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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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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아이 따라가리


BY 권희정 2010-11-18

 이런일 들로 나의 마음은 점점 어두어 지고 병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와중 설상 가상으로 배속에 내아이는 사산이되고 난 방바닥을 기며         피를 쏟고 있어도 어느 누구도 내옆에는 없었다.

이번에 그는 도박이 아닌 술과 여자에 미쳐 있었다.

 

혼자서 이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 난 분명히 죄를 받고있음을 내스스로           인정했다. 인과응보 맞다. 난 그죄를 받는것이다.

내 남편이 내가 한짓을 그대로 하는거야 내스스로 나를 달래면서

참고 견디고 있었다.

남편을 용서해야한다. 내가 저지른 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을

나를 위안하면서 참고 아픔을 견디고 있을때 그는 모든것을 정리한듯

다시네게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이 되어서 돌아왔다.

정말 오랬만에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러면서 속으론 울고있었다.

이쯤에서 내죄를 그만 용서해달라고 지난 내죄를 용서하라고 난 어느 누구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하늘이 도와서 일까 남편은 좋은 직장을 구하고 그직장에서 인정 받아

부산 지사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몆주에 한번씩 올라와서 만나곤 했지만 너무 좋았다.

열심히 살아주는 내남편이 고맙기까지했다.

행복 이제 그행복이 네게로온것이다.

그동안 참고 기다렸던 보람이다.

꿈이 아니지, 정녕 꿈이아니기를 혼자서 빌고 또빌었다.

다 좋았다. 남편이 돈을 벌어오는것도 좋았고 열심히 능력있는 모습으로        일하는 것도 ...세상을 다 얻은것이다.                                                       그러나 그행복이 나에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을 받고 서울에온 그는 열심히 일하는듯 하더니       술 마시고 시비 끝에 다리가 부러지고 회사를 그만 두고 목발을 짚은 예전에

건달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또 다시 노름에 손을 대면서 우리의 생활은 엉망이 되가고 있었다.

차도 노름빛에 뺏기고 수많은 돈을 빛지면서 그러면서 또 그는 변했다.

꼭 반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큰 병이었다.

감당하기가 무서웠다.싸우고 또싸우고 그러다 지치고 이젠 나는 그런            내모습에 반 미치광 되었다.

그전에 내가 아니다.시어머니는 남자가 그럴수도 라는 말로 나를 미치게하고

먹을 쌀도없는 내게 생활비를 안주냐고 볶아채고 돈은 다뭐하냐고

어머님 아들이 돈을 안벌어요. 노름으로 빛이 너무많아요.

친정 식구에게 빌린돈도 수천만원이 넘어요

친정엄마 집담보에 마이너스통장에 오빠 회사월급에도 차업이 붙었단다.

카드론을 해준것이 안갚으니까 동생도 은행서 돈을 빌리고 친정 식구에게

그동안 내빛 갚는다고 남편이 모르는 빛이라고 내가 방황할때 진 빛이라고     이런 거짓말 저런 거짓말로 얼마나 몹쓸짓을 했던가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돈타령과 장남인데 아이는 왜 안낳고  아이가  없으니까 재가 저리 맘을 못잡고 밖으로 도는 것이라고 뭐든 다 내 잘못이란다.유산이되서 그아픔과 고통을 겪을때 어머님 와주세요 부탁하니  119 불러서 병원가라 ,그리고 퇴원할때까지 얼굴도 볼수없던 분이다.

호되게 벌 받고 있었다.

남편은 한번씩 태풍이 지나고 나면 잠시 조용했다.

그저 묵묵히 기원과 집을 오갈뿐

그런 와중에도 난 정말 노력 했다. 잘살아 볼꺼라고 잘 살고 싶었다.

마음을 어느 한곳에도 두지못하는 남편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려고 ,

무던히도 애를 썼다.

사랑 하고 있었다.

진정 힘든 병든 나를 감싸안았던 그를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 남편 이었다.이해해야지 용서 해야지 용서해야한다.

 

사랑이란 이름을 빌려서라도 모든것을 감싸 안아야한다.

그러고 싶었다.

남들이 봤을땐 더없이 다정한 부부였다. 위선이었는지도....

평상시 그는 너무도 따뜻한 내남편 이었다.

그러나 한번씩 도지는 도박과 여자 문제는 해결할 길이 없었다.

무서웠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그의 불치의병은 나만 무서운게 아니고         남편도 무서워했다. 그러나 그 불치의 도박은 고칠수가 없었다.

이제 포기하자를 수십번 포기할수밖에 없던 내자신이 미워서 마구때려주고     싶었지만, 감당 하기가 두려워 그를 버렸다.

아니 그가 배신을 한것이다.

마지막 그가 도박 빛으로 서해안으로 피신했을때 난 그많은 빛에 시달리고

감당하느냐 얼마나 고생을하고  내가족을 힘들게 했던가

그리고 모든것이 정리되고 이사를하고 그가 다시 돌아와 불과한달만에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도저히 감당도 용서도 이제 필요없다.

어떤 아픔도 견디었는데 옛말에 돌부처도 씨앗을 보면 돌아앉는다고             하지않았던가 자신이 없었다.

이혼하자며 엄포도 놓고 이혼만은 죽어도 안된다고 하면서도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내 스스로 난 정리했다.설령 외로움에 미치는 한이 있어도

그런 그를 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정리하자를 수십번 되뇌이면서 선뜻 고개를 들고 또 다른 하늘을 바라보기가

쉽지않았다.무서웠다 다시 혼자가 되는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두번째 동맥을 끊고 흐르는 피가 무서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순식간에 뇌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