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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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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짜 진주 목걸이를 한 그 여자


BY 문해빈 2014-02-27

 

1.가짜 진주 목걸이를 한 그 여자

 



“남편이 교수라면서요?”

“으……응.”

“아들과 딸이 있다고 들었는데. 몇 살이나 되었어요?”

“아들은 28살, 딸은 23살.”

“그렇군요. 내가 26살이니까 중간에 있네요. 만약에 만날 일이 있다면 아들을 향해선 오빠라고 불러야 할 것이고, 딸에게는 언니가 되겠네요.”

“그……렇지.”

 

 

 

엄마란 사람은 당황하는 눈빛이다. 혹시라도 두 사람을 만날 까봐.

 

 

만나서 내가 너의 언니라고 할까봐. 동생이라고 할까봐. 하지만 만날 일은 전혀 없다. 만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만날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아는 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이 원치 않을 테니까.

 

 

이 사람, 이 여자는 내 엄마다. 친엄마!

 

 

친엄마란 존재는 직접 열 달 동안 배불러 자식을 낳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달 동안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또 좋은 음악만 듣고. 그렇게 태교를 했을 것이다. 모든 엄마들은 그런 식으로 자식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 많은 시간동안 공을 들인 후에 고통을 감수하고 자식을 낳는 사람이 엄마일 테니까. 이 여자도 고생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날 낳았을 것이다. 하늘이 노랗게 될 정도로 고통도 느끼고, 온 몸이 녹아가는 아픔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지만 날 외면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4살 때 두 사람이 이혼을 했으니까 우린 22년 만에 만난 셈이다. 누군가 사진을 보여 주지 않고 말하지 않았다면 모를 뻔 했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유전 인자란 것은 희한하게도 사람의 연을 끌어당기도록 만들었다.

 

 

 

룸으로 들어서는 순간 친엄마란 느낌이 와 닿았다. 키는 내가 조금 더 컸지만 생긴 것은 비슷했다. 눈도, 입도. 많이 닮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닮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어차피 함께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외형적인 모습들도 닮지 않은 게 나을 것이다. 생긴 것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딸이란 것은 싫었다.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

 

 

이런 말도 싫었다. 자기들이 좋아 낳았을 뿐 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처음엔 엄마란 사람이, 그 다음엔 아버지란 사람이. 날 외면한 친엄마가 싫었지만 더 싫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란 사람은 허세가 심해 늘 가족을 힘들게 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친엄마도 이런 식으로 살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성장하면서 스스로 느낀 것들이었다.

허세로 똘똘 뭉쳐져 있는 아버지는 툭하면 사업을 한다고 일만 벌려 놓고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늘 뒤처리는 엄마의 몫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엄마란 사람이 어쩌면 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고, 세 자식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아버지와 결혼해서 두 명의 자식을 낳았고, 할머니 집에 버려져 있는 나까지 세 명이 된 것이다.

 

 

친엄마에 의해, 또 친아빠에 의해 버려진 나를 거두어 준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밥을 먹여주고, 인간으로서 구실을 할 수 있는 학교까지 보내 준 사람이었다. 원망은 없다. 가끔 나오는 뉴스의 기사처럼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으니까. 아버지로 인해 사나운 욕이 나왔을 뿐 때리진 않았다.

 

 

그 고마움으로 인해 지금까지 엄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매달 내가 번 돈의 반 이상을 갖다 바치면서. 이건 가끔 싫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

이 순간,

친엄마를 만나 복합적인 감정을 누리면서도 생각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두 엄마를 비교하고, 아버지와 친엄마의 과거도 생각하고 있었다.

 

 

“행복하세요?”

 

잠시 조용한 분위기가 이상해서 물었다. 행복 하느냐고? 엉뚱한 소리에 당황한 친엄마는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물을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럭저럭.”

 

행복하단 말이다. 이 정도로 표시를 내는 것을 보면. 묘한 감정이 또 싹트기 시작했다. 다행이면서도 얄미웠다. 친딸은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절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뭔지 알고 싶네요.”

