 손을 잡고 항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영은 식당 문에 매달려 달려가는 엄마와 삼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나고 붉은 노을이 회색 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도 엄마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라는 게 덜컥 겁이 난 소영은 클레멘타인을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그때, 마을언덕배기에 살고 계시던 ‘기흥덕’아주머니가

두 손을 번갈아 눈물을 훔치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오매, 오매, 소영아. 어짜쓰까나잉. 요로코롬 이삔 놈을 두고. 어짜쓰까나잉. 어짜쓰까나잉."

 

아주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 훌쩍 거리며 ‘어짜쓰까나잉’ 만 되풀이 하고 계셨다.

결국 그날 밤 소영은 난생처음 엄마, 아버지 없는 밤을 기흥덕 아주머니 집에서 보냈다.

다음날 소영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주머니가 아침 먹고 가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맘이 급한 소영은

듣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신발을 신고 바다 끝 식당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식당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소영은 너무 기뻐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 아버지를 찾으며 뛰어들어갔다.


식당엔 흰색 한복을 입은 엄마가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의자에 앉아 식탁 위의 하얀색 항아리를
쓰다듬으며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클레멘타인을 부르고 계셨다.

엄마는 장승이 되어 꼼짝 않고 서있는 소영을 보며 양 팔을 벌리셨다.

소영은 한달음에 엄마에게 안기며 아버지를 찾았다.


엄마는 아무 말없이 꼭 껴안은 소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처량한 목소리로 클레멘타인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소영은 자꾸만 식탁 위의 하얀 항아리가 신경 쓰였다.

 

봄볕이 눈이 시리도록 찬연하던 그날 오후.

얼마 안 되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바닷가에 모이고,

빛을 받아 빛나던 고요하고 눈부신 바다 위에 작은 배가 띄워졌다.

배 안에는 노 젓는 삼촌과 엄마와 소영, 그리고 하얀 항아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소영과 하얀 항아리를 같이 끌어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의 눈물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는지 퉁퉁 부은 양 쪽 눈가가 짓물러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핏빛을 띄고 있는 듯 했다.


"아짐. 인자 보내드려야 한당께요."


삼촌은 훌쩍거리다 노를 놓으며 허공에 대고 말씀하셨지만

엄마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아무 말씀 없으셨다.

소영은 눈만 껌벅거리며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만에 눈을 뜬 엄마는 울음을 삼키는지 꿀꺽하는 소리를 한번 내고는

하얀 항아리 뚜껑을 열더니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를 소영의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소영아……. 아부지헌티 인사혀……. 에고 불쌍한 것, 짠혀서 워찐다냐 내새끼. 흑흑흑."


엄마의 퉁퉁 붓고 빨간 눈에서 끝도 없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배위의 삼촌도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고, 바닷가에 모인 마을사람들도 합창을 하듯 울고 있었다.

엄마는 항아리 속 고운 가루를 다시 한줌 쥐더니 바다로 날려 버리고 소영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 하셨다.

소영은 엄마를 따라 한줌 한줌 고운 가루를 바람에 실어 바다위로 날려보냈다.


의식을 마친 엄마와 소영은 서로 손을 잡고 아버지는 바다에 남겨 놓은 채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노을이 모녀를 따라오며 긴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다.

동백만큼 붉고 예쁜 노을은 여전한데 아버지의 그림자만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몇 날 몇 일을 흰색 치마 저고리로 생활 하셨고,

날 이후로 엄마의 클레멘타인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