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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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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분다. 늘...-1-


BY 데미안 2012-06-24

 

1.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거예요? 언제요?  왜 제겐 말 안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래도 돼요? 정말로...!]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그녀가 그의 팔을 붙들고 쉼없이 질문을 던졌다.

빤히 자신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딱. 반이다.

정말일까?...아닐까?...

그가 웃었다.

[코트부터 벗고]

그가 손수 그녀의 코트를 벗겨 소파에 걸쳐 놓고 자신의 코트도 벗어 그 위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이층 계단으로 밀었다.

[올라가서 따뜻하게 샤워해.  나 또한 금방 갈테니]

하면서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탁. 쳤다. 그녀가 곱게 흘겨 본다.

그가 소리내어 웃으며 턱으로 얼른 올라가라는 시늉을 했다.

 

여전히 반신반의하며 그녀는 욕실로 들어갔다.

아무말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 그런 결심을 했을까...

그런데 그 말이 정말일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서도 설은 온통 의문에 빠졌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모습을 보는 설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헉. 언제 샤워를 했을까?

그의 머리가 촉촉해 보였고 옷 또한 트레이닝 바지만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리 오래 걸릴까?]

하면서 그가 드라이어기를 뺏어 손수 머리를 말려 주었다.

그리고는 수건에 감싸인 그녀를 낼름 안아 들었다.

 

침실 창가에  와인 한 병과 잔 두개가 놓여 있었다.

그가 그녀를 그 넓다란 창틀위에  앉혔다.

[잘 시간에 왠 술이예요?]

[와인이 술인가? 조금만 마셔봐]

그가 그녀의 잔에는 3분의 1. 자신의 잔에는 반을 채웠다.

 

2.

[뉴욕 문제, 왜 철회했는지 궁금하지?]

[...네]

[주먹만한 머리속으로 온갖 생각 다 하고 있지?]

[알면서...]

그가 씨익 웃었다.

잔을 홀짝이면서 그녀가 내내 자신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음을 아는 준수다.

그 눈빛이 예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골려 주고 싶기도 했다.

 

[난 이기적인 놈이다.  처음부터 그랬지.  일때문에 늘 집을 비워야하는 부모님...어린 마음에 그게 싫어서 다짐하곤 했어. 사업따윈 하지 않겠다고...그래서 난 어머니 아버지와 반대로 가곤 했어.  나완 반대로 형님은 언제나 부모님이 원하신대로 갔지.  군대 제대하고 사시 붙고...바로 뉴욕으로 날랐다. 사업이야 형님이 있으니깐...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형님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처음으로 내게 애원하는 어머니를 차마 뿌리치지 못하겠더군]

[어머님과 형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외면하지 못한거예요]

그녀가 미소지며 그의 볼을 살짝 건드렸다.

[그래...부모님의 부재가 마음에 안들어 반항하고 형님에게 무뚝뚝해도...맞아. 난 어머니와 형님을 사랑해]

[그렇긴해도...저를 더 많이 사랑하죠?]

그녀가 혀를 빼물으며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가 그녀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병원에 누워 계신 형님을 보고서야 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놈인지 깨닫게 된거야. 어머니도 겉으론 강해보이셔도 많이 늙었다는 느낌도 받고...기분이 썩 개운치 않았어.  그래서 기를 쓰고 형님을 살려보자고 생각했지. 그러면 바로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네 문제가 남아있었어. 반드시 널 내게 오게 만들어야했어. 그래서 데리고  떠나려했어.  널 기다리는 5년동안 난 뉴욕이 그립지 않았어. 이곳이 지루하지도 않았고 어머니와의 실랑이도  사실 싫지 않았고]

그가 또 씨익 웃는다.

[내가 뉴욕으로 가야 한다고 한 건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란 걸 어느날 문득 깨달은거야]

[그래도 계기가 있었을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가 잔에 남은 와인을 마져 비웠다.

