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4편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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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보세요? 신유현입니다."
"아버지 저요 준호!"
통계학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성악으로 성공할 만큼 목소리가 좋다.
가끔씩 월요일 아침 위층에서 들려오는 성악가의 아아~ 하는 음을 듣고 있으면 아버지 목소리가 떠오른다.
오늘 아버지의 목소리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월요일 아침이니 그럴 것이다. 산을 즐기시는 아버지니까 좀 피곤하셔서.
"준호야 큰 아버지 돌아가셨구나!"
"......"
나는 잠깐 말을 잃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과 내계는 큰 아버지의 병은 금기시 되는 어떤 종교의 돼지고기처럼, 혹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어떤 종교처럼 큰 신앙에 가까운 병이었다.
아마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큰 아버지의 병은 악마의 유혹에 굴복하는 그 소설 속의 누구처럼, 삶의 유혹에 지고 마는 그런 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누나들과 내가 머리가 굵어진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않아 보거라. 아버진 너희 모두가 커피 맛의 다름을 구분할 수 있길 원했던 그일처럼 큰 아버지의 병에 대해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머니는 꼭 그얘길 해야 되냐는 눈빛과 우리 남매의 커피 마시는 일을 끝까지 말리지 못하던 그 눈빛을 하고는 아버지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병은 세 단계가 있단다. 발병의 시작은 뚜렷하지 않고, 발병이 된 것을 알아차리믄 일은 혼잣말 때문이다. 그 다음에 잠을 잘 수 없는 예민한 신경을 하고, 타인을 괴롭히고, 또 그 다음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빌어먹을 그 병이 왜 하필 내 형의 정신을 좀 먹은건지 알 수 없지만 큰 아버지의 정신병에 시달린 봄, 가을이면 병원 행을 했다는 것만은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알고는 있되, 절대 너의 친구들이나 후에 자신의 파트너가 될 동반자에게 말하지 말길 바란다. 그 일을 숨기라는 의민 절대 아니다. 다만 나만 괴로워 하면 될 그 병을 너희 어머니께 그리고 너희한테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를 이래 해 다오."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내방으로 누나 세 명은 아버지 어머니가 양보한 아파틍에서 가장 큰 그녀들의 방인 안방으로 황급히 몸을 옮겼고, 거실 회색 소파에는 어머니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오늘 아버지의 짐 하나가 들어 진 걸까?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던 그 거인처럼 돌멩이 하날 산 위까지 끌어 올렸고, 다시 떨어진 돌멩이를 올려야 했던 내 아버지의 삶의 짐 하나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해결 된 것인가?
생전 처엄 사 준 아버지가 그의 커피를 포기하고 나를 위해 사 준 나이키 운동화를 누군가 훔쳐 갔던 학교에서 나는 1시간이나 울어야 했다.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나를 집으로 데려 갔을 때 나는 이틀을 꼬박 운동화 때문에 울었다.
다시 20일 동안 우울했고 아버지가 용돈을 아껴 똑 같은 운동화를 다시 한 켤레 사 주었던 몇 달 후에도 나는 첫 번째 운동화를 잃은 삶의 상실감으로 가슴이 아팠다.
한 동안 나는 내 운동화 꿈을 꾸었다.
신발 밑바닥에 유성 펜으로 지워지지 않게 크게 '준호'라고 이름 썼던 내 운동화 때문에 오랫동안 다른 운동화마저 잃어 버릴까봐 조마조마 했고, 어느 날부텨 모으기 시작한 운동화가 60켤레나 되어 버렸다.
260의 운동화들이 가득 찬 방 안에서 잃어버린 처음의 운동화를 생각하는 나처럼 오랫동안 아버지는 기억 속의 큰 아버지에게 둘러 싸여 처음의 운동화를 생각하듯 큰 아버지를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 담쟁이 넝쿨은 건강한가요?"
이 물음은 아버지와 나의 비밀이다.
아버지가 대학에서 전임의 자리를 얻게 되고, 연구실로 물건들과 책을 옮겼을 때 아버지는 어린 나를 두 번째 나이키의 까만 로고가 선명한 작은 운동화를 신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창 밖을 보게 했다.
"준호야. 너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니? 아버진 이 지겨운 시그마보다 저 담쟁이 넝쿨이 무지좋다. 일부러 하나를 따서 뭉개기도 한다. 저 담쟁이 잎만이 나의 삶이다. 영원히 저 벽에서 떨어지지 않는 끈질김만이 내 삶이다. "
아버지는 내가 알아 듣던 말던 그저 말을 했다.
알아듣는 일도 못 알아 듣는 일도 다 내 몫이란다.
담쟁이 넝쿨이 담벼락에 붙어서 운치를 자아내지만, 그들의 삶이 벽과 함께일 수 밖에 없듯, 아버지는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라고 했다.
"가치중립적인 사람이 내가 지향하는 사람이다. 나도 준호도 그렇게 살자꾸나."
사람이 과연 자신의 가치를 중립적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운동화를 사려고 줄을 서고, 은경의 킹크랩을 위해 소유욕을 버리고 30만원에 팔아 그녀의 기쁨을 위해 킹크랩과 와인 한 병을 사 준 그일이 가치중립적인가?
그러면 내 아버지의 짐이 벗어진 지금 아버지에게 그의형, 내 큰아버지의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죽음일뿐.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은 것도 아니니 우린 살아 갈 것이다.
큰 아버지는 그의 유혹에 흔들리는 정신이 깃든 영혼과 함께 저 멀리 다른 곳으로 갔을뿐, 그게 우리 삶이다.
위협받고 위협당하는 우리들의 삶.
아버지와 나는 오늘 초를 켤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삼면이 온통 책인 좁은 그 곳 전에는 내 방이었던 서재에서 형의 초를 켤 것이고, 나는 내 운동화에 둘러 싸여 항아리처럼 생긴 진한 파란색의 그 위에 물을 넣고 쟈스민 향을 한 두방울 떨어뜨리고, 촛불을 켜 온 방의 운동화가 그 쟈스민의 향 때문에 질식할 만큼 오래 밤을 새워 큰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초를 켤 것이다.
삶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심장이 두근두근
여기 산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맑은 음성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낯선 도시의 빌딩 숲
우리 저 곳에서 산 속으로 들어 왔나
아니면 어디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서
머리카락 일렁이는 바람의 숲으로 들어 왔나
빌딩 숲의 눈부신 빛 사이로
다시 들어갈 우리
그래도 그 곳이 우리의 삶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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