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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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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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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외치다


BY 윤현화 2011-04-13

요즘들어 부쩍 이른 새벽에 잠을 깨는 날이 많아졌다. 나의 치부가 기지개를 켜면 치부를 어루만지는 사나이는 어느새 짐승이 된다. 사나이가 치부를 어루만지는 날이 많아지듯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날이 많아지면 눈부시게 선명한 그림자가 내 귓가에 창의 커튼을 들려준다.

 

"저 썩어빠질 놈이 여기 웬 일이래?"

이제는 동네 슈퍼도 마음 편히 못 다니겠다. 어딜 가도 다 나를 보고서 쑥덕인다. 사지육신 멀쩡한 놈이 부모 등골 파먹고 산다고. 다들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 그들이 뭐라 하든. 어차피 나는 고래니까. 어차피 나는 바다로 돌아갈 거니까.

 

오늘도 나는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어둠을 즐기러 민박집을 나선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고요 속에 나는 샤워 소리에 이끌려 샤워실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보았다. 우뚝 솟은 분홍빛 봉우리, 나는 보았다. 폭포수에 깊게 파여 수풀로 가려진 기슭, 온 몸 곳곳에 땀방울이 맺히는 까닭이 그녀의 바디라고 단정 짓지는 마라! 나의 치부가 기지개를 켠 것 뿐이니까. 계절이 열대야인 것 뿐이니까. 그녀는 피서철을 맞아 해수욕장에 놀러온 피서객이 분명한데, 왜 그녀는 해수욕장에 널리고 널린 민박집 중에 왜 여기, 부모님이 경영하는 민박집에 와서 나 같은 짐승 눈에 띄었을까?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끊기기 전까지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녀가 샤워실을 나간 후에도 나의 치부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것 역시 저주받은 육신의 본능인가.

 

밤새 해변을 거닐면 낮에는 피곤하다. 해가 뜰 쯤 되어 나는 민박집 나의 방으로 들어가서 배고픈 것도 잊은 채 바로 곯아떨어진다. 이제는 나를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누가 그랬는가. 인생은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거라고. 어차피 나는 고래니까. 어차피 나는 바다로 돌아갈 거니까. 그런데 지금 고래인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숱한 상념과 후회는 해가 뜸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진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낮과 밤의 개념이 다른 것 뿐. 무위도식.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쁘지도 않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요즘들어 내게 변화가 생겼다. 해수욕장에 어둠이 깔려야 방을 나오는 건 예전과 같은데, 방을 나와서 제일 먼저 내가 들리는 곳은 부엌이다. 여기저기 뚜껑을 열어보고 허겁지겁 어느 정도 뱃가죽을 채우고서야ㅡ또 나는 그녀의 바디를 잊지 못하고 샤워실 안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나에게 어둠만큼이나 값진 눈요기가 된 걸까. 며칠째 허탕만 쳤다. 그녀의 존재조차 희미해진다. 부엌은 고래가 되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들락인다지만, 내가 왜 컴컴한 샤워실 안을 들여다보는 걸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찾고 있나? 이제 곧 바다로 가야 하는데. 가끔 그녀가 아닌 피서객의 바디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만 못하다.

 

나는 하루에 두 번 부엌을 들린다. 방을 나와서 한번, 방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예전에는 부엌에 들릴 필요가 없었다. 전에는 엄마가 밥상을 차려 방 안에 들여다 주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긴 백수살이에 두 분도 지쳤는가 보다. 어쨌든 고래가 되는 날까지 연명해야 하니까, 오늘도 나는 해수욕장에 나가기 전에 부엌을 들린다.

 

피서철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데도 여전히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뱃가죽은 채웠지만. 이대로 다시는 육신의 본능을 채울 수 없는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어둠이 덮인 바다를 헤엄쳐 가려는데, 어렴풋이 인간의 실루엣이 보인다. 이 시간에 나 말고 해수욕장을 찾을 사람이 없는데? 실루엣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실루엣이 달리는 곳은 바다! 순간,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실루엣의 뜀박질을 막는다.

