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허주사의 집. 저녁.
평범한 시골 농가. 집은 수리를 하고 페인트도 새로 칠해서 주위의 다른 집보다 깔끔해 보인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허주사.
집에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를 바라보는 노모가 허주사를 맞는다.
용암댁: 이제 오시는가? 저녁은?
허주사: 먹어야죠.
용암댁: (부엌으로 들어가며)어서 씻고 들어오게. 찌개 데펴서 들어갈테니..
허주사: (셔츠를 벗으며) 네
허주사 마당의 수도에서 세수하고 발 씻고 방으로 들어간다.
S#2. 방안.
방안은 노인네 살림이라고 하기엔 깔끔한 인상이다.
허주사 옷 갈아입고 방안에 앉는다.
잠시 후 용암댁이 밥상을 차려들고 들어온다.
허주사 일어나 용암댁의 밥상을 받는다.
용암댁 : 저녁이 늦어서 시장하겠네. (밥을 한숟가락 떠서 먹는다..) 오늘은 뭐 또 고쳐주다 늦은거야?
허주사: 네. 용식이 아버님이 막 퇴근하는데 양수기가 안 된다고 하셔서요. 가서 봐드리고 왔어요.(찌개 한 수저 떠먹는다)
용암댁: (얼굴에 심술이 가득 피어오르며) 아니. 우체국이 농기계 고쳐 주는 곳도 아니고, 그 영감탱이가 왜 자꾸 그걸 들고 우체국으로 가는 거야!! (용암댁이 성이 단단히 난 얼굴로 궁시렁 거린다.)
허주사:(난처한듯 말을 더듬는다)아니, 어머니 그게 아니고, 그거 하려면 읍내가면 하루를 다 허비하니까.. 또 그 무거운 것을 들고 나이드신분이 나가기도 힘들고 하니까.... 또 제가 그것을 할 줄도 알고... 또... 기구도 있고 하니까 부탁하시는 거죠.. 뭘 그걸 그리 역정을 내세요.
용암댁: (버럭) 아니 그렇게 남의 일 다 봐주면 언제 장가 갈 거야? 나이 삼십이 넘어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킨다. 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아니 .. 네가 직장이 모자라니.. 그렇다고 어디 팔다리하나 없길 하니 남만큼 배우질 못했니? 전답 팔아서 고등학교. 그것도 춘천까지 내보내서 공부가리 켰더니. 아니 나이 서른이 넘도록 왜 장가를 못가는 거야.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저.. 옆집의 용식이도 조기 삼용이도, 저 아래에 한승이도 다 장가를 가서 지금 애아범이 됐는데, 도대체 넌 왜 못가는 거야..뭐가 모자라서. 아..내가 낼모레면 칠십인데, 며느리밥 받아먹어야지 아들 녀석 밥해주게 됐어?
용암댁의 푸념이 계속 늘어진다. 허주사는 먹던 밥숟가락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밖으로 나간다.
S#3. 동네어귀의 점포 앞
앞에는 평상위에서 두명의 남자가 김치안주에 소주를 먹고 있다. 저만치서 허주사 걸어온다.
허주사: 여기서 한잔들 하고 있는거야? (평상에 앉는다.)
허주사: (가게안쪽을 향해서 소리 지른다) 아주머니 여기도 사발하나 주세요. (용식이를 향해) 근데 니가 여긴 이 시간에 왜 있는거야?
가게 아주머니 젓가락과 사발 하나를 들고나와 용식에게 준다.
용식:(아주머니가 가져다주는 사발을 받아 허주사에게 건내고 술을 한잔 따른다)집에 있으니 심심해서 나왔지.
한승: 나두. 해는 긴데 할 일이 없어서 한잔 하고 들어가 잘라고. 집에 일찍 들어가봤자. 새끼 빽빽울고. 마누가 닥닥거리고... (술 한모금 마시고 허주사를 보며) 그런데 넌?
허주사: 나....(허주사 술을 한모금 마신다) 어머니 성화에... 장가 못 간다고 푸념 시작하시면 한참 하시거든. 그래서 바람이나 쐬고 어머니 좀 누구러 지면 갈라고.
