캑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돌은 얼른 다가갔다.
그는 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자료를 작성한 후 저장했다.
그리고 망을 이용해 교육국으로 발송했다.
곧바로 교육국에서 연락이 왔다. 일단 그 여자를 교육국으로 데리고 들어오라는
내용이었다. 교육국에서 점검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휴,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여자였다. 남편을 만나야 한다고 했던 여자. 혼자 중얼중얼하며 남편과의 약속을
되뇌던 여자였다. 그 여자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뱉어내고 있었다.
‘휴, 기다리고 있을게.’
거품이 꺼져가듯 달싹거리던 그 여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는 불안하게 그 여자를
내려다봤다. 난감했다.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하지도 않았다.
교육국에서 파견된 기화(氣化)된 영들이 다가와 그 여자의 몸을 감쌌다.
“갑시다.”
교육국으로 가는 동안 그는 그 여자를 찬찬히 살폈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교육국으로 들어서자 교육국의 다른 영들이 모여들면서 물었다.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억장치가 수정되지 않은 거 같습니다.”
“로강을 건너긴 건넜습니까?”
“예. 건너자마자 쓰러지긴 했지만 건너긴 건넜습니다."
모두들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한 번 테스트를 해보죠. 깨어나면 아까 그 방으로 데려가 보세요. 어느 정도나
기억을 하는지 알 수 있겠죠.”
꽤 긴 잠을 잔 거 같았다. 머릿속이 온통 엉망이 되어 뭔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담돌은 얼른 그 여자에게 달려갔다. 그 여자는 깨어나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가 다가가자 그 여자는 두리번거리던 것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괜찮습니까? 어지럼증은 가라앉았나요? 힘들면 더 누워있어도 됩니다.”
“휴가 누군가요?”
수향은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쓰면서 물었다.
담돌은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휴, 기다리고 있을게요-.’라는 말이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휴-’라고 길게 불러 보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여기는 어딘가요? 왜 내가 여기에 와 있죠?”
그녀는 담돌을 보면서 물었다.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렴풋이나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당신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데려왔습니다. 일어나서 걸을 수 있으면 걸어보시겠습니까?”
그녀는 일어나 걸었다. 몸은 가볍게 움직였다.
“괜찮은 거 같군요. 다행입니다. 괜찮다면 이곳을 구경해보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기분전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그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가 그녀를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사방이
투명막으로 되어서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방이었다. 그녀는 그게 탁 트여서 좋다고
생각했다.
담돌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뭐가 보이나요?”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까마득히 먼 데서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말소리는
또렷했다.
그녀는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가 다시 투명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들이 보여요. 밖에서 영들이 게임을 하고, 나무를 심고, 악기를 연주하고, 또 다른
뭔가를 하고 있어요.”
“예 맞습니다. 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까?”
“또 다른 뭘 말인가요?”
그녀는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그냥 물어봤습니다. 한 번 이 안경을 써보시겠습니까? 먼저 초록색
안경을 써보십시오.”
그녀는 그가 건네주는 안경을 받아썼다. 그리고 안경 넘어 세상을 바라봤다.
“뭐가 보이나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내 눈이 잘못 된 건가요?”
“아닙니다. 그건 바깥세상을 보이지 않게 하는 안경입니다. 이번엔 푸른색 안경을
써보세요. ······ 이번엔 뭐가 보입니까?”
“예, 아까 보았던 세상이 좀 더 크게 보입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다니며 육계와 연결된 망을 통해 그녀에게 육계의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이 수정된 거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헌데 휴가 누구죠? 휴가 내 머릿속에 있어요.”
“글쎄요. 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거 없습니까?”
“예. 다른 건 떠오르지 않아요.”
“곧 사라질 겁니다. 잠깐 여기 앉아계세요.”
그는 그녀를 남겨두고 사무실로 갔다. 거기에는 교육국의 심의 위원들이 연락을
받고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던가? 그 여자가 어느 정도나 기억하고 있던가?”
“기억장치는 수정이 된 거 같습니다. 육안경을 썼는데도 육계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육안경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영안경에는 반응했습니다. 그런 걸로
미루어 기억장치 안의 것들은 거의 바뀐 게 아닌가 합니다.”
“거의라면?”
“한 가지만 빼면 육의 세계와 연결된 그녀의 감각은 닫힌 거 같다는 겁니다.”
“그 한 가지가 도대체 뭔가?”
“휴가 누구냐고 묻더군요. 휴가 머릿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휴라 했나? 휴가 누구인가?”
“남편인 거 같습니다.”
“저도 그럴 거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죠.”
파가 잽싸게 망과 연결된 서류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남편이 맞습니다. 휴는 남편의 영명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에 대한 기억이 다 지워지지 않았다는 거군. 그 여자가 남편에 대해
분명하게 기억을 못하는 건 맞나, 담돌?”
“예. 제게 휴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정도라면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규정대로 해야 하겠죠? 그렇게 하면 무리가 없을 거 같기도
합니다.”
“일단 담돌의 의견을 들어보죠? 담당자가 담돌이니 담돌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게 좋을 거 같군. 담돌,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한 번 말을 해보게. 자넨 그 여자에게
뭔가 새로운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지금으로선 그런 건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선돌 말대로 규정대로 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규정대로라면 영계로 보내는 게 마땅합니다. 이 정도면 지금 상황에서
영계로 보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까지 단정적으로
선을 그어서 말하기는 좀 ······.”
“어렵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담돌, 기억장치가 수정된 거 같다고 하지 않았나?”
카인이 신경을 돋우며 말했다. “그건 지금 확인한 것으로 미루어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휴에 대한 기억이 어느 정도로 그 여자에게 작용할지 지금으로선 그 파장을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게 전부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도 어렵고요. 간혹 그게 꼬투리가 되어서 다른 것들을 더 기억해내는 경우도
있잖습니까?”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있지.”
위원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위원들은 모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그렇듯이 당사자를 위해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