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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비만자


BY 윤현화 2011-04-13

기어코 나의 인생은 정석을 이탈하였다. '이탈자'라ㅡ 참, 유쾌하게 하는 호칭이다. 참, 흥분케 하는 호칭이다. 하지만, 현재 나는 '내장비만자'일 뿐이다.

 

인생의 정석이 뭘까? 암컷과 수컷이 만나 교미하고 번식하고 죽는 것. 그게 다라면, 그게 끝이라면ㅡ이제껏 내가 연명했던 이유는 뭘까? 성경에도 잔칫집 보다 초상집이 낫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인지도 기억 나질 않는다. 홀어머니를 두고 상경할 땐 성공이란 부푼 희망만 있었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매일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밤낮을 잊고 게임을 하고 야동을 보고ㅡ그제서야 나의 치부가 기지개를 켜고ㅡ화장실 들락이는 시간도 아까워서 빈 피트병 재활용! 시궁창이 따로 없다. 나도 알지만, 너무도 잘 알지만ㅡ어쩔 수 없다. 나는 개니까!

 

밤낮을 잊은 내가 자려고 누웠다. 오랜만에 라디오를 켰다. 고향에 있을 때는 매일 듣던 라디오가 여기선 쉽지가 않다.

"여러분, 아시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였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살고 싶다. 그저 살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쉽게 죽던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적어도 내겐ㅡ

 

여느 때처럼 나는 눈을 뜨자마자 야동을 켠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먹는다. 원시생활을 재현하는 거야? 나만의 공간인 원룸 안에서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산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ㅡ귀찮다. 혼자 사는데, 애꿎은 빨래거릴 만들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보험 좋은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게 여유로운 전화가 올 리 없다. 유일하게 내게 오는 전화라곤 광고이거나 고향 베프 석현뿐이다. 석현도 인생 살이가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석현은 부모님보다도 내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다. 며칠 전에도 석현과 전화 통화를 했었다.

"웬 일이야?"

"웬 일이긴..."

"일자리는 구했냐?"

"나야. 늘 같지 뭐. 너는?"

"조만간에 일자리 생길 것 같애."

"...승재야, 네 롤모델이 누구야?"

"뜬금없이 웬 롤모델 타령?"

"우리 다시 시작하자. 우리 늦지 않았어."

"내일이면 서른이, 무슨 롤모델 타령이야."

"승재야, 너도 미래 생각하면 숨 막히잖아."

"석현아, 너나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부모님 등골 파먹고 살래?"

"...그래 알았다. 승재야, 즐겁게 살아라."

또 핸드폰이 울린다.

"가입 안 한다구요!"

"승재야!"

"...엄마..."

엄마가 웬 일 일까? 평소엔 전화도 없더니...

"바뻐? 엄마 나중에 다시 전화할까?"

"...아니...괜찮아...지금 쉬는 시간이야..."

"생활비 안 떨어졌어? 부쳐 보낼까?"

"내가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너무 걱정마...근데,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아들한테 전화하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돼?"

"그런 의미 아니란 거 알잖아...엄마..."

그렇게 엄마랑 통화를 흐지부지 끊고 나는 또 정액을 배출한다. 몸 안의 정액이 바닥날 때까지ㅡ

 

그날도 밤낮을 잊고 야동을 보다 잠이 들었다. 얼마 쯤 잤으려나? 핸드폰 울림에 잠이 깨인다.

"...여보세요..."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으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승재야...어쩌냐...승재야...어쩌냐..."

수화기로 들리는 목소리는 석현이인데, 울먹이는 소리만 들리고 말을 잇지 못한다.

"석현아, 도대체 무슨 일이인데 그래?"

"...승재야...네 어머니가..."

"우리 엄마가 왜?"

"...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이게 무슨 소린가? 엄마가 죽었단다. 며칠 전에 통화를 한 엄마가 죽었단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잘못 들은 것 같다. 그럴 수가 없다. 엄마가 나만 두고 그럴 리가 없다. 잠이 확 깬다. 모를 눈물도 흐른다. 수전증 환자마냥 손이 떨려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엎드려 누워 통화를 잇는다.

"...석현아...천천히 다시 말해봐..."

"...승재 네 어머니가...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석현의 말을 들은 나는 다시 비몽사몽이 된다. 먼저, 옷을 입어야 한다. 하도 옷을 안 입어서 옷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벌거벗은 채로 고향에 내려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산발 머리와 얼굴을 뒤덮은 수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단 나는 거친 수염을 깎고 개기름으로 코팅된 머리를 감는다. 하다보니 샤워를 하게 되고 정액을 배출하게 된다. 아마도 나는 엄마의 죽음을 잊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엄마가 죽었는데도 자신을 치장하고 쾌락을 좇다니! 아무래도 나는 인간이 아닌가 보다.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소년이 아니었나 보다.

