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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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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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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입문2


BY 이안 2011-10-01

사무실 밖에서 수향은 제복을 입은 영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왜 자신이 그곳에 있는지도 

알지못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게 휴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휴 외에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휴조차도 분명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잠깐 앉아있으라던 남자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여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앉아있는 게 지루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 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잠깐 앉아있으라는

그의 말이 생각나서 그녀는 일어나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사무실 안에서는 여전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담돌은 휴 하나만이라면 그녀의 삶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것을 모두 잊었다는 가정 하에서였다.

 

헌데 뭔가 찜찜했다. 그게 뭔지 콕 집어내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담돌은 찜찜한 마음을 밀어냈다. 쓸데없는 느낌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은 영계로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정해놓은

규정이나 그동안의 전례로 보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걸 지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계로 보낸

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휴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 여자가 굉장히 힘들 수도 있습니다.”

 

카인이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요. 그 고통까지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담돌의 말이 맞습니다. 그 여자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우리도 힘들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고,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겪어온

일이니 이번에도 아픔이 느껴진다면 참고 견디는 수밖에요.”

 

그래요. 그렇게 하죠? 지금 상황에선 선택할 다른 방법도 없잖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네. 나 역시 생각해봤지만 지금 상황에선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네.

지금까지의 전례에 따른다면 그 여자를 영계로 보낼 수밖에 없네. 게다가 다들 

생각이 비슷하니 영계로 보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네.”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을 지워주는 것은 어떨까요?”

 

카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그건 절대 안 된다네.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그건 지워졌어야 하는

거잖습니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아니야. 그 여자나 우리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네.”

 

왜 안 된다는 생각에만 매달립니까? 이젠 그 생각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까?”

 

이건 어떤 틀을 고집하는 것과는 다르다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게

있다네. 그게 무너지면 이 세상이 엉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네. 바로 지금 자네가

말한 게 그런 거라네. 자네가 지금 말한 건 아주 작은 거라네. 하지만 그게 시작이

된다면 언젠가 그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 거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자네 논리를 따른다면 자네 말이 맞네.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하지만 자네

논리를 버리고 이 세상의 논리를 따른다면 생각은 180도 바뀐다네.”

 

세상의 논리라뇨? 그게 뭐죠?”

 

우린 뭔가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네. 그건 이미 시스템이 하고 있는

일이네.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자네의 그 생각을 이미 규정으로 올려놨을

거네. 하지만 시스템은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규정도 만들어놓지 않았네. 왜 그런 줄

아는가? 이 세상의 운명은 그 누구의 간섭이나 개입으로 만들어져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라네. 우린 그걸 지켜내기 위해 존재하다네. 그러면서 영들의 아픔을

최소화시켜주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네.

우리는 이 세상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라네. 우리가 그걸 지켜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세계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네. 카인, 그걸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그걸 모르는 위원이 여기 누가 있습니까?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위원회가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항상 똑같은 결론에 이른다면 생각을

달리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 심의 위원회가 있는

아닌가요?”

 

똑같은 결론 맞네. 나타나는 현상이 비슷하니 결론도 똑같을 밖에. 내 생각에 카인,

자네의 지금 생각은 너무 극단적이야. 그 속엔 희망만 들어있네. 다른 가능성은

배제되어 있어. 자네의 생각에는 휴에 대한 기억을 지워주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는

일종의 암시가 들어있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네. 휴에 대한

기억을 지워준다고 가정해보게. 과연 그 여자가 행복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나?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 여자가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네. 아직 우리는 그

여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상황이네. 그러니 좀 더 지켜봐야하지 않겠나?”

 

늘 지켜보자는 결론이었죠. 그 결과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같이 고통스럽게

살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 겁니다.”

 

그 여자가 겪을 아픔에 대한 안쓰러운 자네의 마음은 이해가 가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안 될 말이네. 이 세상의 운명은 그 누구의 간섭이나 개입으로

만들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네. 우리가 늘상 이렇게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걸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육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것을 우리가 개입해서 지워준다면 이렇게 모일 일도 없지

않겠나? 항상 그렇게 하면 될 테니까 말이네. 우리가 필요한 건 그걸 피하기 위해서네.

그러니 그런 생각은 덮어주게, 카인.”

 

위원장의 단호한 말에 카인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위원장의 말이 못마땅한 듯

씁쓰름한 표정은 거두지 않았다.

 

그 여자를 영계로 보내는 것에 다른 의견은 없을 거라 생각하네. 카인 자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어쩔 수가 없네. 규정이나 전례가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말하고 있네. 그러니 자네도 받아들이게.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더 좋은 방법이 없다면 말이네. 담돌, 다시 한 번 묻겠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저 역시 지금 상황에선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특별히 이의가 없다면 이 결정을 받아들이는 걸로 알겠네.”위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는 카인을 외면한 채, 수향을 영계로 보내는 걸로 매듭을

지었다.

