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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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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몰랐다.


BY 라니 2011-11-18

 

세편째 손에 잡힌 편지

( 이건 작은 우편엽서이다)


갈대


언제부터 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밤 이였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  경 림-


을하!

하늘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달무리가 져 있더구나.

너의 편지 받았단다.

좀 더 강하게 너의 길을 개척하길 바래

당장은 어려워도 좀더  긴 안목으로 보는 것이 어떨가 해

나 역시 지금 너에게 뭐라 해줄 수 없지만

울고 싶을 땐 울고 웃고 싶을 땐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이 좋잖니?

이 겨울 따뜻하게  보내자

안녕1985.12.17


동네까지 들어오는 버스 한 대 없는 산골마을

버스를  타기 위해 30분은 족히 걸어 가야하는 곳

초등학교는 버스 타는 곳 바로 그곳에 위치해 있다.

중학교는 버스타는 곳에서  버스  타고 20여분을 더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한 학년 40여명

일학년부터 육학년 까지 죽  함께 다니고 중학교 또한 함께 가고

중학교에 가서야 반이 나뉘는 것을 알게 되었던 곳

그래도 운이 좋았던  것이 인근 다른 학교에서 전근 오신

선생님의 소개로 그 학교 아이들과 미팅을 한 것이다.

그 바람에 다른 학교 구경도 하게 되었고 40여명뿐이던 친구의

수가  조금은 늘어나게 되었다.

같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다 다른 동네에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난  거의 함께 하지 못했다.

동생을 보아야  하는 일도  있었고..내 의지도 그다지 그쪽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 난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짝꿍들은 다들 별로 말이 없어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고

다른 학교아이들과의 미팅에서 나에게 호감을 표시 하고 내가 호감을  가졌던 아이들은

내 양에 차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 선택으로 마감되었고

연년생 이었던 오빠(흔히 말하는 문제아 행동을 많이 저질러서 교내외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인물)와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비교평가 되는 생활과 저 멀리 그림자라도 보일라 치면 난 조용히 사라져 줘야 하고 어디서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 행동 반경을 규정짓게 되고 오그라들게 하였다.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드라마의 내용과 별반 다름없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는 환경의 연속성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집나간 언니가 남겨두고 간 문고판 소설들과 마당에서 올려다 보이는 ㄴ은자형 하늘 조각들.

부모님에게 온 신경이 다 가 있는 내 부모의 무심함은 효의 당연함으로 인정이 되면서도

그 무심함이 차라리 출생의 비밀이 있었으면 하는 철없는 생각속에 빠져 들게도 하였다.

말없음이 모두 편안함으로 인식되고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음에도 내게 말을 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원래 그런 아이로 명명되었다.

 서울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전학을 가는 친구를 보며 심한 질투를 느꼈고

한없이 부러웠고 내 위 형제자매를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학업에 대한 미련이나 내가 느끼는 것 보다 더 심한 부모의 무심에 얼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예상하지 못하고, 부모의 기대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말하지도 묻지도 않고

그저 막연함으로 무작정 도회지 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아무도 날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살면 엄청 다른 삶을 살 것 같았다.

계획 생각 각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운 환경이 나를 변화 시켜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건


집안일 거들며 돈을 적게 내고 반 하숙을 하던 주인의 갑작스런 이사에

잠시 동안 다락방에서 살았는데

작은아버지가 눈발이 되어 냇가로 침잠하듯 사라진 그날처럼 진눈개비라도 내릴 듯한

11월 어느 날 아침

연탄불 위에 밥 냄비를 올려놓고...


나는 차가운 타일 바닥에 누어있었다.

엉금엉금 기어나가 부엌 밖에 수돗가에 커다란 물받이 그릇에 얼어있는 얼음 깨고

머리를 쳐 박았다.

온몸에 한기가 와들와들 올라왔지만 그보다 더한 머리의 묵직함은 머리와 몸이 따로 분리된 듯 전혀 다른 감각을 구사하였다.

빈속에 얼음물에 쳐 박힌 머리를 받들고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하는 고지식함으로 학교에 갔는데 도대체 머리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되었다.

자꾸만 자꾸만 머리가 책상으로 쳐박아져 두 손으로 고이고 있어도 감당이 안 될 즈음

주인집 아저씨가 약 한 봉다리 사가지고 학교에 오셨다.

연탄가스란다.

아침에 퇴근해 와  보니 온가족이 가스에 중독이 되어 늦게 까지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가족들 약 사다 먹이고 제일 심한 아주머니는 병원에 입원 시키고 내가 생각나 학교로 찾아 오신거다.

난 어느 정도 중독이 되었던 것일까?

얼음물에 쳐 박혔던 머리 덕분에 바닷가에는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산들바람에도 앞머리로 이마를 가려야만 하는 머리의 고통.

낮게 내려앉은 진눈개비 내릴 듯 흐린 하늘은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그때의 고통과 서러움,미련, 무지, 서글픔, 등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1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