 

또 핸드폰 울림에 잠이 깨인다.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내려오고 있어?"

석현이 목소리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여기는 나만의 공간인 원룸이다. 내가 엎드려서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거의 다 왔어..."

대충 흐지부지 둘러대고 전화를 끊고서야 나의 이성이 보인다. 막차 시간이다.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 막차 시간이다. 막차라도 타려면 서둘러야겠다. 설상가상으로 창 밖에 비가 내린다. 과연 나는 막차를 타고 고향으로 갈 수 있을까? 일단 뛰고 보자! 나는 어두운 빗속을 달린다. 그 결과 가까스로 막차에 올라탄다.

 

"거의 다 왔다더니, 이제 왔네!"

"...차가 막혀서...엄마는?"

"참, 빨리도 묻는다. 입관은 했으니까 마무린 네가 해."

"석현아, 고맙다."

"우리 사이에 당연한 거지 뭐. 밥은 먹었어?"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문상객이 보이지 않는다. 초상집엔 문상객을 맞을 준비로 어수선하다. 이리저리 초상집을 거닐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어디서 봤더라?

"엄마!"

사내아이 하나가 낯익은 여자 곁에 안겨 조른다.

"엄마, 놀자ㅡ!"

"엄마 일 해야 하니까, 나중에 놀아줄게."

여자 말에 사내아이가 토라져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아저씨랑 놀까?"

평소 나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ㅡ사내아이에게 다가가 묻는다.

"응! 아저씨, 나랑 놀자."

순간,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저며 온다. 나는 사내아이 손에 이끌려 초상집 밖으로 나가고 아이 엄마는 다시 전을 부친다.

"아저씨, 우리 숨바꼭질하자."

이 컴컴한 밤에 뭘 하자는 거야.

"아저씨가 술래야. 열까지 세고 찾아야 돼. 나 숨는다."

"응. 알았어."

순간, 좋은 생각이 난다. 열을 세고 안 찾으면 되겠다! 나는 열을 세고 아이를 찾는 척 헤매다 마을 수퍼로 가서 맥주캔을 마신다.

"야! 너 승재 아니야?"

슈퍼를 지나쳐가는 사람들 중에 나와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건다.

"...누구세요?"

"이승재 아니세요?"

"...제 이름이 맞긴 한데...저 아세요?"

갑자기 남자가 내 머리를 툭 친다.

"자식! 서울 가더니 농담도 늘었네."

"...저기...진짜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누구세요?"

"자식, 진짜 기억 안 나나보네...나 철민이야!"

철민? 누구지? 옛 기억이 리플레이 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철민! 생각났다!

"...어...그래..."

 

고교 시절 가출한 적이 있었다. 읍내 이곳저곳을 헤매다 읍내역에서 잠이 들었었는데,

"야! 야!"

배고픔을 잊고 간신히 잠이 든 나를 누군가 쿡쿡 찔러 깨운다.

"...누구야...너희들?"

비몽사몽간에 무리가 보인다.

"누가 여기서 자래!"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무리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당한다. 그렇게 얼마나 맞았으려나?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땐 캄캄한 어둠만이 보이고 양팔이 뒤로 묶여있다. 시력이 어둠을 적응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이곳! 소리 지를 힘도 없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

"...저기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둠에 적응된 시력으로 찬찬히 보니 여자다. 여자애가 양팔이 뒤로 묶인 채 왼손목엔 별 모양의 문신이 있다. 그리고 얼굴엔 맞은 상처가 화려하다. 여자애가 두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엎드려 거친 숨을 몰아쉰다.

"...저기요...저기요..."

여자애가 눈을 뜬다.

"...누구야...너?"

내가 묻고 싶은 말을, 여자애가 힘겹게 내뱉는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 온다. 어둠을 속에서 무리가 걸어 나온다. 무리 중 한 명이 엎어져 있는 여자애 옷깃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이제껏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네 멋대로 써클을 탈퇴해! 내가 말했었잖아.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그 놈이 여자애 옷깃을 놓는 순간, 여자애가 땅바닥에 철퍼덕 엎어진다.

그 무리 중 한 명이 바로 철민이다! 그리고 그 무리는 가출한 아이들이 만든 비행써클이었다.

내 앞에 있는 남자가 철민인 걸 인식한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버벅인다.

"...어...그래..."

 

철퍼덕 여자애를 엎어뜨리고 철민은 내게 묻는다.

"너, 우리 써클에 들어와라."

당시 나는 양심이란 게 있었나 보다. 양심에 따라 굳게 입을 다문 죄로 나는 모다구리를 당했다.

