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키가 크고 파란색 점퍼가 잘 어울리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 여학생이라면...
글쎄 그런 여학생이 있기나 한 걸까?
조바심 쳐진 마음을 가다듬고 승민이는 옆에 있는 숙자에게 들고 있던 인형의 꼬리를 잡아 던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을 떨구어 내 듯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흔들어 대다가
앞에서 브러쉬를 하던 윤주에게 들켰다. 윤주는 눈을 찡긋 감아 보이고는 이내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그러나 모든 조원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 조장언니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에 빠져 있는 승민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더이상 참지 못한 조장은 인형 대가리를 잡아 승민에게 힘껏 내 던지며
"승민아, 정신 어디다 두고 꿰매기 하고 있니? 이 불량 좀 봐라."
하고 소리쳤다.
승민은 그제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구루마를 끌고 가던 포장반 윤반장이 승민이를 흘끔 쳐다 보고는
"승민이 요새 자주 혼나내. 무슨고민 이라도 있는거 아냐 ?"
하고 지나쳐 갔다.
승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면 그러 수록 마음은 더욱 그에게로 향했다.
시끌시끌한 소리를 듣고 파란색 점퍼는 무슨일인가?하고 다가왔다.
승민은 빨개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으악스럽게 바느질을 했다.
`분명 그가 내 옆에 와 있지.`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더욱 조여 오는 듯 했다.
그는 다가와서 승민의 어깨에 한손을 얹었다. 승민의 가슴은 그 부드러운 손길의 전율에 온몸이 녹아지는 듯 했다.
" 이 승민 이렇게 자꾸 불량 내면 안된다. "
승민은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이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승민아, 너 대리님 좋아하니? 너 아까 이상 하더라."
"얘는 무슨 소리야, 아냐, 아니라니까."
"너, 흥분하는게 더 이상하다."
김치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윤주는 의미 심장한 눈짓으로 승민을 쳐다보며 놔까렸다.
"윤주야, 밥 먹다 체하겠다 엉뚱한 소리좀 하지마."
승민은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 주절되는 윤주가 얄미웠다.
일어 서려고 주위를 둘러 보니 파란점퍼는 송과장과 창가쪽에서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고개를 잽싸게 돌려 그들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파란색 점퍼를 못 본 척 하고 밖으로 나왔다.
떠드느라 밥을 다 먹지 못한 윤주는 호들갑스럽게 일어나 드르륵 의자 디미는 소리를 내며
승민을 쫒아 나왔다. 그 바람에 식당의 많은 사람들이 승민과 윤주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들
속에 그의 눈이 다가왔다. 그의 눈 빛이 번개치듯 승민의 눈속을 파고 들었다.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멀건 눈 빛이었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두개를 사들고 윤주는 한 쪽 팔을 끼며 말을 걸었다.
"승민아, 우리 저기 등나무 밑 벤취에 가자.'
학교 운동장 같은 흙 마당은 꽤 넓어 점심시간이면 직원 들이 어울려 배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쳤다.
마당둘레엔 벽돌로 담을 만들었고, 탈의실이 있는 끄트머리엔 동적인것을 즐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등나무가지를 지붕으로 한 여러개의 벤취가 놓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