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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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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 정숙.


BY 데미안 2013-02-21

 

4월 27일. 맑다...

오십 셋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나는 또 다시 무기력함에 빠져 들어 멍하니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보는 건지...아니다, 그냥 내 생각속에 빠져 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귀찮다.

또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인가...싶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혜진이 엄마 고 미자가 전화를 했다. 커피 한 잔 하잔다.

그래, 커피...좋지.

집에서 나와 15분을 걸어 시장 근처에 자리한 그...이름이...시애틀에서 잠을 못자니 뭐...어쩌고 저쩌고 하는 커피숍에 들어 갔다.

마실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이 놈의 커피가 이렇게 고급스러워지고 고상시러워지고 분위기 타서 비싸졌는지...

몇 모금 되지도 않는게 더~~럽게 비싸지...!

이건 우리의 고 미자씨 말이다.

할 말 다 하고 사는, 제법 성깔 있는 미자는 내 우울증의 청량제이다.

그러나 그 청량제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나의 우울증은 다시금 활개를 친다.

그게 무섭기도 했으나 이제는 담담하다.

휴...

오늘은 햇살이 유난히도 말갛다.

어찌 저리 말고 투명한지...

딱! 죽기 좋은 날이다. 우습다. 죽기 좋은 날도 있는가?.....

있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고 싶은 그 저릿한 유혹.

햇살이 내 몸을 감싸고  내 양 어깨에 날개를 달아줄 것 같은 그 어이없는 상상을 나는 간혹한다.

오늘도...

오늘은 강렬하다. 몸을 던지면 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햇살이 너무...따사롭다.

 

 

1.

늦었다.

시간이 벌써 10를 넘고 있었다. 스물 일곱의 여자에게는 결코 늦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선해는 초조한 마음에 자꾸만 손목 시계로 눈길을 주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두 번이나 했는데도 말이다. 거기다 아버지 또한 전화가 불통이었다. 아버지야 그런가...보다고 생각은 하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불안했다.

 일년에 두 번 있는 대학 동창 모임에 참석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었다.

[휴, 오늘따라 차는 왜 이리 막히는거야....]

선해는 핸들을 툭툭 치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수석으로 시선을 주면서 짧게 웃었다.

백화점 로고가 찍힌 쇼핑백이다. 엄마의 생일 선물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연분홍 가디건이었다.

어서가 보여 주고픈 마음에 조급증이 일었다.

요 며칠 상간, 엄마 김 정숙여사의 컨디션이 바닥을 치고 있음을 안다.

걱정이다.

김 정숙 여사가 올해로 3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그것이 2년전부터인가?  그 주기가 점점 더 빨라지고 지속 기간이 오래 가고 있었다.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급한 마음을 다잡으며 선해는 다시금 시계를 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앞에 서서 도어록으로 손을 뻗치려던 선해는 일부러 벨을 눌렀다.

엄마가 나와서 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길게 벨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고개를 갸웃하며 선해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딸네미 왔수. 딸네미가 뭘 사 왔게?]

싸한 고요함이 그녀를 때렸다. 눈살을 찌푸리며 선해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주방으로 들어 서려던 선해는 거실 소파에 얌전히 누워 자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그 모습에 절로 안도하는 선해다. 

미소를 지으며 선해는 소파로 다가갔다.

[우리 김여사, 피곤했나보네? 예쁜 딸네미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선해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엄마를 깨우기 위해 손을 뻗다 말고 흠칫했다.

거실 테이블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물컵과 하얀 약병.

헉.

심장이 덜커덩거리며 순식간에 온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공중에서 멈추어버린 손끝이 가늘게 떨기 시작하더니 선해의 얼굴이 하얗게 넘어가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쿵쿵...쿵쿵쿵...뛰더니 미친듯 빨라지기 시작했다.

선해의 떨리는 손이 엄마의 가슴에 닿았다. 흔들었다. 반응이 없었다.

조금씩, 더 빠르게 흔들었다. 엄마는 선해가 흔들면 흔드는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 엄마...]

쥐어짜는 음성이 선해의 목에서 세어 나왔다.

선해의 손이 엄마의 볼에 닿았다. 차다...지독히 차다. 그 손이 코앞으로 갔다. 없다! 아무 느낌이 없다!!

선해의 다리가 그대로 꺾였다. 소리없이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선해는 더듬거리며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꺼윽...꺼윽...

슴넘어 갈 듯한 울음 소리를 뱉어내며 선해는 떨리는 손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ㅡ뭐냐, 이제서야 내가 생각난건가?ㅡ

골난 목소리의 남자다.

[......]

무언가 말을 뱉아 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해는 입만 벙긋 거리고 있었다.

눈은 엄마에게 고정되어 있고 전화를 들고 있는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ㅡ...유선해! 뭐냐...무슨 일이야?ㅡ

남자의 음성이 가라앉았다.

[...펴,편집장...님......]

ㅡ너, 거기 어디야?  아직 시내야? 어디야!ㅡ

남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으윽...흑...]

ㅡ유 선해! 지금 울어? 어디야? 어딘지만 말해! 어서!ㅡ

[흐윽...집..인데...편,편집장님..어....엄마가...엄.....!]

그녀의 손에서 저절로 휴대폰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아아아아아...!

ㅡ유 선해! 선해야. 기다려. 내가 지금 갈테니..ㅡ

선해의 터져나온 울음소리에 남자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아아아악...엄마......!

선해의 두 주먹이 반응없는 엄마의 가슴을 마구 치고 있었다.

 

2.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여사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시간이란게 인정머리없이 그저 지나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도 흩어 놓는가 보다...

차마 김여사를 놓치 못해 울고 또 울고...또 울고...혼절해서 깨어나 또 울고...했는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 흘렀단다...

여전히 가슴은 찢어질 듯 조여오고 쑤셔오는데 시간은 벌써 저만치 일주일치를 가고 있었다.

 

선해의 아버지는 주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선해는 안방에서 꿈쩍을 않고 있었다.

탁. 탁.

술잔이 탁자 유리를 치는 소리가 간간히 들릴뿐 집은 적막하기 이를데 없었다.

금방까지도 울었던 게 역력한 눈으로 선해는 옷걸이를 보고 침대를 보고 화장대를 보면서 김여사의 살아 생전을 쫓았다. 그러자 눈물이 다시 삐죽이 세어 나왔다.

아프다. 마음이 이리 아플수도 있는 것일까...

 

<선해야. 내 딸, 선해야.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엄마, 너무 힘들어.  내가 나를 이겨낼 수가 없어.

미안하다...미안하다, 내 딸>

 

유서 한 장이 있었다. 달랑...

미안하다며...미안하면, 그렇게 미안하면 가서는 안되는거지 엄마.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나하고 얘기하면 돼잖아.

착한 딸이라며? 좋은 친구같은 딸이라며? 

흑...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립다. 김여사가 너무 그립다.

선해는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서랍을 하나 하나 열어 보았다.

김여사의 보물인 보석함과 속옷들...

김여사는 공돈이 생기면 무조건 금을 사 모았다.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찌. 금거북이. 다시 금반지....

딸네미 결혼할 때 줄 비상금이라며서 즐거워했다.

열어보았다. 선해는 울면서 웃었다. 김여사가 참 많이도 모아 놓았다.

그 밑에 서랍에는 상의... 그 맡에 서랍에는 하의...

무심히 보던 선해는 바지 밑에 숨겨진 무언가를 보았다.

분홍색 일기장이었다. 세 권이다.

엄마의 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