"놔! 놔란 말야!"

나의 손이 실루엣의 손목을 잡고 있다. 머리가 긴 걸로 봐서는 여자인 것 같다.

"놔라니까."

실루엣이 고개를 뒤로 돌린다. 나는 실루엣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을 놔버렸다. 어쿠야! 계집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모래사장에 엎어진다.

"아저씨, 갑자기 놓으면 어떡해?"

"놔라고 했잖아...요?"

계집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

"안 보여요? 헤엄쳐서 바다로 나가려는데, 아가씨가 방해했잖아요!"

"아저씨 지금 나한테 짜증내는 거야?"

"...누가 짜증냈다고 그래요?"

"아저씨 말투가 지금 짜증내고 있잖아."

사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나 보다 어려 보이는 계집이 언제 나를 봤다고 초면부터 반말인가.

"근데요. 몇 년생이세요?"

"그건 왜?"

"아니... 되게 어려 보여서요."

기분이 좋아진 듯 계집이 대답한다.

"나 구공이야!"

구공이라니. 내가 아무리 백수라지만, 띠 동갑한테 이렇게 무시를 받아야 하나? 애써 참고 있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아저씨, 수영 잘 해?"

억지로 화를 삭이는 데도 계집이 계속 반말을 한다.

"...제가 그쪽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데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계집의 말투가 변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래! 그럼, 아저씨도 말 놔!"

"...그래...그러자..."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다만, 계집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육신의 본능에 오염 된 내 마음까지 덩달아 정화 되는 것 같다.

언제 해수욕장 물로 들어갔는지 계집이 내게 바닷물을 끼얹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계집이 나의 발목을 잡고 풍덩 바닷물로 넘어뜨린다.

순간, 나는 물살을 가르며 헤엄을 쳐 푸르디푸른 태평양으로 간다. 나의 고향. 나는 고래니까. 하지만 나의 육신은 침전한다. 나의 육신에겐 고래가 될 자격 따위는 없는 걸까?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

계집이 나를 건져 흔들어 깨운다. 나의 이상은 다시 육신을 입어 본능이 된다. 눈을 뜨는 나를 보고 계집이 안도한다. 그런 계집을 나는 강제로 끌어안는다.

"이거 놔! 아저씨, 미쳤어?"

계집이 나의 뺨을 때린다. 이게 나의 육신이 고래가 될 수 없는 증거인가? 눈물이 솟아난다. 고래가 될 수 없음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일어서서 가려던 계집이 넋 나간 얼굴을 한 나를 보고는 옆자리에 앉는다.

"왜 아저씨가 울어? 울 사람은 정작 난데."

 

눈물이 마르고서야 나는 계집에게 묻는다.

"방금 전에 바다로 왜 뛰어든 거야?"

"아저씨는 왜 나를 잡았는데?"

아무런 대답도 생각나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먼저 물었잖아."

"아저씨가 먼저 대답 안 말하면 나도 안 할 거야."

계집이 옆에 눕는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아저씨 여기 살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눈은 계집의 바디를 애무하고 있다. 나의 치부가 기지개를 켜고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눕는다.

"아저씨, 왜 돌아누워 있어?"

계집이 나의 어깨를 잡아당긴다. 나는 수습할 틈도 없이 모래사장에 등이 닿는다. 계집이 보았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꼿꼿한 나의 치부를.

"...변태!"

창피해서 두 눈을 못 뜨겠다. 징그럽다고 계집이 달아났으면 좋겠다. 계집이 갔는지 보려고 게슴츠레 눈을 떴는데, 계집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다시 눈을 질근 감는다.

"아저씨 눈 떠! 다 봤어!"

나는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있다. 그런데 계집이 내 발에서 운동화 한 짝을 벗긴다.

