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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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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2011-09-17

놀랍게도 약속을 한 이후 난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기도원은 나를 절대적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낯설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이루어내는 그

 

분위기에 내가 끼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차안의 그런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다시

 

내 안으로 조용히 잠겨들 수 있게 되었다. 여유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를 여유를 찾은

 

것이었다.

 

 

 

 

곡이 끝나고 새로이 찬송가가 이어졌다. 곡이 끝나면서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멈칫멈칫 하는가 싶더니 누군가가 선창을 하자 찬송가 소리는 이내 다시 살아났다. 마치

 

400m 계주에서 두 주자가 바톤을 주고받기 위해 머뭇머뭇하는 순간과도 흡사했다.

 

레퍼토리를 정해서 연습을 했을 리도 없는데 모두들 잘도 따라 불렀다. 소리도 구석

 

구석에서 빈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치소서……인치소서……인치소서’ ‘인치소서라는 부분이, 곡이 23절로 이어지는

 

동안 몇 번인가 반복되고 있었다.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이 반복될 때마다 나도 따라 되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힘에 끌려서였지만 몇 번 반복하여 되뇌고 있는 사이 나는 내가 그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보니 그 노래가 끝나고

 

다른 노래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그 말을 붙들고 있었다. 내 속에서 그

 

의미는 명확하지 않았다.

 

 

 

 

인치다 인치다나는 속으로 몇 번 중얼거려 보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 말은 이조

 

시대 너무나 많고도 끔직해서 그 이름들을 다 외울 수도 없는 형벌의 일종인 것처럼

 

전달되어 왔다. 그러나 찬송가 속에서 그 말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말에 대한 내 느낌이 찬송가의 의미와 뭔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도 내 의식 속에서는 조금도 그런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