[너야]

[......!]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곤하게 잠든 너를 보면서 아차 싶었다. 너를 내게 붙들어 두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니 다른 걸 보지 못한거지.  너의 일, 가족, 친구. 모든 것이 여기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내가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그러자 내내 머리속에 박혀 있던 알수없는 그 찜찜한 놈이 한순간에 터져버리면서 깨달았어. 굳이 내가 뉴욕에 있을 필요가 있나...하는]

[정말요? 절 qo려한거예요?]

감동이다.

[너와 나의 모든 것이 이곳에 있는데 뭣하러...솔직히 뉴욕은 내 편하자고 택한 도피처 였을뿐 그곳에서도 외롭긴했지]

마음이 아렸다.  어릴때부터 외로움이 몸에 벤 사람...

커서도 그 외로움을 다스리지 못해 훌쩍 떠나야했던 사람...

아마도 낯선 그곳에서 맡는 외로움은 더 지독했을 것이다.

뭉클한 게 치밀어 오르자 설은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이리와요, 안아 보고 싶어요]

기꺼이...

 

준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고 번쩍 안고 위치를 바꿔 제가 창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더니 그 무릎위에 그녀를 앉혔다.

그녀의 따스한 손이 그의 얼굴선 하나하나를 따라  곰꼼히 어루만졌다.

[김준수씨...]

[음...]

[사랑해요]

[...글쎄, 내 사랑만큼 되려나?]

[아마도...더 셀걸요? 제 사랑은 그냥 무한대거든요]

[그래? 그럼 증명해봐]

[에?...]

그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녀의 몸에 둘러진 수건이 스르륵 벗겨졌다.

그의 깊게 그늘진 눈이 그녀를 집어삼킬듯 보고 있었다.

[키스부터...]

그녀의 얼굴이 벌개졌다. 그리고 작은 한숨이 세어나왔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때까지  잠못들겠지?.....

그녀의 입술이 그의 불같은 입술에 포개지는 순간 준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3.

[정말이니? 그건 정말 잘된 일이야]

한국에 남기로 했다는 소리에 제일 기뻐하는 사람은 당연히 장여인이었다.

내심 섭섭하고 마음이 허했었다.

[김사장이 널 끔찍히도 사랑하긴 하는가보다. 결국 너때문에 결심을 바꾼거잖니]

유마담이 옆에서 눈을 살짝 흘기며 말하자 설은 야시시 웃었다.

[어머! 언니. 얘 설이 웃는것좀봐]

유마담이 좋아라 하며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장여인이 흐뭇하게 웃었다.

설의 모습이 보기 좋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딸이지만 그 미소가 더 넓어졌다.

[그러고보니...]

유마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을 살폈다.

[언니. 설이 얘, 요즘 너무 예쁘졌단 생각 안 들우?  얼굴에서 빛이 나는데? 김사장 사랑이 좋긴 좋은가보다. 김사장, 힘도 좋지? 모르긴몰라도 매일밤 널 쭉쭉 빨지?]

[얘가!]

유마담의 말에 옆의 장여인이 펄쩍 뛴다.
[애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어머, 언니! 설이가 애우? 막말로 혼인신고까지 한 사인데  둘이 얼마나 깨가 쏟아지겠어. 게다가 김사장이 5년이나 별루고 별루었다는데 설이를 그냥 두겠수?  밤마다 잡아 먹어도...!]

[유미숙아. 그 입 좀 다물어라]

[그럼 언닌 김사장이  힘없이 비리비리하길 바라우?]

[얘가...!]

그건 아니지 말이다.  그래도 애 앞에서....

[시끄럽고...!]

장여인이 꼬장꼬장한 눈으로 설을 보았다.

[결혼 날짜도 잡혔으니 봄학기 시작되면 당분간 집에 와 있어.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이런저런 가르칠 것도 있고...이따 김서방 오면 내 다시 얘기하겠지만  미리 알고 있어]

[얘, 네 엄마, 너 막상 결혼시킬려고 하니간 되게 아까운가봐]

넌지시 유마담이 귀뜸을 한다.

설의 눈이 흔들렸다.  장여인을 보지만 장여인이 그 눈을 피했다.

엄마, 섭섭해요?...걱정돼요? ...아빠가 없으시니깐 마음이 짠 하세요?...

