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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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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있을까 ?


BY 헬레네 2008-11-10

어두워진 경춘가도를 달린다 .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새는듯이 질질 눈물이 흐르고

어둡고 흐린 시야처럼 내 인생도 흐리다 .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안개속을 헤메이지만 내일 , 또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내가 미련하다 못해 바보 같다 .

 

남편은  낮설고 살풍경한 모습의 정신신경과 폐쇠병동 에서도 이내 적응을

한것인지 아니 , 아무 생각이 없는것인지 ,,,,,,,, 십분 정도의 짧은 면담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죽음처럼 깊은잠에 빠져있다 .

병동 간호사 선생에게 입원수칙 , 입원동기 , 주의사항 등을 전달받고 남편의

병실로 돌아와 보니 세상 걱정없는 모습으로 자고있다 .

 

며칠전 아는이의 생일에 초대받아 함께가서 감자탕을 먹고와서 이틀후에

" 그집 감자탕 진짜 맛있었지 " 했더니 " 무슨 갑자탕을 먹었다는 거야 " 한다 .

 설명을 했는데도 절대로 자기는 간적도 , 먹은적도 없고 ,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단다 .

내가 큰 소리로 누구 , 누구 갔었잖아 했더니 슬며시 하는말 " 그러니까 병원에 있잖아 " 한다 .

메모리 장애가 심하다는걸 자기도 인정한다 .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47년을 깡그리 잊고 싶은건 아닐까 ?

 

지지리도 없는 집안의 육남매의 맏이 ,,,,,,,,,,,,

스물한살에 아버지가 돌아 가시며 마지막 으로 남긴 유언은 " 동생들 밥굶기지 마라 " 였단다 .

어려서 부터 쌀가게 배달일과 버스회사 정비일을 하며 틈틈이 배운 운전기술로 공사현장을

전전할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동생들을 굶기면 안될것이란 무게감이 자신을 짓누르며

살아 왔었다고  말했었다 .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 했건만 잘한것보단 못한것이 , 못난것이 더 부각되는 지금의 현실이

피하고 싶고 잊고 싶은건 아닐까 ?

나는 큰아들이 벌어다 줘서 먹고 살았으니 결혼을 해서도 큰아들에게 생활비를 받아써야 겠다며

처음부터 너무도 당당히 요구하는 55세의 젊은 시어머니를  나는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였었다 .

월급의 5분의 1을 매달 공과금처럼 갖다 바쳤고 그외의 소소한 것들도 맏이의 몫이었다 .

그무렵엔  내가 시댁에 가면 어머니나 동생들이 우리 두내외라면 껌벅 죽을 정도로 잘했다 .

 

그러던 남편이 3년 정도 하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집안에 들어 앉아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

내가 잡아먹을듯이 들볶아도 꿈쩍을 안하고 놀고 먹더니 집에 돈이란 돈은 씨가 마르고 나서

교통사고가 났다 . 일주일만에 의식이 돌아오고 몸으로 때우겠다는 가해자에게서 겨우 병원비만

받고 집으로 돌아와 자비를 들여서 검사한 MRI에서 뇌동정맥 기형이 밝혀졌고 터지면 사망이란

병원측의 진단에 전세집을 빼서 특진을걸고 수술을 해야했다 .

시댁에 생활비를 못주기 시작하면서 부터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바로 아랫동서에게 " 형님 똥구녕도 못쫒아 간다느니 , 그 반만하라느니 " 하며 함부로 말하던

시어머니가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 태도를 바꿨다 .

뇌출혈에 뇌수술까지 하고 마누라가 식당을 해서 근근이 먹고 사는 큰아들 보다야 경찰 공무원인

둘째 아들이 믿음직 했을 테고 있는듯 없는듯 나서지 않고 있다가 술이나 한잔 거나해지면

머리도 ,꼬리도 없는 말을 횡설수설 해대는 큰아들 보다야 나서기 좋아하고 뭐든 다 해줄것 같은

( 말로는 조선이 먹고도 남는다 ) 둘째 아들이 더 믿음직 했을 것이다 .

 

3년여를 시댁에 발걸음을 안하다가 식당을 해서 번돈으로 아파트 한채를 사고 시어머니의

환갑이 다가왔다 . 뇌수술 이후에 통원치료를 2년을 거쳐서 모든것에서 정상이란 판정을 받고

시내버스 기사로 취업을했다 .

97년 첫월급 103만원을 3만원은 내가쓰고 백만원은 시댁에 갖다줬다 . 어머니 환갑에 쓰시라고

환갑날 저녁,,,, 식당일을 마치고간 나를 붙들고 우시며 " 에미야 미안하다 내가 뭔지는 모르지만

많이 잘못한거 같다 니가 이해해라 ' 하시기에 " 자식이 부모한테 미안하단 소릴들으니 기분이

좋지않네요 저도 잊을거니깐 어머니도 잊으세요 " 했다 .

 

그리고 몇년이 지난 2003년 설날 또 다시 사단이 벌어졌다 .

내가 노력을 제일 많이한 며느리란것은 생각지 않고 내가 제일 잘산다고만 생각했는지 나만보면

" 이젠 니가 날 먹여살려라 " 하신다 " 그래요 저희집으로 가세요 어머니 한사람이야 못먹여

 살리겠어요 " 했더니 " 아니고  , 나여기 앉혀놓고 먹여 살리면 안되겠니 "하신다 .

