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088

(은경과 그녀의 엄마)


BY 황영선 2007-01-23

                                          9

 

 

 

 

 

 

 

 엄마의 고향은 담양이다.

 준호의 아버지, 내계 시아버님 되는 그 분의 고향은 고창이다.

 처음 라스베가스에서 돌아와 네일샵을 오픈하기 전에 한 달 정도  엄마의 수선집에서 실밥을 뜯어 준적이 있었다.

 수선을 맡기는 옷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알마니의 양복부터 시작해서 페라가모, 새털처럼 가벼운 보라빛 무스탕과 백화점에만 입점해  있다는 오스트레일라 산 양모와 만든 초록색 겨울 외투, 만원짜리 티셔츠를 시장에서 사와 만 오천원을 들여 고치고, 마음에 드는 까만 휠라 체육복을 옆선을 내서 입기도 하고, 슈페리어라는 골프복 바지 단이 길어 수선하는 키 작은 사람도  있고, 엄마의 좁은 가게 안에 걸려 있거나 눕혀져 있는, 수를 셀수 없는 옷들은 오빠와 나와 남동생의 학비로 용돈으로 씌였을 것이다.

  어느 날은 엄마가 부끄러웠다가 어느 날은 혀를 내두르게 근사하게 고쳐진 옷을 보고 엄마가  자랑스러웠다가 나 자신도 엇갈린 나의 감정에 놀랐다.

 다른 엄마들처럼 화장도 곱게 하지 않고, 정장도 차려입지 않은 채, 컬러가 눈부신 바이올렛 머풀러를 목에 두르고 실밥을 묻힌 청바지와 검은색 카디건을 입고, 학교로 참관수업때문에왔을 때 역시 엄마의 날씬한 예쁜 목에 묶여져 있는 머플러 때문에 엄마가 자랑스럽기도 했고, 실밥  묻은 엄마의 청바지ㄸ대문에 쥐구멍에라도 쏙 들어가고 싶었다.

 내 마음의 컬러를 나타낸다면 어떤 컬러가 맞을까?

 엄마가 하던, 실은 멋으로가 아니라 내의까지 갖쳐 입더도 추위를 타는 엄마의 부실한 몸과 영양제 몇 알과 가게문을 닫은 일요일이면 가기 싫은 나를 끌고  산으로 향하던 엄마는, 진실은 목감기때문에 초가을 부터 늦은 봄까지 다양한 컬러의 머플러가 멋으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도 수선집에 오는 사람들도  엄마가 연출하는 머풀러의 다양한 컬러의 진실을 알고 싶지도 않아하고, 엄마 역시 알리려 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백만원이 넘는 옷이든 만원짜리 옷이든 구분 않고 근사하게 고쳐준다.

 수선을 맡기로 오는 사람 중에 짖궃게 엄마가 전라도 여자라서 생활력이 강하다는 소리를 했다.

 엄마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환한 엄마의 얼굴은  그 일을 사랑하지만 고달픈 자신의 인생을 대변한다.

 엄마가 강해 질 수 밖에.

 서울에서 살아 남아 내 아버지 대신 교육비를 대 주어야   했던 엄마의 삶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까?

 돈 몇  천원이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내게 보냈던 소포안에는 옷과 한국산 생리대와 과자와 읽을 책 몇 권을 보내던 엄마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었을 까?

 엄마의 마음 속에 10년이나 한 수선집에서 마음의 짐처럼 켜켜이  쌓였던 비싸고 싼 옷에 대한  엄마의 시선을 구분할 수 있을까?

 라스베가스에 오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사무적으로 대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수선집에서 엄마의 이름 석자를 걸어 놓고 다양한 브랜드의 옷과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사람할 것 없이 몸에 딱 맞게 옷을 수선해 준다.

 나는 손님에게 잘 웃지 않지만 네일에는 멋지게 컬러를 입혀준다.

 하나의 솜씨와 내 솜씨를 사람들은 금방 구분했고, 엄마의 진심을 사람들는 잘 이해 했던지, 나를 찾는 사람도 많고, 엄마를 찾는 사람도 많았다.

 웃던 웃지않던 테크닉이야말로 잡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임포턴트한 무엇이다.

 엄마는 몸으로 반가운 손님을 껴안았고, 나는 마음으로 반가운  손님을 껴안는다.

 우리 두 모녀를 구분할 수 있을까?<9편 끝>

 

 

 

*요즘 저의  부부는  무척 날카로워 있습니다. 만약에 이 글 역시 미리 써 놓지 않았다면 지금의 심리상태로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14년을 같은 길을 걸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서로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고 두 갈래의 다른 길이 결혼생활에서 필요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절대  하나의 어떤 틀에 넣을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건방지게도 은경과 준호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라면 이렇게 살겠지 하면서요. 그러나 사랑없는 결혼생활이 무의미 하듯 저는 은경과 준호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 주인공들이지만 현 세대의 젊은 친구들을 저는 좋아합니다.

저 역시 다시 산다면 제 짝인 남편을 불 같이 한  번 사랑하고 싶군요. 오늘 한 번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서로에게 강요하고, 이해받고 싶다면  저는 이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죽고 사는 것, 또 모모에서처럼 시간은 누구에게도 필요하지만 시간을 멈출수도 돌릴 수도 없고 오늘 현재 제가 살아 있는 이 시점이 바로 정답이라고.

 

<자유>

뭐가 자유죠?

이곳 병실은

늘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문이 잠기죠.

 

 뭐가 자유죠?

우리도 갇혀있고

그들도 늘 그 안에 갇혀 있죠.

 

뭐가 자유죠?

나 배고파 밥먹고, 물마시고

그렇다면 자유롭지 않을 이유가 없죠?

 

뭐가 자유죠?

나 이곳에서 한 숨 한번 쉰적 없고

그들의 고 들어주고

그들의 고 도와주고

 

뭐가 자유죠?

언제인가 죽을 몸이지만

이곳, 정신병동의 맑은 영들은

서로에게 의존하며

자유를 누리죠.

 

뭐가 자유죠?

숨쉬고, 사유하고, 걸어다니고, 조바심없는 이곳이 자유로운곳!

내가 가지  자유를 당신도 누려 보실래요?

 

뭐가 자유죠?

나 태어날 적 구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유를 갈망해 본 적이 없죠.

 

왜냐구요.

내가  바로   자유니까요

 

2006년 12월 29일   병동에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