정신을 차리니 여자 비명소리가 들린다. 찰나가 지날수록 여자의 비명은 퇴색하여 신음소리가 된다. 나의 초점은 어느 틈엔가 신음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있다. 살짝 문이 열려있는 가건물 안에 철민과 여자애 둘만이 보인다. 여자애는 양팔이 묶여있고 철민이 여자애를 마구 때린다. 한동안 마구 때리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카터칼을 꺼내 여자애 윗옷과 바지를 벗긴다. 여자애는 카터칼이 두려운 듯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마!"

내가 아닌 사이 나는 외쳤다. 카터칼을 든 철민이 멈칫한다. 그리고 내게로 걸어온다. 나는 뉘우칠 틈도 없이 철민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다. 여자애가 겉옷이 벗겨진 채 애처로운 듯 나를 바라본다.

철민은 나의 엄마가 돌아가셔서 고향으로 내려온 걸 알고 있었고, 초상집엔 마누라가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흐지부지 철민과 헤어지고, 나는 초상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초상집에서 본 아이 엄마를 만났다.

"애 어딨어요?"

아이 엄마가 다짜고짜 내게 묻는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현재 나는 숨바꼭질 중이란 걸ㅡ

 

아이 엄마와 나는 사내아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이쪽에도 없어요."

나는 사내아이를 찾으러 옥수수 밭으로 들어간다. 이리저리 옥수수 밭을 헤집고 나가다 맞은편에서 걸어 나오는 아이 엄마를 만난다. 아이 엄마는 사내아이를 찾지 못해 금방이라도 울듯하다.

"...미안해요..."

아이 엄마가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스쳐간다.

"미안하다구요!"

순간, 나는 내가 아닌 게 된다. 아이 엄마 양팔을 붙잡는다. 아이 엄마 왼손목에 별 모양 문신이 보인다. 순간, 옛 기억이 리플레이 된다.

분명, 그때 그 여자애다!

"왜 이러세요! 놔요! 놔 주세요!"

여자애의 격렬한 몸부림이 나를 흥분케 한다. 나는 그때처럼 여자애를 꽉 안는다.

 

일방적으로 철민에게 두들겨 맞고 나는 가건물로 질질 끌려갔다.

"야! 나보고 하지 말랬냐?"

여자애가 보는 바로 앞에서 철민이 나를 툭툭 발길질 한다.

"야! 그럼, 네가 해!"

철민의 말을 듣고서 나와 여자애는 동시에 철민을 째려본다.

"나보고 하지 말라며!"

철민이 묶여있던 나의 손목을 풀어준다. 하지만 내겐 철민을 저항할 힘이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 철민을 녹다운 시키고 여자애를 구해줄 자신이 없다.

"해봐! 하라니까!"

자의였든 타의였든 나는 철민이 건네준 카터칼로 여자애 속옷을 찢는다. 여자애가 체념한 듯 두 눈을 질근 감는다. 스르르 속옷을 벗기자 나의 치부가 때를 만난 듯 크게 기지개를 켠다.

"푸하하! 너도 남자긴 남자네!"

철민이 나의 기지개를 보고 크게 웃는다.

"뭐해! 세영이가 추워하잖아! 안아줘야지!"

어느새 나는 여자애가 원치 않는 퍼즐게임을 즐긴다. 나 혼자ㅡ

 

"뭐하는 짓이에요!"

여자애가 나의 뺨을 때린다.

"...죄송합니다...제가 알던 여자와 너무 닮으셔서...나도 모르게 그만..."

아이 엄마가 나를 지나쳐 간다.

"...저기...혹시...성함이 차세영 아니세요?"

아이 엄마가 가던 길을 멈춘다.

"세영아! 나야! 이승재!"

"...잘못 보셨어요...저는 차세영이 아니에요..."

아이 엄마가 가던 길을 그냥 지나쳐 간다. 분명 맞는데? 나는 허탈감에 고개를 돌리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논두렁길에서 철민과 사내아이가 여기를 보고 있다.

 

다음 날, 나는 상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이한다.

"아침 일찍 오네...요..."

세영이 얼굴에 상처가 나있다. 세영이는 민망한 듯 얼굴을 가리고 나를 스쳐간다. 어찌 된 걸까? 어젯밤엔 상처가 없었는데. 저건 맞아서 생긴 상처다! 혹시, 설마, 철민이가 어젯밤 일로 세영에게 손찌검을 했나? 철민이 자식은 백만 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분명ㅡ!

 

여자애와 나는 양팔이 묶인 채 가건물 안에 둘이만 있다.

"...미안해요..."

여자애가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린다. 내가 이런 여자애한테 몹쓸 짓을 하다니... 내가 싫다. 육신의 생각을 벗지 못하는 내가 싫다.

지난 잘못을 괴로워하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나는 가건물이 아닌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양팔이 묶이지도 않은 채...