한승:(끄덕이며) 아아.... 정말 너네 어머니 성미에 가만 계시면 이상하거지. 너를 세상에 없는 둘도 없는 아들이라고 그렇게 키우셨으니 말이다. 좀 유난 하게 키우셨어야지. 우리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춘천으로 유학까지 소 팔고 땅 팔아서 보내셨는데... 청상과부로 삼십년을 너 하나만 보고 사셨는데. 이젠 장가가서 손주 안겨드릴 나이도 지났지.
허주사: (한숨석인 목소리로)그러니 말이다. 내가 장가가기 싫어서 안가는 것도 아니고.(긴 한숨을 쉬며 다시 술 한 잔을 마시고 손가락으로 김치를 집어먹는다)
용식: 근데.. 왜 선만 보면 퇴짜를 맞는 거야? 아니 말을 삐뚤어져도 입은 똑바로 하랬다고 니가 우리보다 직업도 훨씬 좋고 배운 것도 우리보다 많고 그런데 말이야.
허주사: (난감한듯 다시 술을 한잔 한다.)
한승: (용식에게 핀잔을 주며)야 임마. 왜 사람 아픈데 건드려? 알면서.
용식: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까지 으슥하며)뭔데 난 정말 몰라.
한승:(허주사의 눈치를 보며)저 말이야 야가....(허주사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여자 앞에만 가면 말을 못하잖아.. 땀만 뻘뻘 흘리고.. (다시 허주사 눈치를 흘긋 보고)그러니 여자가 반벙어린 줄 알고 다 퇴짜 놓는 거지.
용식:(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주사를 바라본다)야....너.. 그거 정말이야? 야!!!너..(손자락으로 허주사 가르키며) 이렇게 말 잘하는 녀석이?(이해할 수 없다는 듯 허주사와 한승을 번갈아본다)
한승: (신이 난 듯)아 말도 마.. 땀이 얼마나 비 오듯 하는지.. 거기다 떨기는 무슨 사시나무 떨듯 떠는지. 커피를 타는데 설탕을 떠서 커피 잔 까지 가지고 오지도 못하고... 거기다 말을 못해서 저저저저.... 저저... 그것만 한시간을 하니.. 내가 봐도 없던 정도 뚝 떨어지겠더라..
허주사:( 아무 말 없이 그냥 묵묵히 술만 마신다.)
용식,한승:(허주사 눈치만 살피며 서로 눈치만 주고받는다.)
뒤에서 부채질하던 가게주인이 끼어든다.
가게아주머니: (평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허주사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허주사. 내 중신 한번설까?
술마시던 세사람 모두 고개를 들고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가게아주머니 : 중신 잘 서면 옷 한 벌이라는데.. 어때 한번 볼라나? 잘되면 나 읍내에 서라벌의상실에서 옷한벌만 해주면 되.. 거기 솜씨가 좋더라고, 옷이 아주 이쁘게 나와.
한승: 중신 잘못서면 뺨이 석대란 말도 있수.. 지금 우리 하는 말 듣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가게 아주머니 :(한승말은 무시하고 계속 허주사에게) 저기 북방 사는 내 당숙네 딸래민데.. 애가 어찌나 참한지... 어려서 어머니 잃고 혼자 그 큰 살림을 다 살았다는거 아니야.. 혼기가 좀 지났긴 한데... 어디 모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애가 너무 조신해. 너무참해.. (허주사에게 얼굴을 바짝들이대고)어때 생각있수?
허주사:(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군다) 그냥 성의만 고맙게 받을게요.
아주머니:(허주사옆으로 바짝 다가 앉는다)아니 내 지금 곁귀로 들었는데 말이야. 이 아가씨도 말이야. 자네하고 똑같은 병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때.. 한번 만나나 보지 않겠나? 아 혹시 알아 서로 인연인데 못 만나서 혼기 놓치고 그러고 있는건지? 어때 한번 봐 볼라나??
아주머니와 용식, 한승이 선을보라 부추기고 허주사는 싫지 않지만 난처한 표정을 짖는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흐드러진다.
fade out
S#4. 홍천읍내 다방 안.
조용필의 허공이 흐른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허주사와 양단 한복을 곱게 입은 용암댁이 앉아있다.
허주사는 뭐처럼 입은 양복이 어색한듯 자꾸 옷을 만지작하고 있다.
용암댁:(아들의 옷매무새를 만지며) 뉘기집 아들이 이리 잘생겼나... 어디 보자..
허주사:(그냥 보리차만 마신다)
용암댁: 너는 아무말도 안해도 된다. 이 엄마가 다 할테니.. 그냥 크게 숨쉬고 가만 앉아있거라.
