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오는 길은 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프지 말고 죽어야 할텐데.."
지저분하게 말미를 장식하지 않기를 바라는 인생들의 소원
남편이 나를 버리고 떠난지 오늘로 꼭 1년이 지났다. 안개가 아직 희끗희끗 남아 있는 대청호를 찾아와 보니 남편의 묘소는 침묵이다
"야속한 남자......"
사람이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은 정하여진 것이고 죽은 후에는 어찌 된다던데.....
어쨋건 난 남편의 묘 앞에 꽃한송이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듬성듬성 봉분의 벌초들을 원망스럽게 뽑았다.
"잘해 주지나 말지....."
누운 남편은 나를 알아 볼까.....한참이 흘러갔다
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미여지는 가슴으로 하직 인사를 하는 샘이었다.
"여보, 잘 있어.....그리고 잊어버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남편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다
"여보, 잘 살아 힘차게 그리고 걱정말고 즐겁게 살아 응!"
죽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소리는 아마도 내 가슴에서 나오는 희망의 소리이고 새로운 세계로 자유롭게 떠나고 싶은 본심이 아닐까.....
곧 진달래가 피겠지. 그리고 산야에 조화를 이루는 크고 작은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사랑을 하겠지....
안개가 서서히 걷혀 왔다. 이슬 머금은 햇살이 묏등에 바람 꽃을 일으키나 보다. 저고리 속으로 세상 바람이 들어 온다
여자나이 마흔 두살....어찌 살아야 잘 사는걸까.....
그이가 죽던날은 열녀문을 세우겠다고 수없이 다짐 했었다. 그러나 한올한올 세월이 흐르고 그가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곳에 있다는걸 자각하고 부터 남은 인생의 시간표를 가끔 생각하게 되었다.
"보험도 안들었어?"
친정 엄마의 원망 섞인 말을 들으면서 여자가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중 3짜리 여진이에게 날마다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남자가 여자하나 못 건사해서 일터로 내보내!"
남편은 늘 나를 집안의 화초로 생각했었다. 여자는 모름지기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사는것이라고 고지식하게 얘기하던 이즘에 보기드문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임 강사라는 직함으로 받아오는 봉급은 살아가는데 턱도 없이 부족했던게 사실이다
"까깍!!"
흩날리는 바람속에서 대청호를 바라 보았다. 잠자리 날개처럼 파문이 이는 호수.
남편과 난 호수에 묻혀버린 물아래 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오빠 동생으로...
"가야지....그래, 가는거야......이제 잊어버려야지...."
남편의 무덤을 뒤로하고 산길을 내려와 길을 걷는 내 머릿속의 혼돈.........
호수를 바라 보았다. 널디 널은 대청호......
내 고향을 다 앗아가 버리고 물로 덮어버린 대청호....
죽은 남편은 날마다 호수를 바라 보겠지.....
내 구두 소리가 따각거리고 저만치 내 차가 기다린다. 차키를 찾아본다.
"어~ 없네...."
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때
"누님~"
누굴까? 나를 부르는 음성?
"아니....여기는?"
"차 키를 꽂아 놓고 가셨네요^^"
그였다. 남편의 제자. 가끔씩 전화로 문안을 하고 가끔 위로의 문자도 보내주고, 더러는 꽃다발도 보내주던 그 사람
"여긴 어떻게....."
재범이었다 .
내 모습을 지키고 선 그를 향해 내가 왠지 포로처럼 서 있었다. 고마워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