[엄마도 참...내가 멀리가나?  맨날맨날, 자주 올건데... 준수씨가 엄마 음식 맛있다고 하니깐 아마 자주 올껄? 귀찮을 정도로...그리고 제가 애기 낳으면 엄마가 봐줄거죠?]

[내가 니 새끼를 왜 봐주니? 니 시어머니 계시는데...]

말은 그렇게해도 장여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설아. 걱정마!  니 엄마가 못 봐주면 내가 봐줄게. 아휴~~ 너와 김사장의 애기면 얼마나 이쁠까?]

장여인이 유마담을 흘겼다.

[얘. 어쩜 애기가 생겼을수도 있겠다...?]

[유미숙!]

유마담의 나직한 말에 결국 장여인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그래.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유마담은 장여인의 호통쯤이야 아무렇지 않은 듯 설에게 물었다.

[뉴욕요. 신혼여행겸 정리차...]

그녀가 생긋 웃었다.

 

4.

말이 씨된다고...

 

겨울이 성큼 한발자욱 물러섰다.

바람은 여전한 바람인데 그 살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살랑살랑 봄바람 냄새도 난다.

 

결혼식날이다.

햇살이 더없이 따스하다.

결혼식 장소는 당연히 호텔이다.

신여사와 준수의 명성이 있음으로해서 하객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그런데 결혼식 10여분 남기고 일이 터졌다.

훤칠한 외모에  예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준수가 시계를 확인하는 순간 이었다.

외마디 소리!

신부대기실에서 들려왔다.

무슨일인가 ..모두가 웅성하는 사이 준수는 미간을 좁히더니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 온 건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윤설이 바닥에 길게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숨이 그대로 멎었다.

 

[어머, 얘가 왜이래! 설아! 설아, 정신차려봐!]

장여인이 새파란 얼굴로 설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살살 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런 장여인 곁으로 다가간 준수는 무릎을 굽히며 바닥에서 그녀를 들어올렸다.

[차 대기시켜!]

그가 소리쳤다.

 

신랑신부 예복을 갖춰 입은 남녀가 병원 응급실에 있는 모습은 좋은 눈요기감이었다.

설은 곧바로 특실 침대에 눕혀졌고  신여사의 주치의가 직접 진찰을 했다.

의사가 진찰을 하는 동안 준수를 비롯 장여인과 유마담, 신여사와 현수, 윤우까지 병실에 빼곡이 둘러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특히, 준수는 파리한 얼굴을 하곤 줄곤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음...]

의사가 몸을 일으켰다.

[뭡니까, 박사님?]

준수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그녀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박사. 뭔가?  평소에 건강하던 애였는데 갑자기 왜 쓰러진게야? 어디가 어떻게...]

신여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박사님...]

장여인이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울먹였다. 머리속이 하얘지는 순간이었다.

안된다.  딸에게 무슨 일이...!

[뭐, 크게 걱정들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박사가 웃으며 안심을 시킨다.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일종의 신경성 쇼크로 보면 되는데...  기절함과 동시에 깊은 잠에 빠져 들었을뿐 조금 있으면 깨어날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장여인이 거듭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박사가 웃으며 신여사를 보았다.

[신부들 중 간혹 있는 경우니깐 걱정마시고 ...여기 신회장님 며느님 같은 경우는 다른 문제가...]

[다, 다른 문제라니?]

신여사의 말에 준수가 사납게 눈을 들었다. 박사가 웃었다.

[이거...축하한다고 해야하는건지]

[예?]

[자세한 건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봐야겠지만 내가 틀리지 않다면 신회장님 며느님이 임신했습니다]

[예?]

이구동성이다.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세 여인의 기쁨에 찬 소리를 들으며 준수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떨리는 손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그것을 감지한 듯 그녀의 눈꺼풀이 움직이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말간 눈이 곧바로 그를 찾아 움직이더니 그를 발견하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준수의 가슴에 터질듯한 풍선이 자리했다.

점점..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게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 같았다.

환호성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는 걸 애써 참고 있는 준수다.

그가 그녀 얼굴위로 몸을 굽혔다.

그녀의 고운 입술위에서 그가 속삭였다.

[사랑해...사랑해, 윤설...내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