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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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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혜 2007-10-26

불륜의 두 남녀가 좁은 차 트렁크 안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아름다운 영화를 본 적

 

이 있다.  사건 현장이 발견 되었을 때 알몸인채,  피투성이의 남자는 깨어났다. 

 

그는 차라리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처럼 사람은 살다보면 종종 살아있다는 것

 

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때가 있다.  언젠가 서른이 갓 넘은 나이 내가 만났던

 

그 아름다운 사람처럼...

 

 

 

가을 하늘은 언제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을이면 항상 하늘이 없어지기를

 

하늘에 ..  기도한다.  그해 가을도 아파트 창밖으로 펼쳐진 지치게도 낯선 하늘이 어

 

김없이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가을 하늘엔 유난히도 구름이 없어서 일까.. 무

 

언가 감출수 없는 법칙같은 것들이 나를 항상 짖누르는 듯 했다. 지친 눈으로 지친 어

 

깨로 지친 마음으로 그렇게 십여분이 흘렀을 대쯤 목이 뻐근함에 무심코 고개를 숙였

 

다. 아파트 후편 주차장 뒤엔 여섯평 남짓한 초라한 밭과 그에 어울리는 집이 한 채

 

있다 .집 앞으로 나있는 작은 길 옆에는 집주인의 부지런함을 보여주듯 -마치 화분에

 

심어놓은 고가의 동양란과 같은- 이름을 알수없는 여러 가지의 난과 꽃이 가득 했다.

 

 하루중 내가 느끼는 얼마 않되는 극도의 편안함을 주는 시간이 바로 길가의 그것

 

들을 볼때였다. 그날도 그 현기증나도록 아찔한 편안함을 한껏 느끼고 있을 때였다.

 

철없이 아직까지 감싸고 있던 장미꽃 넝쿨 담장을 돌아 날렵하게 생긴 차 한대가 막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마치 오랫동안 관심받지 못해 다 맞춰도 몇 개쯤 비어있는 아

 

이들의 퍼즐 조각처럼 안쓰러운 느낌의 주차장에 tv자동차 cf에서나 봤음직한 .. 차

 

만큼이나 날렵한 주차솜씨로 작은 아파트의 좁은 주차선 안에 한번에 끼워넣는 멋진

 

주차 솜씨에 난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이쯤되니 차에서 내릴 그 운전자가 무척

 

이나 궁금해졌다. 처음 보는 차인걸 보니 우리 아파트 주민이 아니거나 아님 얼마전

 

에 이사 온 사람일 테지... 남자일지 여자일지, 중년의 신사일지 몸매가 좋은 아가씨

 

일지 일이분의 시간이 나에겐 무척이나 길었다. 단번에 날렵하게 주차를 끝낸 그는

 

또는 그녀는 그 짧은 순간 내심 내가 기대했던 대로 나를 위해 사이드 밀러까지 자상

 

하게 덮고는 차에서 내렸다. - 난 잠시 정차 중일때도 사이드 밀러를 접는 걸 무척이

 

나 좋아한다 - 서른을 갓 넘은 어느 우울한 가을, 난 그렇게 그를 처음 보게 되었다.

 

 

 

난 아직까지도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했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  이같은 방법으

 

로 사랑을 만나고 키우고 지켜왔던 사람들에게는 죄스러운 말이지만, 난 그런 느낌을

 

내가 싫어하는 가을하늘의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하는 말로 처음 보았을때 그

 

 사람 뒤에서 빛이 난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을 난 실감하지 못한다. 내게도 결혼 전

 

 가슴 저리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그런 빛 따위는 한번도 보지못했다. 그

 

래서 내가 그 사랑들을 끝까지 지킬수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없으니까...

 

내가 살던 집은 5층이라 그나마 주차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나 표정까지도

 

대충은 알아차릴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역시나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남자였다. 나

 

이는 삼십대 중반쯤 되어보이고 적당히 큰 키에 덩치는 좋았다. 유난히도 눈에 띄던

 

것은 남자치고는 너무나도 하얗던 그의 피부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아름다운

 

배우 장국영이 패왕별희에서 했던 경극 분장을 보는 듯한 느낌의, 마치 세상에 질려

 

버린 듯한 피부색...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난 사실 그의 그 창백한 피부색마저 사랑했

 

었다. 피부색과는 대조적으로 팔뚝이나 어깨는 근육으로 덮혀있었다. 난 아직도 그의

 

팔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그 행복했던 때처럼 그의 멋진 팔을 베고 잠들 수만 있다

 

면... 아니.. 그의 팔만이라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감각의 제국'의 여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부분을 칼로 잘라 가슴에

 

안았던 그 장면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럴 순 없겠지만 그 여자 주인공의 마음이 아

 

마 지금의 내 욕망과 같았으리라... 첫눈에 반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는 한동안 내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이나 커다란 사랑으로 날 짓눌렀고 그 숨막힘이 난..  무척이나

 

짜릿했다.   우리에게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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