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였으면.....
나는 전화기 앞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방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것일까?
애써 정신을 가다듬자 이제는 숨이 막혀 숨을 쉴수가 없다.
수화기에서 들리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
"응애에~~"
분명 낳은지 얼마안되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분하여 울음이 터져 나온다.
머리속에서 뒤죽박죽 엉켜있던 퍼즐들이 조각조각 맞춰져간다.
그동안 그의 아내가 아팠던건 내 탓이 아니라 입덧중이였던거구...
근간에 눈에 거슬릴만큼 칼퇴근에 술자리가 줄어들었던것도 배부른 그의 아내에대한배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던게 건강 악화가 아닌 출산...
무언가 요즘 그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껴서 낮에 그가 없는 집에 말없이 끊는 전화를 걸어보았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나는 담배를 연거푸 두대를 피우면서 심호흡을 길게 하고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나야. 왜?"
나는 좀처럼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게 그에 대한 최소한의 내 배려였다.그래서인지 그는 놀라며 받는다.
"진상씨!...."
"응.왜에~?"
"애기 돐은 언제야?"
"...."
그가 답을 못한다.
"애기 돐이 언제냐니까?아들이겠지?"
"으응..어떻게 알았어?"
나는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다.
연이어 울리는 전화벨소리...코드를 뽑아 버렸다.
왠지 모를 억울함에 나는 이불을 덮고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게 나의 처지였던가? 그가 내 남자가 아니라 남의 남자라는걸 새삼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대체 그에겐 나란 여자는 무엇이였을까?
나는 그란 존재를 앎으로 인해서 행복했고 설레였던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바람난 여자가 되어
내 아이들도 보지 못하고 집에서도 쫓겨나 숨어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게 그를 안 나의 죄값이라며 애써 나를 위로하며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고 그를 최대한 배려하면서
나는 그의 리모컨같은 여자가 되어서 그가 원하는데로 살고있다.
그러면 나를 알고난 뒤의 그는 왜? 아무런 댓가도 치르지 않은채 아무일 없는듯이 저렇듯
평화로운 가정을꾸리며 살고 있는 것일까?
입덧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하지 못할때 나는 내 죄인양 그를 위해 왕복으로 버스를 갈아타가며
그렇듯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것 같았다.
나는 장식용으로 두었던 양주를 잔도 없이 벌컥벌컥 두병을 마신것같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칠수가 없다. 그가 밉다.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아 그가 부산에서 온 모양이였다.
양주 네병을 비운채 내가 뻗어 있었다 한다.
무슨 생각이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그냥 이성을 잃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달려올줄 알았을까? 아님 바랬을까?
좀더 누워 있어야 된다는 의사의 당부도 만류하고 나는 링거 주사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원을 나섰다.
하늘이 무너진것같았다.
이제는....
그를 그의 아내에게 보내야하나 보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아무말이 없었다.
밖은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나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를 따라 내리려는 그를 나는 만류했다.
"오늘은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더이상 어리석은짓 않을테니까.그냥집으로 가세요."
"들어가서 내 얘기좀 들어봐."
"다음에..이 다음에..나도 머리속을 정리 좀하고..다음에 얘기해요.
오늘은 많이 늦었으니 그냥 돌아가고 나중에 얘기해요.전화 할께요."
뭐라고 답을 하는 그를 무시하고 차문을 닫아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불도 켜지 않은채 나는 그대로 방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이 코딱지만한 방안이 이렇게 넓어보인적이 없었다.
가을이라 약간 기온이 쌀쌀하긴 했지만 추운 정도는 아니였는데 나는 오늘 얼음창고에
벌거벗고 앉아 있는듯 한기를 느낀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린것같다. 장사고 뭐고....그냥 이대로...
달빛이 방안의 어둠을 조금은 밝혀준다.
나는 소리죽여 울면서 그대로 방바닥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나를 흔들어 깨운다.그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를 깨우고 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그도 같이 흐느껴운다.
정신을 차려본다.그는 내가 걱정이되어 돌아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다 죽을 사들고 돌아왔다.
냉정을 찾았다. 애써 정신을 차려본다.
"진상씨 !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봐요.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
"당신도 그동안 내게 최선을 다 했어요.근데 이제 내가 자신이 없어요."
"...."
"당신 만나 행복했었고,사랑도 알았고,인내도 배웠고...이제사 어른이 된것 같아요."
"..."
"당신없이 내가 어찌 살지 나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이러고 살순없잖아요."
"희야! 영희야!...할말이 없다.진작 얘기못해 미안해.말을 할수가 없었어."
"이해해요. 그랬을거예요. 근데 여기까지만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개숙여 한숨만 쉬는 그를 바라보니 측은한 생각마저들었다.
이사람은 무슨 죄야?
여자하나 잘못만나 그동안 두집 살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기 땜에 쫓겨난것같은 책임감에 그도 내게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원망 안해.지금껏 해준것만으로도 감사해.더는 내가 힘들것같아.인제 당신 놔줄려고.."
말없이 대답대신 그는 나를 힘껏 안았다.
"나도 그동안 당신이 유부남이라는것 때문에 투정한번 못부리고 애만 탔어.나도 그만 정신차리고
얼른 돈 벌어서 우리 애들 데려와야지, 자기도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가서 애들 아빠로,남편으로
그동안 소홀했던것,최선을 다해서 보충하며 행복하게 살아요."
"니가 나라면 그럴수있어?"
"그럼.어떡할건데? 언제가는 올날이 빨리 왔다 생각해요.당신도 늘 생각했을것 아냐?"
"그건 니 말이 맞는데 이렇게 준비없이..불쑥 이렇게 일방적으로...?"
담담하던 내가 또 서서히 흥분되기 시작했다.
"흥! 준비없이...말은 잘하네..욕심도 많네.아들까지 낳을때는 뭔 마음인데? 나는 뭐고,애엄마는 뭔데?"
내 말투가 거칠어지자 그는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이런식이면 끝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내게 억지로 죽을 먹이며 오늘은 생각없이 푹 쉬고 우리문제는 내몸이 추스려지면 다시 생각하자며
나를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자며 나도 일단은 그를 돌려보내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면서 그를 안심시키고 그의 등을 떠다 밀다시피 그를 보냈다.
그를 보낸후 깊은 생각에 빠져보았다.
그로서는 당연한일에 나는 왜이리 배신감에 치를 떠는지...
나는 이미 낮에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그와의이별을 시작한것같다.
그가 내곁을 떠남이 아닌 내가 그를 보내주기로 마음을 굳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