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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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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좋은 날 -2-


BY 데미안 2012-05-08

 

1.

장을 보았다.

국수를 만들 참이었다.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손님이고 국수 종류를 좋아한다기에 해 본 것이다.

신김치를 살짝 씻어서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밑간을 해 놓았고 계란으로 고명을 만들었다.

부추는 국수를 삶을때 넣을 요량으로 깨끗이 다듬어 놓았다.

매운 고추를 살짝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멸치, 다시마, 파, 무를 넣어 중불에서 육수를 끓이는 걸로 일단 끝을 맺었다.

손님들이 오시면 그때 면을 삶을 것이다.

시간이 12시가 가까웠다.

 

[앉아봐]

준수가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느슨하게 털어올린 그녀의 머리를 풀어 주었다.

[손님들일 누구신지 얘기안해줘요?  제가 있어도 될 자린지...!]

[음.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해. 내 이름이 김준수고 나이는 서른 다섯. 알지?]

[그럼요]

[내 직업은?]

[호텔 사장이잖아요. 아녜요?]

[유마담이 나에 대해 다른 말 안 하던가?]

[음...좋은 분이라는 얘기만 계속 하셨죠. 왜요?]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긴머리를 귀뒤로 넘겨 주었다.

[내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6년쯤 되었나... 난 사업가도 아니고 그쪽으로 별 취미도 없는 사람이야]

[그럼, 계속 한국에 살았던 게 아니었어요?]

[그렇지. 원래 내 직업은...검사야. 그것도 뉴욕에서]

[정말요? ]

그건 정말 놀랄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왜?...]

[왜 호텔일 하냐고?  형님이 사고를 당하셨어. 식물인간 비슷했지. 어머니의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겠더군. 그래서 잠시 내 일을 접고 한국에 들어왔어. 형님이 쾌차를 하시면 다시 내 본업으로 돌아간다는 조건하에... 내가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형님을 일으켜세우는 일이라 호텔일보다 형님 건강에 더 신경을 썼지]

[지금은...?]

[1년쯤 지나자 형님이 의식을 차리시더군. 지금은 거의 회복하셨고... 본업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중에 있는데...]

그가 갑자기 씨익 웃더니 설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너를 만난거지]

[그럼... 저 때문에 5년이나 넘게 이곳에서...]

가슴이 두근반세근반 콩콩 거렸다.

준수가 자신으로 인해 한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준수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또 쓸데없는 생각... 네가 미안해 할것도 없고 동정할 것도 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고...]

그가 그녀의 턱을 잡더니 자신에게로 당겼다.

[그 선택은 옳았어. 너를 얻었잖아. 내 생애 최고의 축복...]

그의 입술이 그녀의 살짝 벌어진 입술을 그대로 삼켰다.

뜨거운 그의 입술과 보드라운 그녀의 입술이 빈틈없이 착 달라붙었다.

그는 그녀가 숨막혀 할때까지  맛보고는 살며시 놓아주었다.

[나의 어머니이신 신영자 여사님이 수그룹의 총수야. 수그룹, 들어봤지?]

[네에. 아버지 살아계실때 아버지께서도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럼...당신이 수그룹의...?]

놀랄 일만 생겼다.

[신여사님의 둘째 아들]

[몰...랐어요. 당신이 그런 대단한 집의...]

[쯧쯧...내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난  재산에 관심이 없다면서 외국으로 날랐던 놈이야.  그 재산은 신여사님과 형님의 것이다. 상관없지?]

그가 눈썹을 세우며 물었고 설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네에. 상관없어요]

[됐어, 그럼. 너와 나의 일, 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난 본업으로 돌아가. 그땐 너도 함께야. 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아차 싶은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오늘 오신다는 손님이?]

[그래. 어머니와 형님이 오실거야]

[어떡해!! 미리 얘길하죠..]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 내가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이곳에 눌러 앉은 이유가 너때문인걸 아시니깐, 고마워했음 했지 다른 소리는 하지 않으실거다]

[저에 대해 아세요?]

[어느 정도는]

[반..대 하실텐데...?]

[내가 무슨 한두살 먹은 어린앤가... 너를 어머니에게 소개 하는 건 그냥 절차야. 아들이 어떤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는지 얼굴은 알아야겠기에 소개하는거지 허락 받고자 하는거 아니야.  쓸데없는 일로 머리 굴리지마]

[제가  어마어마한 거물을 잡은 것 같아요. 그렇죠?]

그녀의 수줍은 말에 그가 소리내어 웃었다.

[너의 어머님 허락이 떨어지면 그땐...널 가진다]

진지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어조에 설은 가슴에 나른한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진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너를 다시 안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 내가 미치지 않고 견뎌온 게 신기할 정도지.  허락이 떨어지면 넌 이곳으로 와야 할거다. 결혼할때까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소리야. 절차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해]

그녀의 얼굴이 발개졌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더이상 너를 보내고 돌아서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알지?]

준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다 자신의 무릎위에 앉혔다.

그녀의 손이 즉각 그의 목에 감겼다.

그녀 또한 같은 심정이었다.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부터 보고싶어지는 사람이었다.

[네에. 당신이 하자는대로 할 거예요]

달콤한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이자 그의 가슴이 꽉 막히듯 벅차왔다.

그 어떤 의심도 한줌, 머뭇거림도 없이 그의 뜻에 따라 주고 그의 마음을 알아 주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향해 항상 웃고 있는 그녀의 그 눈빛 또한 그에겐 끝없는 두근거림이었다.

열정과 사랑을 담아 준수는 몇번이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알싸한 그녀의 맛과 독특한 향기,  나긋한  몸...

그의 머리가 마음이 몸이 가는 대로 그녀를 안아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곧 그의 가족이 온다.

 

2.

현관문이 열리고  그의 가족이 들어왔다.

보랏빛 정장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과  회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은 키 큰 남자.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설은 자신의 두손을 꼭 잡았다.

신여사와 현수는 준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설을 보았다.

[설, 어머니와 형님이셔]

설은 미소띈 얼굴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윤설이라고 합니다]

신여사의 매같은 눈이 재빨리 설의 아래위를 훑었다.

[그래. 이 놈한테 얘기는 들었다]

위엄있고 강한 어조의 목소리였다.  가히 여장부다운...

 

신여사는 주방에서 움직이는 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머니. 너무 노골적으로 보십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아가씨 인상이 좋습니다. 준수가 그래도 여자 보는 눈은 있는 것 같군요]

[저 놈 눈이 보통 눈이겠냐.  그 잘난 재벌집 딸네미도 싫다, 유명 배우도 싫다 하던 놈이잖니. 그렇게 대단한 미인도 아닌데 저 놈, 입 좀 봐라.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에미에겐 저렇게 웃어 주지도 않는 놈이]

[제 눈에도 예뻐 보이는데 준수는 오죽 하겠습니까]

[얘. 저 아이, 눈이 참 곱구나. 가식이 없으면서도 참 많은 걸 담고 있어]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곱게 자란 티도 나고... 마음에 듭니다.  다른 말씀은 마세요]

[내가 뭐라 한들, 저 놈이 가만있겠냐. 그랬다간 에미하고 아예 인연을 끊을 놈이다]

토라진듯 신여사가 한마디 했다. 그리고 다시 눈길을 설에게 주었다.

[그래도...키도 큰 편이고 가슴도 빵빵하고...엉덩이도 튼실해 보이는 게 손주를 보는데는 지장 없겠구나]

[어머니. 행여 아가씨 앞에서 그런 말씀 마십시요]

현수가 놀란 얼굴로 그렇게 다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