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이 말을 걸어 왔다.
아이들을 몇 시에 데리러 가면 좋겠냐고 물었다.
피아노 끝나면 5시 30분쯤 될 거예요.
그때쯤이면 괜찮을 거예요.
알았어.
회사일로 집을 비우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전 남편에게 맡기게 되었다.
큰애에게 어제 이 일을 말하니, 입이 삐죽이 나온다. 둘째는 좋단다.
아직 어려서 지금 엄마 아빠의 상황을 뭐라 딱 뿌러지게 말할 수는 없는 듯 하지만
이제는 사실을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엄마가 말했다.
서양인들처럼 쿨하게 사는구나. 서로 못 잡아먹듯이 하지 않고
왕래가 잦은 걸 보니.
그러게 말이다. 외국에서는 아이들 때문에 옆 동네에 살기도 한다는데
이 정도야 못하겠냐 싶다.
가슴에 못한 말을 가득 쌓아둔 채, 누구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그냥 어서 이 상황이 지나기를 바라며 얼굴엔 함박 웃음을 짓는다.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의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리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요즘 흔한 일이 되었다지만, 신문, 텔레비전, 잡지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들으며
나도 모르게 움츠려드는 건 아직 견뎌야 할 부분이 남았다는 뜻일게다.
확실히 모든 것이 결정된 후 행동에 제약이 생긴 것같다.
회사에서도 친구와 말을 할 때도, 그래서 그랬겠지, 이런 말을 들을까봐 조심해지는 것같다.
그건 아니라고, 모조리 내 잘못도 내 책임도 아닌데 이렇게 되는 게 정말 싫다.
내가 자신을 필요 이상 낮춰야 할 대상은 부모님과 아이들 앞에서만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상하다보면 더 심한 고통을 예측하기도 하는데
지금이 딱 그 시점인 것 같다.
그냥 이겨내야 겠다.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