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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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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주 목걸이를 한 그 여자


BY 문해빈 2014-02-28

 

 

내가 만든 기억속의 친엄마는 나쁜 엄마였다.

딸을 버리고 간 것부터 시작해서 남자관계가 복잡한 엄마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내 귀에 들려오는 얘기들은 언제나 부정적이었다. 고모와 할머니는 엄마 얘기를 할 때마다 나쁜 년이란 말부터 시작했다. 자식을 버린 년! 바람을 피운 년! 시어머니가 싫어 밥도 차려주지 않는 년까지. 또 집을 나갈 때 돈이란 돈은 다 가지고 나갔다는 말까지. 난 두 사람의 말에 세뇌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친엄마는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친엄마라면 몰래 연락이 되어 만날 수도 있는데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건 친엄마가 날 찾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고모의 말대로 진짜 날 버린 것이 맞았다. 바람도 피우고. 다른 남자와 있기 때문에 날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내 기억 속의 친엄마는 나쁜 엄마였다. 난 그렇게 믿으면서 성장했다.

 

 

거기다가 둘째 고모는 어디서 들었는지 네 엄마, 식당에 자주 오는 유부남하고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려 살다가 본처한테 들켜 죽을 만큼 맞았단다. 경찰에 끌려가기 싫어 돈으로 때웠단다. 등의 말을 들을 때면 분노가 치밀었다. 그 말은 나까지 같이 욕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이란 눈빛으로 쳐다볼 것만 같아 연애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엄마처럼 지저분한 여자가 될 것 같아서.

 

 

그러나 이모의 말을 들으면 또 아니었다. 지금 나는 혼란스러웠으니까.

 

이모에 의하면 이혼남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아직 이혼을 하지 않은 탓에 휩쓸렸다고 했다. 또 만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사기를 당해 다시 원점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결국 엄마의 인생은 야무진 인생은 아니었으니까. 유부남과 살림을 차리고, 사기를 당하고. 시작한 장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까지…….

 

 

그리고 바람을 피운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버지였고, 사업한다고 일만 벌려놓은 아버지 대신 자식을 두고 식당으로 일하러 나간 사람은 엄마였단 사실도. 반대가 되어 있었다.

 

무능력자, 무일푼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기억 속의 나쁜 엄마는 조금씩 아닌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아주 조금. 갑자기 받아들이기엔 시간의 골이 너무 깊었다.

 

 

 

예전보다 조금은 미움이 아닌 마음으로 앉아 있지만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우린 너무 오래도록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장 일반적인 것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했으니까. 고기보단 생선이 좋았다. 물론 고기도 먹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굽어지는 것이 아닌 전골이 좋았다. 굽어지는 고기는 곧 싫증을 내도록 만들었다.

 

 

나의 친엄마는 나의 식성을 알지 못했다. 나도 알지 못한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 먹는지. 빛깔 좋은 고기를 눈으로 쳐다보며 몇 번 먹었지만 더 이상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코끝을 스쳐가는 냄새가 유혹하고 있었지만 굽어지는 고기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있었다.

 

 

엄마와 딸만이 나눌 수 있는 기본적인 대화조차도 되지 않았다. 또 엄마는 내가 엄마 생활에 끼어 들까봐 조심하는 눈빛도 보였다. 지금의 자식들에게 내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건 조금 전에 느꼈다. 엄마가 보여주는 눈빛에서.

 

 

내가 느낀 것은 엄마의 결혼 생활은 유리그릇처럼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와장창하고 깨어질 수도 있는. 조심스럽고 어려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단 느낌이 강했으니까. 손은 많이 거칠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여자들의 손을 보는 게 생활화 되어 있었다. 목도, 귀도 유심히 보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보는 것은 손이었다. 반지와 팔찌가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친엄마의 손은 고운 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런 손이었을까. 많이 거칠었고, 작은 상처들이 있었다.

 

 

 

***

“아들과 딸하고는 잘 지내요?”

 

 

 

우린 자꾸 대화가 끊어지고 있었다. 이 얘기를 꺼내다가도 생각이 다르면 침묵이 중간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우린 중심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찾을 수가 없었다. 친엄마가 맞는데. 너무 어려울 뿐이었다.

 

 

쳐다보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많은 세월동안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나쁜 엄마였으니까.

 

 

“그럭저럭.”

 

 

친엄마는 애매한 상황이 되면 이 말을 했다. 그럭저럭! 애매하게 들렸다. 딱 이 말만큼 행복한 모양이다. 많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또 완전 불행한 것도 아니고.

 

 

“딸은 예뻐요?”

“예쁘게 생겼어. 살이 찔까봐 많이 먹지 않아. 키는 너보다 조금 작고. 옷은 화려하게 입고 다녀. 지금의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