"이래도 안 뜰래?"

운동화 한 짝으로 바닷물을 떠서 내 입을 벌리고 질질 쏟아 붓는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 버텼지만, 이빨 틈 새로 들어오는 바닷물의 짠 맛과 부패된 오물을 참을 수 없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헛구역질을 한다.

"어머! 어째!"

계집이 헛구역질을 하는 나의 등을 두들겨 준다.

"아저씨, 이제 괜찮아?"

계집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순간, 나는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달렸다. 계집이 쫓아 달려온다.

"거기 서! 잡히면 죽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내가 왜 도망치는 거지? 내가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강간한 것은 더더욱 아닌데. 그냥 조금 창피한 것 뿐이잖아. 어차피 나는 고래라서 곧 바다로 돌아갈 건데.

나는 달리던 길을 멈춘다. 나를 쫓아 달려오던 계집이 멈춘 나를 미처 보지 못하고 멈춘 내 몸에 부딪혀 쓰러진다.

"야! 꾀병 부리지 말고 얼른 눈 떠!"

눈을 뜨지 않는다. 설마? 나는 계집 코 끝에 손을 대어본다. 호흡이 없다. 며칠 전 예비군 훈련 중에 실습한 심폐소생술이 생각난다. 먼저 기도 유지를 하고 흉부 압박을 해야 한다. 나는 계집 가슴을 봤다. 좌우 갈비뼈가 만나는 곳에서 두 손가락 넓이만큼 위쪽이라고 했는데, 나는 왜 자꾸 계집 가슴을 보고 침을 꼴깍꼴깍 삼킬까?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인간의 몸을 입은 내게는 이제 본능 밖에는 없나? 계집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번뜩 계집이 눈을 뜬다.

"사람이 다 죽어 가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할 말이 없다. 나는 무안한 두 손을 포개서 나의 치부를 가린다. 계집이 나의 포개진 두 손 위치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저씨, 나이 값 좀 하셔."

 

"좀 전에 아저씨가 물었잖아? 바다로 왜 뛰어들려고 했냐고. 사실 나 무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나를 차고 다른 여자한테 갔어. 그래서 그 남자한테 복수하고 싶었어."

"그래서 바다로 뛰어든 거야? 그 남자한테 복수 하려고."

계집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의 죽음으로 가책을 느끼라고?"

계집의 눈물이 뺨을 타고 모래사장에 닿는다.

"과연 그 놈이 슬퍼할까? 그게 복수라고 생각해? 복수는 네가 그 놈 보다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게 복수야."

계집이 훌쩍이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민망하게 왜 그런 눈으로 봐?"

 

"내가 비밀 말했으니까, 아저씨도 비밀 말해?"

"그런 게 어딨어?"

벌떡 계집이 일어난다.

"비밀 안 말해주면 성추행으로 아저씨 신고한다?"

"...그런다고 내가 쫄 것 같애? ...무슨 성추행을 해! ...내가?"

"아저씨가 강제로 날 안았잖아."

"...그게 무슨 성추행이야?"

"성추행이 아닌가?"

나는 계집을 다시 앉히려고 두 손으로 계집의 팔목을 잡는다.

"그래! 그거 성추행 아니야."

"그럼, 강간 미순가?"

"...그게 무슨 강간 미수야?"

"그럼,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고해도 아무 상관 없잖아?"

나는 붙들고 있던 계집의 손목을 놓는다.

"그럼, 나 신고하고 올게."

 

내 꾀가 먹혀든 것일까? 신고하러 가던 계집이 다시 내게로 달려온다.

"아저씨! 왜 나 안 붙잡아?"

나는 계집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귀염이 아저씨가 붙잡지 않아서 화났구나?"

계집이 나를 껴안고는 키스를 한다.

 

내 꾀가 먹혀든 것일까? 신고하러 가던 계집이 다시 내게로 달려온다.

