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싫다니까. 제발 그만 좀 해. 몇 번을 얘기해야 돼. 그만큼 얘기 했으면 세 살 먹은 아기도 알아 듣겠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들어도 이렇게 무거운데, 노인네가 힘도 좋아 정말."
"지지배두 참말로 까깝허네. 긍께 요건 나 일이라고 몇 번을 야그혀. 귓구녕에 못이 백혀도
몇 백 개는 백혔쓸틴디, 니는 어처코롬 그라고 끝이 읎다냐. 오매, 징한거이. 쯧쯧쯧쯧."
"그 놈의 사투리도 듣기 싫어. 엄만 서울 생활이 몇 십 년인데 아직도 전라도 할매 말씨야."
"아야, 태생이 그라고 생겨먹은 걸 어찐다냐. 나가 서울 말씨 쓴다고 서울 사람 된다냐?"
"어휴 지겨워. 이젠 진절머리가 날 정도라니까?"
소영은 엄마에게 한바탕 악다구니를 퍼붓고 오피스텔 문이 부서져라 쾅 닫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소영이 독립을 선언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모녀의 일주일 마무리는
항상 오늘처럼 팽팽한 실랑이로 마침표를 찍고 있다. 벌써 7년 째~~
"흐미, 가시네도 참말로. 워째 저라고 몰쌍시롭다냐? 글안혀도 늙은 어매는 지 믹인다고
쌔가 빠지는구만. 느자구없이 부애만 부려쌌코…….
금메 나가 이 짓거리도 않하믄 지가 뭘 묵고 댕길것이여."
엄마는 이미 나가 버리고 없는 소영의 뒤통수에 대고 심드렁 한마디를 하시며
크기만 봐도 무게가 느껴지는 보따리를 2개나 풀어 헤친다. 보따리 속에는 김치며 밑 반찬들이 가득하다.
엄마는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 있는 반찬 통들을 모두 꺼낸 후 바닥부터 깨끗이 닦아내며 청소를 한다.
그리고는 이내 보따리에서 풀어 헤친 묵직한 새 반찬 통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백 김치, 총각김치, 배추김치. 김치 만도 세 종류가 되고,
멸치볶음, 고추부각, 소고기장조림 등 밑 반찬도 열 두 가지나 된다.
냉장고 안은 소영의 새로운 일주일을 책임질 반찬들로 가득하다. 엄마는 한참을 굽혔던 허리를 힘겹게 편다.
"에고, 되다. 그랴도 지 묵고잡은건 다 묵었고만. 아가 애릴적부텀 주댕이가 까시라와
지 묵고 잡은것만 찾아싸트만 어쩌코롬 시방꺼정 그짓거리여. 시상 헛살았당께. 쯧쯧쯧쯧."
엄마는 지난 일주일 치 반찬 통들을 풀어헤쳤던 보따리에 다시 싸며 깨끗이 정리된 냉장고를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다 다음 할 일이 생각 난 듯 정색을 하며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난다.
"인자 여그는 얼추 끝났응께 빨래거리 한번 봐야 쓰겄구만."
주변을 한번 더 휘익 둘러 보시던 엄마는 다시 한번 만족한 미소를 띄우며
냉장고 문을 닫고 세탁실로 향하신다.
"오살년, 나가 이랄줄 알았당께. 낼 모래 사십 줄에 들어설 년이 지 속고쟁이 하나도 간수 못허고.
에고, 폭폭시러라. 이라고 삶시랑 어매 보고 소락대기만 질렀쌓기는 썩을년. 쯧쯧쯧."
세탁실 빨래 통에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소영의 옷들이 질서도 없이 널브러져 있다.
소영은 잡지사 일이 바빠 집안일을 미루어 놀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게으른 탓 이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주인도 없는 오피스텔에서 일주일 동안 구석구석 묵었을 먼지를 털어내고
빨래며 청소로 온 집안을 반짝반짝 윤을 내고 있다.
한참 바닥에 걸레질을 하던 엄마가 갑자기 왼쪽가슴을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데굴데굴 구른다.
"워매 작것 징한거. 어짜쓰까나잉. 암시랑토 안트만 뜽금읎이 지랄질이여 지랄질이. 음……. 음.
오매, 오매 나 죽겄네. 오늘은 워째 더 이란다냐. 엥간히 볶아치더라고잉. 음…… 음……."
삽시간에 밀려온 통증으로 인해 조용하던 오피스텔 안이 엄마의 신음소리로 가득하다.
통증을 참아내는 엄마만의 외로운 사투가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통증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찌푸렸던 얼굴이 펴지고, 신음소리가 잦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있는 힘껏 왼쪽가슴을 부여잡았던 양손이 툭 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엄마는 식은 땀으로 목욕을 한 채, 있는 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힘든 한숨으로 사투의 잔재를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