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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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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큰아버지의 죽음)4


BY 황영선 2007-01-18

이 글이 4편째입니다.

 

                                                       4

 "네! 여보세요? 신유현입니다."

 "아버지 저요 준호!"

 통계학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성악으로 성공할 만큼 목소리가 좋다.

 가끔씩 월요일 아침 위층에서 들려오는 성악가의 아아~ 하는 음을 듣고 있으면 아버지 목소리가 떠오른다.

 오늘 아버지의  목소리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월요일 아침이니  그럴 것이다. 산을 즐기시는 아버지니까  좀 피곤하셔서.

 "준호야  큰 아버지 돌아가셨구나!"

 "......"

 나는 잠깐 말을 잃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과 내계는 큰 아버지의 병은 금기시 되는 어떤 종교의 돼지고기처럼, 혹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어떤 종교처럼 큰 신앙에 가까운 병이었다.

 아마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큰 아버지의 병은 악마의 유혹에 굴복하는 그 소설 속의   누구처럼, 삶의 유혹에 지고 마는 그런 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누나들과 내가 머리가 굵어진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않아   보거라. 아버진 너희 모두가 커피 맛의 다름을 구분할 수 있길 원했던 그일처럼 큰 아버지의 병에 대해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머니는 꼭 그얘길 해야 되냐는 눈빛과 우리 남매의 커피 마시는 일을 끝까지 말리지 못하던 그 눈빛을 하고는 아버지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병은 세 단계가 있단다. 발병의 시작은 뚜렷하지 않고, 발병이 된 것을 알아차리믄 일은 혼잣말 때문이다. 그 다음에 잠을 잘 수 없는 예민한 신경을 하고, 타인을 괴롭히고, 또  그 다음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빌어먹을 그 병이 왜 하필 내 형의 정신을 좀 먹은건지  알 수 없지만 큰 아버지의 정신병에  시달린 봄,  가을이면 병원 행을 했다는  것만은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알고는 있되,  절대 너의   친구들이나   후에 자신의 파트너가 될 동반자에게 말하지 말길 바란다.  그 일을 숨기라는 의민 절대 아니다.  다만 나만 괴로워 하면 될 그  병을 너희 어머니께  그리고 너희한테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를 이래 해 다오."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내방으로   누나 세 명은 아버지 어머니가 양보한 아파틍에서 가장 큰 그녀들의  방인 안방으로 황급히 몸을 옮겼고,  거실 회색 소파에는 어머니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오늘 아버지의   짐 하나가 들어 진 걸까?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던 그 거인처럼 돌멩이 하날 산 위까지 끌어 올렸고, 다시 떨어진 돌멩이를 올려야 했던 내 아버지의 삶의 짐 하나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해결 된 것인가?

 생전  처엄 사 준 아버지가 그의 커피를 포기하고 나를 위해   사 준 나이키  운동화를 누군가   훔쳐  갔던 학교에서 나는 1시간이나 울어야 했다.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나를 집으로 데려 갔을 때 나는 이틀을 꼬박 운동화 때문에 울었다.

  다시 20일 동안 우울했고 아버지가 용돈을 아껴 똑 같은 운동화를 다시 한 켤레  사 주었던 몇 달  후에도 나는 첫 번째  운동화를 잃은 삶의 상실감으로 가슴이 아팠다.

  한 동안 나는 내 운동화 꿈을 꾸었다.

 신발 밑바닥에 유성   펜으로 지워지지 않게 크게  '준호'라고 이름 썼던 내 운동화 때문에 오랫동안 다른 운동화마저 잃어  버릴까봐 조마조마 했고, 어느 날부텨   모으기 시작한 운동화가 60켤레나 되어  버렸다.

 260의 운동화들이  가득 찬 방 안에서 잃어버린 처음의  운동화를  생각하는 나처럼 오랫동안 아버지는 기억 속의 큰 아버지에게 둘러 싸여  처음의  운동화를 생각하듯 큰 아버지를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     담쟁이 넝쿨은 건강한가요?"

  이 물음은 아버지와 나의 비밀이다.

 아버지가 대학에서 전임의 자리를 얻게 되고, 연구실로 물건들과  책을 옮겼을 때  아버지는 어린 나를  두 번째 나이키의 까만 로고가 선명한 작은 운동화를 신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창 밖을 보게 했다.

 "준호야. 너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니? 아버진 이 지겨운 시그마보다 저 담쟁이 넝쿨이  무지좋다. 일부러 하나를 따서 뭉개기도 한다.  저 담쟁이 잎만이 나의  삶이다. 영원히 저 벽에서 떨어지지  않는 끈질김만이 내  삶이다. "

 아버지는 내가 알아 듣던 말던 그저 말을 했다.

 알아듣는 일도 못 알아 듣는 일도 다 내  몫이란다.

 담쟁이 넝쿨이 담벼락에 붙어서 운치를 자아내지만, 그들의 삶이  벽과 함께일 수 밖에  없듯, 아버지는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라고 했다.

 "가치중립적인  사람이  내가 지향하는  사람이다. 나도 준호도  그렇게 살자꾸나."

 사람이  과연  자신의 가치를 중립적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운동화를 사려고 줄을 서고, 은경의 킹크랩을 위해 소유욕을 버리고 30만원에 팔아  그녀의 기쁨을 위해 킹크랩과 와인 한 병을 사 준 그일이 가치중립적인가?

 그러면  내 아버지의 짐이 벗어진 지금 아버지에게 그의형,  내  큰아버지의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죽음일뿐.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은 것도 아니니 우린 살아 갈 것이다.

 큰 아버지는 그의 유혹에 흔들리는 정신이 깃든 영혼과 함께 저 멀리 다른 곳으로 갔을뿐,  그게 우리 삶이다.

 위협받고 위협당하는 우리들의 삶.

 아버지와 나는 오늘 초를 켤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삼면이 온통 책인 좁은 그 곳 전에는 내 방이었던 서재에서 형의 초를 켤 것이고, 나는 내 운동화에 둘러 싸여 항아리처럼 생긴 진한  파란색의 그 위에 물을 넣고 쟈스민 향을 한 두방울 떨어뜨리고, 촛불을 켜 온 방의   운동화가 그 쟈스민의 향 때문에 질식할 만큼 오래 밤을  새워 큰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초를 켤 것이다.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심장이  두근두근

여기 산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맑은 음성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낯선 도시의 빌딩 숲

우리 저 곳에서 산 속으로 들어 왔나

아니면 어디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서

머리카락 일렁이는 바람의 숲으로 들어 왔나

 

빌딩 숲의 눈부신  빛 사이로

다시 들어갈 우리

그래도  그 곳이 우리의 삶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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