“그……냥 만나고 싶어서.”

 

 

머뭇거리는 말투다. 왜 만나자고 한 것일까. 이런 식으로 전 남편의 자식을 만나고 있는 것을 현재 남편이 안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22년 동안 모른 척 하던 자식이라면 영원히 모른 척 하는 것이 서로 간에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친엄마도.

 

아무 기억도 없는 감정 속에서 사는 게 맞는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만나고 있다. 룸이 있는 곳에서. 예약된 장소에서 만나 서로의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있었다. 중간에는 최상급의 소고기가 굽히고 있었고,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두 번 정도 먹었다. 그 후론 젓가락을 놓은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감정조절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고기는 친엄마 손에 의해 접시로 이동하고 있었다. 잘 굽어진 고기는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접시에 쌓여져 갔을 뿐이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데요?”

“원래 성격이 차갑고 냉정하니? 아니면 말투가 그런 거니?”

 

 

친엄마는 조금 섭섭한 모양이다. 22년 만에 만난 딸이 쌀쌀맞게 대하자 조금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게 포인트일 거예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밖에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성격이 냉정 하느냐고요? 말투가 거칠다고요? 저에 관해 무엇을 아세요?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사춘기 시절은 어떻게 지냈는지, 대학은 나왔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사귀는 남자가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건 알고 있다. 주얼리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그것도 직접 안 것이 아니라 이모를 통해 알았던 거 같은데요.”

 

 

 

이모였다. 유전 인자는 참으로 비켜갈 수 없는 독 같은 존재였다. 어떤 사람에겐 희망의 끈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독이었다.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으니까.

액세서리를 사기 위해 방문한 이모에 의해 질문을 받고 핏줄임을 알았다. 묘하게도 이모와도 닮아 있었다.

 

 

***

“대학은 나왔니?”

“아버지가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무슨 수로 대학을 가요? 고등학교까지 나왔어요. 그래도 다행히 특성화고등학교를 나온 탓에 취직은 쉽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하는 일은 힘들지 않니? 월급은 잘 나오니?”

 

 

순간 난 웃고 말았다. 22년 만에 만난 우리 모녀는 주고받는 대화들이 어색했고, 불편 할 뿐이다. 자주 만난 관계라면 이런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어색했고, 불편했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이 생겼다. 얼굴을 마주본다는 것이 어색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다가 하나를 발견했다. 친엄마가 목에 착용하고 있는 진주목걸이였다. 불빛에 빛이 나는 것이 아름다워 보였지만 점점 퇴색되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진짜가 아닌 가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친엄마가 하고 있는 진주목걸이는 가짜였다.

 

 

“목걸이가 예쁘네요.”

“선물 받았어.”

“남편 되시는 분이 선물한 거군요.”

 

 

확인이 하고 싶어 물었다.

 

 

“가끔 선물을 해 줘.”

“반지도, 팔찌도 예쁘네요.”

“다 같이 받았어.”

 

 

 

다 가짜였다. 주얼리 계통에 있지 않았다면 모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가짜가 더 진짜 같아서 사람의 눈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전부 가짜였다. 값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저가의 물건들이었다.

순간, 친엄마란 사람이 정말 행복하게 사는지 궁금했다. 들고 있는 가방도 가짜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방은 가짜가 더 판을 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대학교수라고 하면서 전부 가짜를 선물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재혼한 아내한테.

 

 

 

그런데 느낌이란 것은? 바로 흘러갔다. 느낌은 이상하게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놓여 진 명품 가방도 가짜로 보였으니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정말 행복한 것일까. 남편이란 사람은 왜 친엄마와 결혼을 했을까. 사랑으로 만난 사이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남자의 진심이 궁금했다. 대학교수라면 우선 학식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단순히 대학 졸업장 하나 만으로 교수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거기에 반해 엄마도 가방끈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고등학교만 졸업했으니까.

그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친엄마와 결혼을 한 것일까. 여자가 필요해서? 살림을 살아 줄 도우미가 필요해서?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 했는데 고모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