 

카인을 제외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다 위원장

말대로 잔상 정도로 심각하게 문제 삼은 전례는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카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그들 대부분은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그걸 바라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위원들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아나 묻혀갔다. 영계와 육계의 삶이 거듭되는

동안 그들은 새 삶을 꾸리고 가꿔나갔다. 그러면서 그들의 상처는 지워졌다.

 

그 여자가 자신의 집을 찾아갈 수는 있겠나?”

 

위원장이 담돌을 보며 물었다.

 

글쎄요. 찾아갈 수 있어야겠죠.”

 

그래야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담돌 자네가 함께 가주게. 정상적이었다면 그 여자가

집에서 깨어났겠지만 문제가 있었으니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네. 그렇다고

앞장서서 나서지는 말게. 그 여자가 자신의 집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정도만 하게나. 기억장치가 어느 정도 수정이 되었다면 그 여자가 영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긴 하네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네. 문제가 있는 이상 살피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게. 그 여자에게 다른 문제가

생기면 바로 상부로 보고하게.”

 

. 알고 있습니다.”

 

아참 그리고 그 여잔 지금 어떻게 있나?”

 

아마 잠들었을 겁니다. 영계로 돌려보낸 후 그곳에서 의식을 회복하게 할 겁니다.”

 

이곳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않게 하게. 이곳이 그 여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는

절대 안 되네. 명심하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갔다. 담돌도 사무실에서 나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예상한 대로 그 여자는 북박이들이 옮겨놓은 침대에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

 

다시 원래 위치로 보내주세요.”

 

그는 서둘러 그 여자가 누워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여자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렸다.

 

참 편안해 보이는군.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휴 뿐이겠지?

제발 그러기를. 영계의 시스템은 제대로 입력이 됐을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 여자는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

 

어 여기가 어딘가요? 그리고 당신은 누구죠?”

 

의식이 돌아왔군요. 여기 쓰러져 있더군요. 의식이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그 여자의 얼굴에 잠자는 동안의 편안함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기운을 가다듬고 일어나보세요. 이제 가야죠. 여기에 이렇게 있을 순 없잖아요.”

 

어디를요?”

 

어디긴요. 이제 의식을 회복했으니까 집으로 가야죠.”

 

집요?”

 

머릿속이 멍했다. 아무것도 또렷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여전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담돌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담돌은 위원장의 말대로 충격 때문에 영계의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후유증 때문에 잠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안정을 되찾으면 기억이 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불안감은 영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이곳에 내 집이 있습니까? 난 다른 곳에 있다가 잠깐 이곳에 온 거 같은

느낌인데요.”

 

그 여자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이죠. 이곳에서 집이 없는 영은 없습니다.”

 

담돌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잘 생각해보세요. 분명 기억이 날 겁니다.”

 

수향은 그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헌데

머릿속이 텅 빈 거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느낌조차도 없는 건가요?”

 

없으면 안 되는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이미 말했듯이 후유증 때문에 잠깐 기억을 놓친 것일 

겁니다. 안정을 취하면 저절로 생각날 테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기억해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때도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었다. 헌데 당시에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봐

내심 조마조마했었다. 한 번의 경험이 그의 걱정을 다소 앗아간 듯했다.

 

혼란이 생겨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야. 영기(靈氣)의 호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지워지고 입력되어야 하는 과정이 살짝 꼬여서 그런 것이야.

그게 제자리를 찾으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겠지.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그래요? 그렇게 믿으면 되는 거죠?”

 

수향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날 확신에 찬 표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수향은 마음이 놓였다.

 

믿자! 그의 저 표정을 믿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담돌은 그런 그 여자를 보자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가끔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군. 왠지 영계로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이야.’

 

헌데 이곳으로 가면 내 집이 나오나요?”

 

수향은 걱정이 되었다. 그를 따라나서긴 했지만 자신의 집이 이곳에 있다는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뭔가 낯설었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느낌이 영 가시지 않았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인 것만

같았다.

 

아니 한번 찾아봐야죠? 나도 어딘지 잘 몰라요. 잠깐만요, 이름이 수향이군요.

입력해서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어요.”

 

그는 그 여자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검색키를 누르자 그들 앞에 영상이 나타났다.

화살키가 이동하더니 16구역 두 번째 집에서 멈추었다.

 

여기군요. 16구역 두 번째 집요.”

 

그곳에 정말 내 집이 있나요?”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집이 가까이 있다는 게 영 

이상하기만 했다.

 

? 믿기지 않나요?”

“······.”

그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도저히

그렇다는 말을 내뱉을 자신이 없었다.

 

걱정 말아요. 지금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곧 익숙해질 겁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요? 내가 이상한 건 아니죠?”

 

그럼요? 절대 이상한 건 아닙니다.”

 

내 집이 여기서 먼가요?”

 

“16구역이면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습니다.”

 

그래요? 헌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죠? 저 앞에 벽이 있어요. 게다가 문도 없어요?”

 

문이 없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잠시 기다리면 열릴 겁니다.”

 

그는 머릿속에서 단어키를 찾아 하나하나 맞추어보았다. 오랜만에 이용하다보니

키가 잘 찾아지지 않았다. 한참 후에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어키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 틈새도 찾을 수 없을 거 같았던 벽이

갈라지면서 영계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건물이 참 신기해요. 문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맞아요. 좀 특이하긴 해요.”