오래된 구옥이 한채있었다 . 내참 어이가 없다 .

우리딸이 4,5살때 식당을 할때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보면 아무데서나  씻지도 못하고

자는것이  불쌍해서 우리집에와서 애좀봐달라고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

그것도 매일이 아니고 일주일에 세번 에비가 늦게 끝나는 날만 봐주시면 돈을 좀 드리겠다고

했는데도 단박에 거절당했었다 . 그래놓고 이제와서 니가 맏이니까 니가 책임지란다 .

" 제가 우리집에서 모시는것은 맏이로서 당연 하지만 따로 사시는 생활비를 저혼자 감당

할수는 없으니 다른형제들과 의논해서 공동부담으로 해볼께요 " 했던게 발단이 돼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종당엔 내게 벼락맞을 소리란 얘기까지 나왔다 .

내참 어이가 없어서 ,,,,,,,,,,제일 잘 산다는것도 어머님 기준이다 .

기껏 1억도 안나가는 아파트 한채가 달랑이고 버스기사의 당시월급 150만원이 수입의 전부인데

당신 생활비를 전액 부담하라는건 내가 전공을 살려 식당 일이라도 해서 달라는것밖엔 안된다 .

그러는 당신은 왜 젊은 시어머니 였음에도 식당일을 못했단 말인가 ?

기껏 일주일에 한두번 예식장에 가서 국수 삶는것으로 더이상 아무것도 안했지만 나는 하루 13시간

일년 365일을 일한적도 있었다 .

 

 

그 어렵던 시절에 노령자 연금 특례법을 발동해서 한시적으로 들어주던 국민연금을 내통장에서

자동이체를 시켜서 5년을 부었더니 만기가 되었고 붓기는 내가 부었으되 어머님이 수령인

인지라 어머님을 대동하고 연금공단에 가서 당신 통장으로 계좌를 연결 시켜 드리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간 식당에서 소주한병을 시켜 나누어 마시면서 얘기했다 .

" 나는 이렇게 밖에 못합니다 이제 어머님이 돌아 가실때 까지 이통장으로 돈이 들어옵니다

이걸로 용돈 쓰시고 이것으로 어머님과 저와의 계산은 다 끝났네요 " 했더니 손끝을 떨며 아무말이

없었다 .

 

2년전 나없는 자리에서 제사를 둘째 며느리 에게 인수인계를 하시고 몇달후에 당신이 살던집의

재계발 보상비를 수령했다 한다 .

올봄 남편이 다친후 한번도 병원에 와보지 않은 시어머니가 괴씸했다 .

추석이 지나고 아들이 다쳐서 지금까지 병원에 있는데 아시냐고 ? 전화를 했더니

" 니가 언제 나한테 전화 했었니 ? " 하신다 . 어이가 없다 . 본인이 직접 전화하지 않아서

전해들은 얘기라서 병원에 안와본다는것은 남들한테나 할수있는 핑계일것이다 .

전화를 끊고 부아가 끓어올라 다시 전화했다 . 궁금하지 않냐고 ? 어디를 , 얼마나 , 어떻게

다쳤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냐고 ,,,,,,,,,,, 따지는 내말에 " 아들하나 없는셈 칠라그런다 " 한다 .

분노가 밀려왔다 . 13년전에 뇌수술후에 돈때문에 사이가 안좋았을때도 그렇게 얘기했었다 .

" 내가 아들이 그거 하나냐고 그거 말고도 넷이나 더있는데 설마 에미하나 긂겨 죽이겠냐고 "

세상에 ,,,,,,,,,,, 너나 나나 에미복도 지지리도 없다 .

13년전 15시간의 뇌수술후에 처음맞은 생일에도 전화 한통화가 없었다 .

내가 미워서 , 며느리에게 서운해서 그무슨핑계를 댄다해도 이유가 안된다 .

세상엔 부모라고 다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라고 다 자식이 아닌 시람들이 너무많다 .

추석 이틀전날이 생일이라 혹 추석때 모여서 병원에 와보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추석날 안갔다 .

다음날 묻고 싶은것을 억지로 참다가 일주일쯤후에 슬며시 물어봤다 . 혹 누가왔다갔냐고 ?

아무도 온적이 없단다 .

같은지역에 사는 동서에게 전화해서 그얘길하며 병원에 한번을 안와보냐고 나무랐더니

" 아주버님 만취해서 경찰차에 실려왔다면서요 한두번도 아니잖아요 그 경찰 우리신랑 동기예요

우리가 아주버님땜에 얼마나 챙피한줄 아세요 " 한다 .

세상엔 자랑스럽고 휼륭한 부모형제만 있을까 ? 시동생에게 " 형님이 죽어도 안알리고 혼자 장례

치르면 되겠네요 그럼되겠네" 했더니 이말 저말을 한다 .

 

보름전쯤 ,,,,,,,,,, 또한번 경찰이 데리고 왔다 .

이번엔 술이 아니고 집을 못찾아서 ,,,,,,,,,,, 또 그사람 , 시동생 동기이다 .

" 형님이 방향 감각을 잃으셨나봐요 " 한다 .

다 전해 들었을 텐데도 전화 한통화가 없었다 .

남편은 아무생각이 없는것일까 ? 아니 피하고 싶은것일지도 모른다 . 그모든것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