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사무실로 가?”
“응, 누나 나 지금 집필중인데 얼굴만 잠깐 보면 되잖아”
“그래...거기 어디야?”
“그렇지, 한번도 안와 봤구나....샤크죤 근처 오피스텔 내가 번지 찍어주께”
“사무실 이름이 뭐야?”“사명 기획이라고 ”
“그래 너 혼자 있니?”
“아니, 여직원 둘하고 같이 있어”
“좀 그렇다”
“괜찮아. 입장 곤란하면 다 퇴근하라고 하께”
“아냐,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이 겨울 들어서 뭔가 들떠 있거나 안정되지 않은 나를 본다
“엄마, 왜 그래 짜증을 내..”
딸애가 하는 말이 사실이다. 무엇이 나를 짜증나게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남편이 시아버지 낙성해서 간다는데 왜 내가 짜증을 내고
동생 친구 우진이를 이 밤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의 출처는 어디서 온거며
공연히 멋진 남자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충동이 가끔 드는 것은 왠 변화?
몇 년 전 이맘때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정말 농후한 요동 이었다
무슨 연고로 교육청 옆 산부인과에 다녀온 뒤 그랬다
진료하던 중년의 의사선생님을 본 순간에 나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정말 염치도 없이 가슴이 뜨겁던 그 날
내 속에 화냥년의 피라도 흐르고 있다는 말인가?
가슴에 무언가를 뿌려 놓은 듯한 감정이 불같이 나를 버겁게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머리를 흔들었지만 길을 걸을 때마다
진료하던 의사선생님의 음성과 재취가 왜 나를 그토록 초토화 시켰던지....
바보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딸아이를 꼭 껴안고 괜한 눈물을 흘렸던 경험.
우울증인가? 생각도 했지만
한동안 나는 그 봄 산부인과 의사의 짝사랑 균으로 오염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던 그 위험 인자가 지금 발동(?)
차에 키를 꽂으며 나를 생각한다.
2%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거야
남들은 걱정이 뭐 있냐고
남편봉급 타다가 주지 딸아이 하나 공부 시키면 되고...
시댁에서 돈을 달래 시동생들도 다 잘됐고
친정에는 친정대로 넉넉히 먹고사니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하고
정 심심하면 봉사활동하며 살면 된다고들 길을 제시하지만
난 왜 이리 서러울 때가 많아지는지?
차로 15분 거리에 우진이의 사무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철저히 베일을 치고 살던 우진이가 왜 내게 사무실을 공개하며
나는 왜 거기를 가고 싶어 하지?
우진이는 건물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여기!!”
악수를 하고 그리고 포옹을 하고
젊은 남자의 향기가 좋다
“들어 가 누나”
“있어?”
“있어. 일이 좀 바빠서. 다 얘기 했어. 사촌누님이 오신다고 했으니까...”
유치한 생각 장사를 하고 있는 내가 이상한거지
남동생 친구를 찾아오는 것이 무슨 그리 부담되는 일이라고...
“돈 땜에 걱정 많이 했지?”
“아아니, 네가 그런 애 아니잖아”
“나도 힘들었거든....지옥까지 갔다왔어. 그런데 요즘 또 하나 작전이 성공하고 있거든..”
“작전..?”
“응, 몰라도 돼. 우리 세계는 늘 그래. 물고 물리는 치킨게임이랄까”
“.................”
“누나는 나의 VIP중의 최고니까 내 돈을 그냥 주려고 했는데 미안해요”
나는 우진이의 허리를 손으로 툭 쳤다.
그리고 소리 내어 웃었다 아주 상쾌하게
“그렇게 좋아?”
“그래, 좋다. 나를 그렇게 좋아했다면서...푸흐”
“그래, 난 정말이지 장가 못가요 누님같이 똑같이 생긴 여자 구해 주기 전에는”
“얘 봐라....아주 나를 울리네...야 그럼 이제 와서 난 어쩌냐”
“어쩌긴요 그냥 나는 쳐다만 봐도 돼요”
우진이의 사무실을 별실로 꾀 넓었다.
“뭐 먹을까?”
“뭘 먹어 지금 시간도 아닌데...”
“시키면 오는데...”
“뭐 시키려고?”
“나가기는 그렇고 간단하게 배달시켜서 먹고 얘기 오래하지 뭐. 매형도 시골 갔다면서....”
단골 음식점인가 아니면 야식집인가에 전화를 하는 우진이의 팔 근육이 근사하다.
왜 장가를 안가고 혼자 살까?
정말 나를 못 잊어서 안 가는 것은 아닐테고...
갑자기 내 마음속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치사한 내 마음에 콧방귀를 뀌고 있는 또 다른 나의 행동이겠지
“그런데, 너 아까 책 쓴다고 했지?”
“응...잘하면 팔릴 것도 같고 해서 시간 나는 대로 지금 쓰고 있어. 보여 주까?”
“그래, 봐도 돼?”
“봐도 되지....”
난 시선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아직 사무실에 아가씨들이 남아 있기도 하고
정말 우진이가 책을 쓴다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 교육 책자라고 했다.
건성건성 읽어 내려간다
그런데 많이 와서 닿는 내용이다.
이거 딸애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진이는 책상을 정리하고 나는 그의 원고를 훑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린다.
야식이 왔다.
아주 고급스러운 배달음식
“요 앞에 산호초 일식집이 있는데 우리만 특별히 배달해줘요. 술은 뭐로 할까?”
“술...나도 모르지. 네가 알지 난 술 잘 못하잖아”
“그래...그렇지. 그냥 소주로 할까?”
“그래...네 맘대로”
또 한번의 노크
“사장님, 저희 가 볼게요. 맛있게 드세요”
“그래...내일 준비 다 됐지?”
“네, 내일 아침에 서류 올릴게요”
우진이와 난 음식을 놓고 마주 앉았다.
괜히 가슴이 좀 덥다.
우리 앞집 현아 엄마의 말이 떠 오른다
“요즘, 외로워 보이네. 뭔 일 있어?”
내가 나를 생각해도 왜 이럴는지 모른다.
무언가 일을 내고 싶은 욕망이 나를 지배하려고 꿈틀대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마이 갓!
두 술잔에 술이 채워진다.
오늘 따라 소주 내음이 너무 좋다는 느낌이다.
오늘은 왜 술을 마시고 싶은 걸까.
돌팔이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잘난척하고 아버지 엄마 건강진단 제 혼자 다하고
동네사람 인사 챙기고 법률이면 법률 뭐든지 다 해 줄 것처럼 나대겠지.
돌팔이 내 남편은 돌팔이
돌팔이 마누라 나는 오늘
혼자사는 총각하고 술 마시러 왔다
나도 모르겠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쨍그렁!!
우진이의 잔과 내 잔에 또 술이 부어지고 술 시계는 점점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