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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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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BY 헬레네 2008-12-15

의사선생님이 내얼굴을 보시더니 수술을 네번정도에 나누어서 해야 하는데

6개월에 한번씩 2년에 걸쳐서 하던지 아니면 한달에 한번씩 하던지 본인이

생각해서 결정을 하라면서 한번수술에 입원기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

 

마음이 급했고 한가로이 6개월에 한번씩 2년동안 할입장이 아니었고 한달에 한번씩

나누어서 한다해도 거리상 그렇게 왔다 갔다 할 처지가 못됐다 .

일주일에 한번씩 수술부위를 늘려서 세번에 모두 끝내 주시면 안되겠느냐고 말씀 드렸더니

한번에 10cm 이상은 환자나 의사가 모두 힘들다며 서로가 무리라고 하시더니 견딜수

있겠냐며 물어보셨다 . 아픔을 참는것은 어느정도 익숙 했던지라 해주시기만 하시면

 참아 내겠다고 했고 입원 날짜와 수술 날짜가 잡혔다 .

 

사고당시 응급실에서 대충대충 꿰메놓은 것이 벌겋게 툭툭 튀어나와서 아물은지라

마취를해서 잘라낸뒤에 삮바느질 하듯이 촘촘히 꿰메는 것인데 얼마나 촘촘히 꿰메냐가 

흉터를 최소화 할수 있다고한다 . 차라리 전신마취면 좋을뻔했다 .

얼굴피부만  마취를 시켜놓고 장정 한명이 머리를 손으로 누르고 대략 3시간이나 길게는

4시간 까지도 그대로 있다보면 머리밑이 먹먹해 지고 고개가 뻣뻣해서 수술부위의 아픔보다

그것이 더 힘들었다 . 때론 첫사랑 얘기에 학창시절 얘기도 하고 음악도 따라 부르는등

여유로운것이 목숨하고 관계가 없는 수술이다 보니 의사나 간호사 모두가 마음편한

수술인데 비해 나는 고통의 연속 이었다 .

마지막 수술날 의사선생이 중간에 아프다고 도망을 가던가 다음에 다시 하자고 할줄

알았는데 독하게 다하는걸 보니 최씨가 맞긴 맞나보다며 웃었다 .

 

수술을 하기전엔 꼭 수술부위를 볼펜 같은걸로 표시 해두고 10여분 가량을  사진을찍고

비디오를 촬영했다 . 아마도 개업을 준비하는 것일꺼라 짐작을했다 .

내게 " 태백은 광산촌이지요 ? " 하길레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석탄에 찍혀나오는 수석이

그렇게 좋은게 많다는데 구해줄수 있겠냐고 물어왔고 나는 잘모르지만 구해보겠다고

대답했다 . 엄마에게 전화해서 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있긴한데 구할수 있을라나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

 

6인실에선 갑상선을 앓는 아줌마와 축농증을 수술하러온 아가씨 신장이 안좋다는 아줌마

등이 있었는데 여자들 이란게 남편에 대한 얘기를 수시로 하는법인데 나는 할말이 없어서

안했을 뿐인데 그게 궁금 했는지 자꾸 말을붙여왔다 .

 

입원하고 한달이 돼갈무렵 어느날 그인간이 찾아왔다 .

다른 사람과 대화도중 이었고 미리 연락도없이 쑥 들어선 그 인간을 그냥 쳐다만봤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날 저녁에 시비를 걸기시작했다 .

병실에 찾아온 자기를 내가 반기지않고 무시했단다 .

그리고 다른 사람들 한테 혹시 내가 없다고  했었냐고 따졌다 .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내가 화장실에 간뒤에 아이를 보고

 니네 아빠냐고 물었고 자기 한테는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는데 그 느낌이 별로 안좋았단다 .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남편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었고 다른 환자에 비해 남편이 병실에

들락 거리질 않아서 궁금 했었나본데 그사람들이 궁금해 한것까지 내가 알바 는 아니지 않냐고

하자 니가 뭔가 나에대해 안좋게 얘기한것 아니냐는 억측을 부리더니 기어이 한방이 날라왔다 .

하필 마지막으로 수술한 턱을 맞았고 실밥을 뽑은지 얼마안된 수술 부위가 터지면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 집을 튀쳐나가 엄마네 집으로 달려갔다 .

엄마는 화가나서 분노를 삭이지 못해했고 나는 그냥 여기서 데리러 올때까지 있겠다고 했다 .

 

일주일 만에 다시 오라는 병원을 석탄돌에 들국화꽃이 선명하게 새겨져서 반짝이는 이쁜 돌과

섬씽 스폐살 한병을 들고 다시 갔다 .

의사 선생은 힐끗 쳐다 보더니 무심히 " 그냥 석탄돌이네 ? " 한다 나름대로 이사람 저사람 한테

부탁해서 어렵게 구한것인데 설령 맘에 안들었어도 그렇지 그렇게 성의없이 말을했다 .

" 이거 구해 달란거 아니었어요 ? " 했더니 " 그냥 거기다 둬 " 하고 반말을 했다 .

많아야 나보다 다섯살 위일까 싶은데 ,,,,,,,,,, 내딴에는 양주랍시고 사간술도 한번 힐끗쳐다

보더니 반응이 없었다 . 또다시 사진을 찍더니 6개월후에 다시 오란다 .

" 왜요 그때는 치료 할것도 없잖아요"  했더니 사진을 찍으러 오란다 .

누굴 바보로 아나 ? 처음부터 나처럼 많이 찢어진 사람은 흔하지 않다며 자기 입으로 얘기

했었으면서 어렵게 구해간 돌과 술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하고선 사진을 찍어주러

그먼길을 그 비싼 차비를 들여서 또오란다 .

 

설령 맘에 안들더라도 구해간 사람의 성의를 봐서 고맙다고 한마디만 했었으면 기꺼이 사진

촬영에 협조 했었을 것인데 광산촌에서 왔다고 사람을 무시하고 하대해 놓고 이제와서 사진

촬영을 하러오란다 . 당근 안갔다 .  4번이나 촬영한 그필름은 무용지물이 되었을것이다 .

 

내예상대로 그의사는 개업을해서 시청앞의 조 **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나름 성공한 개업의가 됐다 .

지금 생각해보니 돌은 그렇다 치고 술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

고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드셨다는 시바스 라던가 황태자 누가 마셨었다는 *** 정도는 됐어야지

섬씽 스폐살이라니 ,,,,,,,,,,,,,,,,,,,,,,,,

 

지금도 턱밑은 가장 지저분하게 남아 있지만 남들은 잘 모를 정도로 희미해 졌다 .

 아픔도 희미해지고 마음도 희미해진 덕에 이렇듯 지난일을 읇어댈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