"너 학교도 안 가고 낮에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엄마가 벌꺽 방 문을 열고 내게 묻는다.

 

문상객이 거의 줄어들 쯤 세영이가 남은 음식을 싸들고 집으로 가려한다. 나는 얼른 상복을 벗고 몰래 세영이를 쫓아간다. 세영이가 집에 도착하고 방 문을 연다. 철민이도 사내아이도 보이지 않는다. 세영이가 욕실로 들어가서 땀범벅이 된 옷을 벗고 샤워를 한다. 이러려고 몰래 쫓아온 게 아닌데, 나의 눈은 어느새 욕실 안을 훔쳐보고 나의 치부는 기지개를 켠다.

"이승재!"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고개를 돌리니 철민이다. 철민은 만취한 듯 비틀거리고 손엔 낫이 들여져 있다.

"...철민아...철민아..."

겁에 질린 나는 연거푸 철민을 외친다.

"뭘, 그렇게 봐!"

철민이 낫으로 나를 공격한다. 나는 낫을 피하고 공격을 막으려다 그만 실수로 철민의 심장을 찌르고야 만다. 당황한 나는 순간 얼음이 되고 철민은 내게 손을 뻗지 못한 채 즉사 한다. 땡 소리가 울리자 나는 얼음에서 풀리고 현장을 정신 없이 달아난다. 샤워를 마친 세영이 욕실 문을 열고 낫에 찔려 죽어 있는 철민을 발견한다. 그리곤 비명을 지른다. 비명이 울려 퍼져 달아나는 승재의 걸음을 멈추인다.

 

초상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의 영정을 바라보고도 세영의 비명을 리플레이 된다. 나는 괴롭다. 괴로워 미칠 것만 같다. 아무래도 자수를 해야 이 괴로움을 떨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내게 양심이 남은 연유로...

"석현아, 부탁 좀 하자."

나는 석현에게 엄마 장례식을 부탁하고 자수하러 파출소로 갔다. 아직 신고 되지 않은 살인사건에 경찰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살인사건이 접수되고 바로 나는 구치소에 수감 된다. 그날로 살인사건은 마을에 퍼지고 그 일로 나른한 마을이 한바탕 뒤집힌다.

 

"엄마, 나랑 놀자."

사내아이가 방 안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세영에게 떼를 쓴다.

"엄마, 어디 가?"

방 문을 열고 나온 세영이 다짜고짜 사내아이 손을 잡고 구치소로 간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세영이가 사내아이 손을 잡고 구치소 안으로 들어간다.

"아저씨, 여기 있었어! 나랑 놀자."

사내아이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승재를 보곤 말한다.

"아저씨, 왜 거기 있어? 어서 나와. 나랑 놀게."

승재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만 묻고 있다.

"승재야."

세영이가 나를 부른다.

"왜 왔어! 나 같은 살인자 뭐 볼게 있다고... 왜, 아빠 죽인 살인자가 누군지 아이한테 보여주려고 데려 왔어?"

나는 맘에도 없는 비수를 내놓는다.

"...그래...이때까지 기다린 아빠가 살인자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 왔어!"

세영이가 눈물을 떨구며 내놓은 비수로 나를 찌른다.

"엄마, 울지마!"

사내아이가 소리 내어 운다. 사내아이의 울음 소리가 구치소를 울린다. 비수에 찔린 나는 비틀비틀 거리다ㅡ밤이 된다. 철창 새로 어둠이 들어와 나를 비춘다. 하지만 어둠은 자신이 어둠인 걸 알 리 없다.

 

"뭐하는 짓이에요!"

세영이가 승재의 뺨을 때린다.

"...죄송합니다...제가 알던 여자와 너무 닮으셔서...나도 모르게 그만..."

세영이 승재를 지나쳐 간다.

"...저기...혹시...성함이 차세영 아니세요?"

세영이 가던 길을 멈춘다.

"세영아! 나야! 이승재!"

"...잘못 보셨어요...저는 차세영이 아니에요..."

세영이가 가던 길을 그냥 지나쳐 간다. 개울을 건너던 세영이가 발을 잘못 디뎌서 첨벙 엎어진다.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잊지 못해!"

그새 뒤따라오던 철민이 개울에 뛰어들어 세영을 일으킨다. 세영의 이마에 피가 흐르고 철민의 입술이 상처를 덮는다. 그걸 알 리 없는 세영은 사내아이를 보고 놀래 철민을 밀쳐 개울에 첨벙 빠뜨린다.

 

세영과 승재가 양팔이 묶인 채 가건물 안에 둘이만 있다.

"...미안해요..."

세영이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린다.

철민이가 가건물 밖에서 둘의 모습을 보며 입을 틀어막고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