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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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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옥의 고뇌2


BY 황영선 2007-03-05

 도혜옥은 말을 끊고 주영을 그대로 세워 둔 채로 쇠 소리가 들려 오는 주전자에서 보온 물병 안에 물을 담아 차 도구와 함께 내왔다.

 "오늘이 새댁과 나와 마지막으로 차가 될지 모르겠어예. 자 마셔 봐예. 먼저 하고는 다르다 아입니까? 이 차는 내가 스님께 스님들이 즐겨 마시는 식으로 한 번 더 볶아 달라고 했어예. 어때예?"

 주영이 차를 조금씩 마셨다.

 "차가 약간 고소한 느낌인데, 제 느낌이 맞긴 맞나요?"

 "맞아예. 역시 차를 대접할 기분이 나네예. 새댁만큼 차 맛을 잘 알아 맞히는 사람도 드물어예. 내 그 대가로 우서운 이야기 하나 더 해도 되겠지예? 전에 어떤 이가 저 위에 튀김기 보이지예? 저 걸 사 갖꼬 갔다 아입니까? 그 다음날 갖고 왔어예. 포장한 상태 그대로 가져 와서 나는 뭐 살펴 볼 요량도 없어 턱 저 위에 올려 났어예. 다음에 어떤 사람이 와서 저걸 사 갖고 간다 하대예. 그래 저 걸 내리니 안이 온통 난리도 아니었어예. 기름기가 묻어서 영 못쓰게 되어 있었지예. 나는 그날 깨달았어예.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구나 하공예. 그 사람을 탓하고 싶지도 않았고,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어예. 나 자신을 탓했어예. 큰 스님이 말씀하셨지예. 보살님과 이를 취하는 업과 상관없는 일이라꼬 하셨지예. 새댁이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번뇌가 생긴 그 순간부터 마음이 지옥이지예. 마음이 답답해지면 깨달음을 얻으러 큰 스님께 달려 갔지예. 다시 돌아와서  손님을 맞았고예. 그래 지냈다 아입니까? 그 긴 시간 동안 내한테 남은 기 뭔지 모르겠어예. 이제 나는 홀가분해예. 가게 물건들이 하나씩 자리를 비워 가는 저걸 보고예, 지금 원가로 원가 이하로 팔면서도 이문을 남길라꼬 손님들과 실랑이 할 때 보다 마음이 이래 가벼울 수가 없어예. 어디로 가고 싶은 기분이라예. 새댁도 살 거 있으면 사 두이소. 나를 생각하라는 이 말도 다 부질없는 내 마음이겠지만. 저 물건들이 없어지면 내 번뇌지옥고 없어진다 아입니까?"

 

 다관의 물이 식어 가고 있었다. 도혜옥이 다시 따라 준 차 맛이 그만 떫어지고 말았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주영은 도혜옥의 작고 반짝이는 눈을 보았다. 지현과 밥을 먹던 그때가 생각났다.

 저 물건이 없어지면 도혜옥의 번뇌지옥이 사라지겠지만, 주영은 도혜옥과 자신의 연 역시 사라지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뭐라고 말하기 힘든 차 맛 같았다.

 은은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하고,그만 떫은 맛이 나기도 한 차.

 그날 주영은 두 세트의 그릇을 샀다.

 도혜옥을 가슴에 품어 두려면 주영에게도 뭔가 기억해야 될 물건이 있어야 될 것 같아서였다. 부질없는 짓이 된다 하더라도.

 

 그 생각을 하며 '점포정리'라는 글씨를 가게 밖에 서서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주영이었다.

 '이제 점포정리라는 저 글자만 가게에 남겠구나.'

 도혜옥은 물건이 어느 정도 팔리면 한 달의 여유를 두고 가게를 그만 두겠다고 떫은 차를 마시던 그날 말했다.

 그 한 달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좁은 가게 안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가게 밖에서 주영이 본 도혜옥의 얼굴은 손님들 틈에서 참으로 즐겁다. 주영이 본 몇 달 동안의 얼굴 중에 지금이 가장 빛났다.

 도혜옥 빛나게 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 속은 지금 어떨까하고 고개를 들어 모처럼의 태양을 올려다 본 주영의 눈에 태양의 상이 맺혀 눈이 부시다.

 

 비 오는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있는 법이다.

 

 오늘 도혜옥처럼 주영도 얼굴빛이 밝을 것이다. 비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환상적으로 쏘아 놓은 실리콘을 뚫고 비는 줄기차게 뒤 베란다를 축축하게 주영의 마음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던 장마 기간이었다.

 

 가게 밖의 주영을 보았던지 도혜옥이 열린 문을 통해 가게 앞으로 나왔다. 전에 없이 가게 앞에 팔 물건들이 잔뜩 나와 빛을 쪼였다.

 7월의 태양은 곧 강렬해 질 것이다.

 

 "왔어예?"
 도혜옥이 알은 체를 했다.

 "네. 안에 계신 저 분이?"
 "예. 우리 집 주인 양반이지예. 키가 작지예? 키가 작은 걸로 따지면 천생연분이지예?"

 도혜옥이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남편을 잠깐 돌아본다.

 "이제 다 파셨어요?"

 "예. 내가 가게 열고 한 달 동안 가게가 제일 잘 됐다 아입니까? 물건이 싼 거는 손님들이 기차게 안다 아입니까?"
 도혜옥이 그 말끝에 빈 웃음을 짓는다.

 "이제 쪼매 남았어예.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사 갖고 가이소."

 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필요 한 거 있나 살펴본다. 주영이 하나라도 더 사가지고 간다면 도혜옥의 눈에 비치는 공허함을 나눠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도서관에 갔다가 산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 온 그날이 삼라만상에서 도혜옥을 본 마지막 이었다.

 다음에 갔을 때는 가게는 어수선한 상태로 문이 잠겨져 있었다.

 

 주영은 그 며칠 후 지현의 전화를 받았다.

 일정이 정해서 출국해야겠다며 " 널 못 보고 가는 나를 원망 하지마.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편지도 할게." 지현이 울었던지 목이 잠겨 있었다.

 

 주영은 지현이 떠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보내 온 항공우편 속에서 주영은 지현의 체취를 느껴야 했다. 주영이 전헤 지현의 손 등에 발라 주었던 그런 냄새가 편지에서 나는 것 같기도 했고, 지현의 날려 쓴 글에서 그녀의 바쁜 일상을 읽기도 했다.

 

 주영은 지현이 돌아온다면 둘의 사이가 더 서먹해 질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서먹함은 아주 큰 바다가 놓여 있는 주영과 지현 사이의 거리처럼 클 것이다.

 '그래 영원함을 위해 노래 부르지 말자.

 

 주영은 눈물 자국이 선명한 얼굴을 문질러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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