그때 다방문이 열리며 가게 아주머니가 수선스럽게 들어서고 그뒤로 한 여자와 지팡이들고 두루마기 입은 영감님이 들어선다. 여자는 연한 녹색에 점박이 원피스를 입었고 긴 머리를 곱게 빗어서 뒤에 핀을 꼽았다. 여자는 수줍어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게 아주머니에게 거의 끌려 들어오다 시피 한다.
가게아주머니: (용암댁을 발견하고 앞으로 오며) 아이고 미안해요 성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 글쎄 미용실 다녀오느라고 늦었어요. 그래도 이쁘게 봐주쇼.. 큰애기가... 시어머니자리 보러 나오는데 이쁘게 해야 한다고 해서요..(수선스럽게 들어서더니 여자와 영감님을 안쪽으로 앉히고 자기는 옆에 의자를 끌어다 테이블 머리에 앉는다)
용암댁, 허주사:(일어서서 목례를 하고 여자와 영감이 앉자 자리에 앉았다.)
가게 아주머니:(다방 주인에게)여기 맛난 것 좀 가져다 주셔..(다시 고쳐앉으며)여기 어르신이시 아버님이시고요. 야가 요 금방 터질 것 같은 꽃 같은 야가 바로 영희구만요. 그리고 여기 우리 용암댁 형님. 그리고 여기가 신랑자리인데 인물 훤하지요.. 그리고 어르신. 신랑자리가 아주 엘리트여요. 고등학교를 춘천서 나왔어요. 그리고 지금 우체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에요. (용암댁을 보고)어때요.. 성님. 큰애기가 참... 참하게 생겼지요.. 아주 손끝은 얼마나 매운지.. 성님. 요 손좀 보소(영희 손을 잡아 올린다. 영희는 부끄러운 듯 뒤로 빼려한다.)요요 손이 얼마나 야무지게 생겼는가?
용암댁과 영감님은 서로 목례를 주고받는데. 허주사는 얼굴이 벌게지다 못해서 새까매지고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있다.
영희도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 온몸을 얼마나 사시나무 떨듯 하고 있다.
종업원이 차를 가져와 놓고 간다.
용암댁, 어르신, 가게아주머니 모두 설탕을 떠서 차에 넣는다.
허주사와 영희는 그저 달달 떨고만 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영희가 달달 떠는 울림이 소파와 테이블까지 전달되고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찻잔이 달그락 소리가 난다.
가게 아주머니:(좀 놀라는 표정으로)아니 저 이 선남선녀가 만나니, 서로 부끄러워서 이런가부네요. 우리 이 늙은이들은 자리를 좀 피해 주는 게 나을 것 같네요.(일어나자는 손짓을 한다.)
가게 아주머니 혼자 일어나 가자고 손짓을 하지만 어르신도 용암댁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용암댁: (천천히 그러나 굳은 목소리로) 그 집 큰애기가 무슨 병이 있어서 저런 것 아닌 것 알고 있습니다.,(영희와 어르신을 한 번씩 쳐다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어르신도 우리 아가 싫지 않으시면 우리 여기서 날 잡고 가십시다.
모두 눈이 동그라져서 놀란 표정으로 용암댁을 쳐다본다.
용암댁: 우리 야도 병이 있어서 이런 것 아니고 심성은 비단결 보다 고운데, 사람이 좀 모질라서 요렇게 아가씨들 앞에만 있으면 저래 서푼짜리도 못됩니다. (보리차 한잔을 단숨에 마시고) 어르신 따님도 심성 고와보이고 참해 보이는데, 우리 서푼도 못되는 아들하고 ... 한번 우리 서푼짜리끼리 연을 한번 만들어 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멀쩡해서 아직 시집장가 못가고 있다가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이리 만났으니 이것도 인연도 아주 대단한 인연인가 싶습니다만.
영감님: 아.. 거 안사둔 성격한번 시원시원하십니다.(호탕하게 웃으며) 그려.. 안그래도 저게 어려서 지 어미 잃고 애비 손에 자라서 쑥맥이라 혼기가 넘도록 저러고 있으니 제가 죽어서도 마누라 볼 낯이 없었는데. 사둔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
어르신, 용암댁, 가게아주머니는 열심히 이야기 하는 모습과 영희과 허주사의 땀 뻘뻘흘리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fade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