 

그 여자에게 지금 본 것이 중간계와 영계의 경계라는 말은 해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그 여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근데 어떻게 한 건가요? 아무 것도 안 한 거 같은데.”

 

아 예. 중앙시스템에서 열어줬어요.”

 

그는 얼른 둘러댔다. 중간계의 시스템을 그 여자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가 속해있는 세계는 영계도 육계도 아닌 중간계였다.

육계에서 넘어온 영들이 영계처럼 생각하기에 편의상 그들 앞에선 그들의 생각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그렇군요. 중앙시스템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군요.”

 

그렇다고 해두죠. 어때요? 수향영 세상인데.”

 

그들 앞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투명 건물들이 화려하게 길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수많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딱딱 들어맞았다. 한마디로 질서정연했다. 어디를 봐도 시선이 불편한 곳은 없었다.

게다가 안은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아름답군요.”

 

그 여자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들떠서 흥분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좀 복잡하긴 하지만 좋은데요. 생각이 날 것도 같아요. 내가 이런 곳에 살고

있었군요.”

 

그는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수향은 낯선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기억은 확실히 나지 않았지만 낯익은 느낌, 친근한

느낌 속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엔 아무 것도 없어요. 모든 게 다 처음 접수되는 것들 같아요. 그런데

낯설지가 않아요. 내가 정말 여기에 살고 있었던 게 맞나요?”

 

그 여자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중간계를 빠져나오기 전까지 보였던

심란함이나 시무룩함은 차츰 걷혀가고 있었다.

 

예 맞습니다. 좀 더 지나면 익숙해질 겁니다. 처음이라는 느낌, 그런데 낯이

익다라는 느낌, 그런 것들도 곧 사라질 겁니다.”

 

그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영계의 시스템이 그 여자의 삶을 이끌고 있다면 그

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요?”

 

“‘어떻게?’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라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걸 묻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내게 문제가 있는 게 맞죠? 당신은 지금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는 거죠?”

 

그 여자의 표정이 다소 시무룩해졌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잠시 쓰러진 것 때문에 그럴 겁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아니요? 난 기억해야 될 것들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잖아요. 남들이 묻지 않는 것을

묻고 있기도 하고.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을 모르기도 하고. 내가 왜 모르는 거죠?”

 

그건 잠시 혼란이 생겨서 그런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벌써 다 잊었어요? ㅎㅎ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불안함이 가라앉을 거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 여자의 불안함을 건드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문제였다.

 

잊은 건 아니지만 이상해서요.”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대두요.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렇게 생각한 것이 우스워질

겁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럴 거래두요? 다 왔네요. 여기가 16구역 두 번째 집입니다.”

 

그들은 어느새 오피스텔촌에 와 있었다. 수향은 문패를 올려다봤다.

‘1602호 최수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그녀의 기분은 다시 묘해졌다.

그게 뭔지 콕 끄집어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그랬다.

 

왜 그냥 멍하니 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세요. 수향영 집이잖아요.”

 

어떻게 들어가죠? 여기에서도 중앙시스템이 열어주나요?”

 

아뇨? 당신 주머니에 있는 열쇠로 열면 돼요?”

 

내 주머니에요? 난 주머니에 열쇠같은 걸 넣은 적이 없는데요?”

 

그녀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주머니를 뒤져보세요. 거기 있을 겁니다.”

 

수향은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네요. 주머니에 있었네요. 언제 내가 여기다 넣어놨죠?”

 

그녀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열쇠를 돌리자 

장금장치가 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들어가 보세요. 집이잖아요.”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색했다. 자신의 집인 듯 하면서도 낯이 설었다.

그의 말 때문인 거 같았다. 자신의 집이라는 그의 말에 떠밀려 집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너무 적막했다. 그녀의 머릿 속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집이 아니었다. 그 집은

조용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적막하지는 않았다. 소근거림도 느껴졌고 떠들썩함도

느껴졌다. 헌데 이 집은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 살고 있었나요?”

 

그는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를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현관문을 열고 미적미적하는

그 여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휴의 잔상이라 생각하여 영계로 보내기는 하지만 휴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축소해서 생각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심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찜찜함도 거둬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여자가 영계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게 그 여자의 성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그게 그 여자 안에 있는 듯했다. 아무리 로강의 영기가 육계의 기억을 다 지운다

해도  본질 속에 있는 성향까지 다 지울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향은 현관입구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밖에 남겨둔 채 혼자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헌데 그는 들어가라고 그녀를 채근하고 있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푹 쉬세요. 쉬고 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겁니다.”

 

그는 발길을 돌렸다. 미적미적해서 그 여자에게 기대감 같은 걸 남길 수는 없었다.

그 여자의 시선이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짓누르긴 했지만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이어야 했다. 한 달 동안 영상장치를 통해서 만나다 놓아 보내줘야 하는

여자였다. 그 후에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잊혀져갈 한 명의

영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