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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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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엄마는 전쟁 중~~


BY 날개내린 백조 2014-11-01

"엄마, 싫다니까. 제발 그만 좀 해. 몇 번을 얘기해야 돼. 그만큼 얘기 했으면 세 살 먹은 아기도 알아 듣겠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들어도 이렇게 무거운데, 노인네가 힘도 좋아 정말."

 

​"지지배두 참말로 까깝허네. 긍께 요건 나 일이라고 몇 번을 야그혀. 귓구녕에 못이 백혀도

몇 백 개는 백혔쓸틴디, 니는 어처코롬 그라고 끝이 읎다냐. 오매, 징한거이. 쯧쯧쯧쯧."

​
"그 놈의 사투리도 듣기 싫어. 엄만 서울 생활이 몇 십 년인데 아직도 전라도 할매 말씨야."

​
"아야, 태생이 그라고 생겨먹은 걸 어찐다냐. 나가 서울 말씨 쓴다고 서울 사람 된다냐?"

 

​"어휴 지겨워. 이젠 진절머리가 날 정도라니까?"

​
소영은 엄마에게 한바탕 악다구니를 퍼붓고 오피스텔 문이 부서져라 쾅 닫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소영이 독립을 선언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모녀의 일주일 마무리는

항상 오늘처럼 팽팽한 실랑이로 마침표를 찍고 있다. 벌써 7년 째~~

​
"흐미, 가시네도 참말로. 워째 저라고 몰쌍시롭다냐? 글안혀도 늙은 어매는 지 믹인다고

쌔가 빠지는구만. 느자구없이 부애만 부려쌌코…….

금메 나가 이 짓거리도 않하믄 지가 뭘 묵고 댕길것이여."

​
엄마는 이미 나가 버리고 없는 소영의 뒤통수에 대고 심드렁 한마디를 하시며

크기만 봐도 무게가 느껴지는 보따리를 2개나 풀어 헤친다. 보따리 속에는 김치며 밑 반찬들이 가득하다.
엄마는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 있는 반찬 통들을 모두 꺼낸 후 바닥부터 깨끗이 닦아내며 청소를 한다.

그리고는 이내 보따리에서 풀어 헤친 묵직한 새 반찬 통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백 김치, 총각김치, 배추김치. 김치 만도 세 종류가 되고,
멸치볶음, 고추부각, 소고기장조림 등 밑 반찬도 열 두 가지나 된다.

냉장고 안은 소영의 새로운 일주일을 책임질 반찬들로 가득하다. 엄마는 한참을 굽혔던 허리를 힘겹게 편다.

​
"에고, 되다. 그랴도 지 묵고잡은건 다 묵었고만. 아가 애릴적부텀 주댕이가 까시라와

지 묵고 잡은것만 찾아싸트만 어쩌코롬 시방꺼정 그짓거리여. 시상 헛살았당께. 쯧쯧쯧쯧."

​
엄마는 지난 일주일 치 반찬 통들을 풀어헤쳤던 보따리에 다시 싸며 깨끗이 정리된 냉장고를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다 다음 할 일이 생각 난 듯 정색을 하며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난다.

​
"인자 여그는 얼추 끝났응께 빨래거리 한번 봐야 쓰겄구만."

​
주변을 한번 더 휘익 둘러 보시던 엄마는 다시 한번 만족한 미소를 띄우며

냉장고 문을 닫고 세탁실로 향하신다.

​
"오살년, 나가 이랄줄 알았당께. 낼 모래 사십 줄에 들어설 년이 지 속고쟁이 하나도 간수 못허고.

에고, 폭폭시러라. 이라고 삶시랑 어매 보고 소락대기만 질렀쌓기는 썩을년. 쯧쯧쯧."

​
  세탁실 빨래 통에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소영의 옷들이 질서도 없이 널브러져 있다.
소영은 잡지사 일이 바빠 집안일을 미루어 놀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게으른 탓 이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주인도 없는 오피스텔에서 일주일 동안 구석구석 묵었을 먼지를 털어내고

빨래며 청소로 온 집안을 반짝반짝 윤을 내고 있다.

한참 바닥에 걸레질을 하던 엄마가 갑자기 왼쪽가슴을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데굴데굴 구른다.

​
"워매 작것 징한거. 어짜쓰까나잉. 암시랑토 안트만 뜽금읎이 지랄질이여 지랄질이. 음……. 음.
오매, 오매 나 죽겄네. 오늘은 워째 더 이란다냐. 엥간히 볶아치더라고잉. 음…… 음……."

​
삽시간에 밀려온 통증으로 인해 조용하던 오피스텔 안이 엄마의 신음소리로 가득하다.

통증을 참아내는 엄마만의 외로운 사투가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
통증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찌푸렸던 얼굴이 펴지고, 신음소리가 잦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있는 힘껏 왼쪽가슴을 부여잡았던 양손이 툭 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엄마는 식은 땀으로 목욕을 한 채, 있는 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힘든 한숨으로 사투의 잔재를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