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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하고 해 뜰 날?


BY 꿈을 이루다. 2008-10-04

따스한 햇살이 반가운 계절이다. 가을은...

창이 문안으로 햇살을 가득 담아 방안으로 뿌려놓았다.

집안의 먼지들이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놈의 먼지들은 도대체 어디서 이리들 나오는 거야?”

치우고 닦아도 줄어들지 않는 그것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생겨나는

지독한 시련의 파편과도 같았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들이 무수히도 많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까지...

갑자기 숨도 쉬고 싶지 않을 만큼 답답했다.

집안의 먼지를 모조리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사 들어오며 도배와 장판이 그래도 깨끗해서 돈 굳혔다는 심정으로 좋아하며 산 날이 벌써 6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사이 누렇게 변색되고 군데군데 얼룩진 벽지와 보일러 배관이 세는 바람에

몇 번에 공사를 했던 방바닥을 덮고 있는 장판들은 여기저기 찢기어 노란테이프를

반창고처럼 붙이고 있었다.

세나는 한번씩 감기를 앓듯 이런 모든 것들을 새로 바꾸고 싶은 충동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말기를 되풀이 하곤 했다.

내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제 이사를 가게 될지도 모르는 곳에 돈을 붙이고 바를

수는 없었다.

내 집... 세나도 내 집을 갖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부업도 했고 특기를 살려서 일도 해봤고 가까운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멀리까지 발품 팔아가며 몇 백원을 아끼자고 시장까지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굳건히 마음먹고 적금 들기도 여러 번, 주변에서 짭짤하게 들어오는 수입도

괜찮았다. 하지만 늘 1년을 견디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기사 월급 줘야 하는데... 어찌 해봐...’ ‘물건 값을 선불로 주지 않으면 요즘 누가

물건 주지도 않아. 며칠 쓰고 줄 테니까 있는 것 좀 줘봐...‘ 순남의 애걸복걸에

세나는 매번 넘어가 주곤 했었다.

매몰차지 못했던 세나를 지켜봤던 주변에선 남편 버릇을

잘못 들여놨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리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섭섭함에 변명처럼 말을 이어받던 것도 줄여버리고 그저 ‘그러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그들의 말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울며 겨자 먹기로 순응해야 함을... 말로는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니까... 자신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먹지 못할 상황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말하기도 귀찮았다.

배관이나 설비업의 일을 하며 수리부터 신축까지 공사판을 누비는 순남은 처음부터 그랬다. 자신이 하는 일의 임금은 일을 모두 마쳤을 때야 받을 수 있었고 자신이 물건을 가져다 쓰는 자재상엔 선불결재를 해야 한다고. 그렇기에 일을 하기 위해선 늘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을 마무리 짓곤 수금을 못해서 전전긍긍 했다. 그나마

어렵게 수금이 된다 하더라도 금액을 깎기기 일쑤였다. 거기다 간간히 상대방의 부도를 명목으로 뜯기기도 했다. 그런 식의 삶이 되풀이 되었다.

순남은 때마다 술에 쩔어 세상을 욕했다.

어느 땐 세나를 세상에서 제일가는 갑부를 만들어 줄 것 같은 희망찬 말을 했다가도 며칠 지나지 않아서 부도나서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는 절망적인 말을 뱉어내기 일쑤였다. 신도 아닌 순남이 세치도 안되는 혀로 세나를 천당도 보내주고 지옥도 보내줬지만 천당보다 지옥 속을 헤매게 할 때의 비중이 훨씬 많았다.

반대에 무릅쓴 결혼이었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세나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다.

그렇기에 쉽게 물러 날 수 없었고 남편의 동반자로 함께 갈 수 밖에 없었다.

조언도 했고 충고도 했고 달래고 엄포까지... 음식의 조미료처럼 남편의

뒤를 따라가며 세나 나름대로 적절히 상황에 따른 말들을 해줬지만 끝내 잔소리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일하고 돈 한번 받을 때마다 똥줄이 타는 남편이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이 수금하러

다니겠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순남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남자 얼굴에 똥칠을 해라’는 식의 개도 안 물어 갈 자존심을 운운했다.

10년이 넘도록 발등에 스스로 도끼질을 할지언정 남편 순남의 부탁은 어쩌든지

들어주려고 무던히도 힘들게 이리저리 뛰어다녔건만...

곧 돼. 곧 된다구... 곧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세나는 알았다. 하지만 뭔가 해보겠다고 노력해도 안되는 순남을 자신 말고도 아무도 뒷받침 해줄 사람이 없었다. 어쨌든 남편이라고 살고 있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신도 사람인데... 생각이 없겠어? 미안해서도 정신 차리겠지... 처자식이 이렇게 고생하며 곁에서 있어주는데... 악바리 근성이 언젠가는 나오겠지...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다면서..’ 이번만...이번만... 세나는 늘 스스로를 의로하고 격려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쨍하고 해 뜰 돌아온단다...>라는 말이 자신들에게도 주어질 거라며... 하지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었다.

힘들게 견뎌내던 일들이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랐고 끝도 없을 거라는 것에

암담함에 절망하던 어느 날부터 남편의 어떤 한 말에도 세나는 응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