"아저씨! 왜 나 안 붙잡아?"

나는 계집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귀염이 아저씨가 붙잡지 않아서 화났구나?"

계집이 양 손으로 나의 양 어깨를 잡는다. 기대가 된다. 계집이 나를 안고 키스를 하려나 보다. 그런데,

"그래! 붙잡지 않아서 화났다!"

계집의 무릎이 나의 치부를 강타한다. 그대로 나는 모래사장에 엎어져서 좌우로 뒹군다.

 

신고하러 가던 계집이 다시 내게로 달려온다. 나는 겁에 질려 나의 치부 부위를 크로스 시켜 막는다.

"아저씨 뭐야?"

"...어!"

"이게 뭐하는 거냐구?"

"네가 날 때릴 것 같아서."

계집이 나의 대답을 듣고는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돌린다.

"아저씨, 내가 그 정도로 밖에 안 보여?"

계집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이럴려구 한 게 아닌데. 무뚝뚝한 나는,

"...울지마..."

계집이 나를 째려보고는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을 떨군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말해 줄게! 말해 줄 테니까 그만 울어?"

마법처럼 계집이 뚝 그쳤다.

"말해 준다며? 말해줘."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사실...나...고래야..."

"......"

"나 고래라구!"

"내가 비밀 말해 달라고 했지. 거짓말 해라고 했어?"

"진짜 나 고래라니까."

계집이 내 이마에 손바닥을 댄다.

"열은 없는데, 왜 헛소리를 하지?"

나는 이마에 댄 계집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서서,

"말했으니까 됐지!"

"아저씨, 삐쳤어?"

"...아니..."

"아니긴 뭐가 아냐? 삐친 거 맞네."

돌아서서 가려는 나의 손목을 계집이 붙잡고서 앉힌다.

"비밀 말 안 해줘도 되니까, 그냥 내 옆에 있어줘. 아저씨 가고나면 나 또 무슨 짓 할 것 같애."

그렇게 계집과 나는 앉아있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바다가 푸르름을 드러낼 때까지.

해가 뜨기 전에 집으로 피신해야 하는데, 가녀린 계집의 손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서야 겨우 계집을 떼어 놓을 수 있었다.

 

민박집 안으로 들어서면 나는 또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 부엌 안 여기저기 뚜껑을 열어서 먹을 만한 것을 찾는다. 딱히 먹을 만한 것이 없다. 그래도 방에 들어가기 전에 뱃가죽을 채워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어둠이 다시 찾아오기 전에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나는 밥통을 열어 밥의 유무를 확인한다. 다행히 내가 먹고 남을 정도의 밥이 있다. 나는 피서객들이 사온 라면 박스를 티 안 나게 살짝 뜯어 라면 한 봉지를 꺼내려는 순간, 내 눈 앞에 계집이 보인다. 어떻게 들어 왔지?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너 거기서 뭐해?"

"아저씨는 뭐하는데?"

나는 잡고 있던 라면 봉지를 놓고 박스에서 살포시 손을 뺀다.

"아저씨, 라면 훔치는 거야?"

"...내가 뭘? 애가 생사람 잡네!"

당황한 얼굴로 말을 버벅대는 나를 보고 계집이 웃는다. 나는 부모님이 깰까봐 재빨리 계집의 입을 막는다.

“퉤, 퉤, 뭐하는 거야?”

조용! 조용! 제발 조용-!

참! 별 일이 다 있네. 계집이 여기 민박집 피서객이란다.

“아저씨, 달걀 좀 내줘. 집에 김치 있어? 달걀하고 김치 좀 내줘.”

여기가 자기 집도 아닌데, 내가 머슴도 아닌데, 왜 날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아저씨! 달걀하고 김치 빨리 안 주고 뭐해?”

계집이 무서운 눈으로 나를 째려본다.

“...아니! 달걀 몇 알 줘야할지 몰라서...”

