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이 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밤을 너머 새벽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겨우 겨우 원고를 끝내고 쓰러지 듯 이불더미에 얼굴을 묻었다.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 생명의 어느 한 부스러기가 빠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원하면서도 왠지 아리고 암담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무튼 또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한 참을 운 것 같은데 난 받고 싶지 않았다. 이 기분좋은 무력감을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메세지를 남겨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상투적인 소리였다. 난 한번도 메세지를 받고 연락을 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시도때도 없은 전화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서야..."
난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화벨을 받았다. 3년만에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애였다. 출판사가 아연실색을 하는데도, 굳이 내 전화번호를 책에 썼던 것도 어쩌면 그 애에게 전화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다시는 절대로 안 볼 것처럼 싸우고 헤어졌지만, 그 애가 언젠가는 나를 찾으리라는 것을, 나도 그 애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수 있게 전화번호를 늘 책에 써 놨었다.
다른 작가들은 내 호기라고 쏘아붙였고, 덕분에 많은 장난전화를 견뎌내야 했지만 난 그 애의 전화에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영서야. 나 여행을 가. 가기전에 너 만나고 가려고.... 만나줄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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