기에 누린 걸까? 내가 왜 이런 대답을 하지?

“두 알 줘!”

 

라면이 이런 맛이었나? 주식처럼 매일 먹는 라면인데, 김치랑 달걀만 넣은 것 뿐인데, 이런 맛은 처음이다.

“맛있어?”

너무 맛 있어서 신경질이 났나. 나는 맛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고도 나는 라면을 허겁지겁 먹었다.

"맛없다며?"

내가 맛 있어서 먹는 줄 알아? 배고파서 그냥 먹는 거야. 내 대답이 들린 걸까? 계집이 웃는다. 계집이 내 머리를 쓰담는다.

"맛 있쩌? 그럼, 설거지는 아저씨가 해줘."

나는 여우한테 홀린 듯 군말 없이 설거지를 했다. 평소에는 밥만 먹고 부엌을 나왔는데, 내가 설거지를 하다니. 나조차도 나의 행동이 믿겨지지 않는다.

설거지를 다하고 방으로 가려는데,

"아저씨, 안 씻고 그냥 자?"

평소 나는 안 씻고 그냥 잔다. 여름철엔 모기떼 표적이 되기도 하지만, 많이 뜯기기도 하지만, 귀찮다. 씻고 자는 게 귀찮다. 그런데,

"아저씨가 먼저 씻어?"

샤워실 문이 닫히고, 나는 샤워를 한다.

"솨아-"

한창 샤워를 만끽하던 중에 스르르르 샤워실 문이 열린다. 문 앞에 계집이 나체로 서 있다. 옷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실체. 탐스러운 바디를 보니 그토록 내가 그리던 그녀가 분명하다. 나의 치부도 그녀가 맞다는 듯 기지개를 켠다. 그녀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샤워실로 들어와서 나를 꼭 껴안다. 그녀의 움직임은 나를 더욱 흥분시킨다.

 

요즘들어 부쩍 이른 새벽에 잠을 깨는 날이 많아졌다. 나의 치부가 기지개를 켜면 치부를 어루만지는 사나이는 어느새 짐승이 된다. 사나이가 치부를 어루만지는 날이 많아지듯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날이 많아지면 눈부시게 선명한 그림자가 내 귓가에 창의 커튼을 들려준다.

 

몽정인가. 빌어먹을. 눈이 뜨인다. 창 밖엔 빗소리로 요란하다. 딴 때라면 외출할 시간이지만, 장맛비로 인해 며칠을 방 안에만 있었더니 해괴한 꿈을 다 꾼다.

배가 고프다. 그리고 보니 하루종일 한 끼도 못 먹었다. 나는 나른한 몸을 겨우 일으켜 방을 나와서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다 샤워 소리를 듣는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누구지? 나는 샤워 소리를 따라 샤워실 안을 들여다본다. 꿈에서 본 바디다! 나의 치부는 즉각 반응을 보이지만, 나는 옷이야 젖든 말든 해수욕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실 나는 겁이 많다. 바디는 분명히 꿈에서 본 바디가 확실하지만, 내가 샤워실로 들어가더라도 꿈처럼 상황이 이뤄질 리가 없을 것이다.

 

요란한 빗물이 멈추니 파도가 잠잠해 졌다. 헤엄이나 쳐볼까. 옷도 다 젖었겠다. 에라, 모르겠다. 누가 볼세라 나는 급히 바다로 뛰어든다. 순간, 불현듯이, 나는 고래가 된다. 꿈인가? 물병인 내가 헤엄을 치다니. 더군다나 고래가 되어서. 꿈인가 보다. 꿈이 아니면 이럴 리가 없는데. 현실에선 아니 될 고래가 꿈에서라도 됐으니 나는 기분이 너무 좋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꿈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나는 이대로 헤엄쳐 가련다. 내 고향 태평양으로.

 

"속보입니다. 태평양에서 서식하는 고래가 포항 송도 해수욕장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